새 밀레니엄을 맞던 1999년 12월 31일. 자정이 가까워지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알 수 없는 우울감에 휩싸여 일기를 썼었다. 시간이 가진 허무함을 어렴풋이나마 느꼈던 걸까? 그때부터 연말 분위기에 대한 괜한 거부감이 시작된 것 같다.

싱숭생숭, 멜랑꼴리. ‘연말증후군’이란 말까지 존재하는 걸 보면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 그래서 준비했다. 연말에 들으면 더 연말 같은, 그래서 당신의 연말증후군을 더 증폭시킬 수 있는 노래들이다. (잉?) 하지만 분명 위로가 될 거다. 다가오는 2015년을 우울함보다는 설렘으로 맞이할 수 있길.


1. 산울림 – 청춘 (가지마오, 1981)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첫 곡부터 너무 했나 싶기도 하지만, 떠나가는 청춘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 보다는 흘러가는 시간을 인정하고 보내주는 것이 스스로에게 더 좋은 방식일 것이다. 청춘도 꽃처럼 피고 지기 때문에 그때가 더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고, 젊게 늙고 아름답게 늙자는 말.


2. Oasis – Don’t Look Back in Anger (Morning Glory, 1995)

‘연말엔 오아시스지!’라는 말이 있다. 그냥 내가 내 친구한테만 하는 말인데, 정말 그렇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왠지 ‘오아시스’는 더운 여름날의 록페스티벌보다는 입김 나오는 겨울밤이 어울리는 느낌적인 느낌. 대중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 때문인지 묘하게 캐롤의 느낌도 갖고 있다. 《Don’t Look Back in Anger》에 이어지는 트랙 《Hey Now》와 《Some Might Say》를 연달아 들으면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난다.


3. 시인과 촌장 – 비둘기 안녕 (푸른 돛, 1986)

연말 분위기를 대표하는 영국 밴드가 ‘오아시스’라면 한국에는 ‘시인과 촌장’이 있다(이 역시 극히 주관적인 생각). ‘시인과 촌장’의 불후의 명곡인 <가시나무>도 연말에 어울리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는 판단 하에 다른 곡을 추천해본다. <가시나무>가 나오기 2년 전에 나온 2집 <푸른 돛>에는 비둘기 시리즈 3곡이 존재하는데, 그 중 마지막 곡이다. 잔잔하게 시작해 후반부에는 심장을 때리는 감동이 있다.


4. Feist – Now at Last (Let It Die, 2005)

‘파이스트’는 캐나다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때론 우울하고 때론 달콤한 그녀의 음악은 잔잔하지만 강한 여운이 있다. “What makes winters lonely, now at last I know(무엇이 겨울을 외롭게 만드는지, 이제 마침내 난 알아요)”라는 가사는 이 겨울의 외로움을 사무치게 한다.


5. 지드래곤 – 삐딱하게 (쿠데타, 2013)

연말은 망년회, 신년회로 하루쯤 정신 놓고 놀아도 용서가 될법한 시기다. 친구들과 함께 혹은 혼자서라도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박자에 맞춰 방방 뛰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 해가 다 가기 전, “오늘 밤은 삐딱하게” 분탕을 쳐보자.


6. 빈 소년 합창단 – Nothing Else Matters (Goes Pop, 2002)

‘빈 소년 합창단’이 팝송을 재해석해 부른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어린이들의 맑은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니, 한 해를 돌아보며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갖기에 좋은 앨범이다. 그런데 이 곡은 좀 묘하다. 거장 록밴드 ‘메탈리카’의 곡을 재해석한 것이다. 헤비한 록과 클래식 보컬의 절묘한 조화는 성찰과 반성을 흥분과 짜릿함으로 이어지게 한다.


7. 이승환 – 이 밤을 뒤로 (Always, 1991)

지천명(知天命)의 이승환이 이십대에 불렀던 노래다. 12월 31일이든, 1월 1일이든 하루는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오늘의 끝이 오고, 내일은 또 밀려온다. 시간을 늦출 수도 멈출 수도 없는 나는 하루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지, 그것이 늘 고민이다.


8. 자우림 – 스물다섯, 스물하나 (Goodbye, grief, 2013)

자우림의 최근 앨범인 9집 《Goodbye, grief》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위로한다. 타이틀 <스물다섯, 스물하나>부터 <이카루스>, <전하고 싶은 말>, <슬픔이여 이제 안녕>까지 이삼십대에게 공감이 될 곡들로 채워져 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내가? 벌써?’하며 놀라지만, 어쩌겠는가. 다가올 날 중에는 지금이 제일 어리다.


9. The Beatles – The Long and Winding Road (Let It Be, 1970)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All You Need is Love》를 수없이 들었다면, 그 다음에는 이 노래를 추천한다.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길고 굽이진 길이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감정은 그 목적지가 삶이든, 사랑이든, 아니면 존재하지 않든, 누구나 한 번쯤 경험에 봤으리라. 사실 곡을 만든 폴 매카트니는 편곡자 필 스펙터에 의해 오케스트레이션된 이 버전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기존의 정서와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매카트니의 원래 의도대로 잔잔하게 연주된 버전은 2003년 발매된 《Let It Be…Naked》에 실려있다.


10. 장필순 – 난 항상 혼자 있어요 (Sonny Seven, 2013)

곁에서 속삭이는 듯한 장필순의 목소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를 주기에 충분하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새벽, 불 꺼진 방 안에서 이 노래를 들어보길 권한다. 필순언니의 따뜻한 노래가 당신의 1년을 토닥여줄 것이다. 토닥토닥.

글= 권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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