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의 이봐 아빠] 인간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 의. 식. 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이 세상에 왔지만, 태어나던 순간부터 의식주는 30년이 지난 이 순간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 살던 따뜻한 집에서 나와 혼자 살며 온갖 집안일에 부딪혔을 때 처음으로 ‘엄마’의 대단함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의 ‘엄마’들은 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묵묵히 하고 있습니다. 처음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야 비로소 ‘엄마가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설거지, 빨래, 청소 등 정말 많이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혼 후 ‘엄마’의 역할은 아내가 보통 많이 하는 편입니다. 물론 아빠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요즘 들어 남자의 가사 참여가 높아지고 있는데, 예전처럼 팔짱만 끼고 앉아 있으면, 아마도 이혼사유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김동환의 이봐 아빠’ 첫 시간은 의식주 중 ‘의(義)’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평생 입은 옷은 총 몇 벌 일까요? 잘 모르겠지만, 웬만한 옷 가게 하나 정도는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듯 합니다. 태어나는 순간, 작은 저고리 하나로 시작하지만, 성장을 거듭하며 많은 옷들을 입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옷을 입고 있고(지구상 몇몇 부족 제외), 또 옷을 입고 생활하다 보면, 뭘 흘리기도 하고, 또 때가 타기도 하죠. 그럼 빨아 입습니다. 보통 세탁기에 돌리죠.

저도 세탁기를 돌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입니다. 에헴. 때가 제법 잘 빠진다는 세제를 넣고, 또 언제부터인가는 섬유유연제라는 마법의 약물을 넣습니다. 가끔 찌든 때가 생기면 TV광고에서 본 ‘바르는’ 세제들도 꼼꼼하게 발라줍니다. 깨끗하게 세탁이 된 옷을 다시 입을 때에는 마치 새 옷을 입은 듯 기분이 좋습니다. 달콤한 향이 날 때도 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문물을 접하게 됐습니다. 세상에 ‘아기전용세제’라는 것이 존재하더군요.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기 전까지는 접할 일이 없었던,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새로운 공산품의 등장에 저는 ‘뭘 유난을 떠나’, ‘결국 상술 아닌가’ 라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세탁용 세제야 뭐, 때만 잘 빠지면 장땡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구요.

임신한 아내가 태교 교실을 다녀오거나 혹은 함께 임신출산관련 박람회에 다녀올 때 마다 만나는 ‘아기전용세제’. 뭐 굳이 세제를 아기용으로 나누는가 했더니.

-아기들은 성인에 비해 면역력이 약하다.
-피부도 민감하다.
-애들은 옷을 빨아먹는다.
-그러기에는 일반 세제가 좀 ‘쎄다’(혹은 유해할 수 있겠다)

정도로 정리를 할 수 있겠습니다.

일반적인 세제들은 옷을 빠른 시간에 최대한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각종 화학성분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화학방부제, 화학계면활성제, 형광증백제(더 하얗게!) 등은 ‘때 좀 뺀다’는 제품에는 거의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아이들에게는, 특히 신생아에게는 아토피, 유아기 천식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성인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들에 비해 면역력이 강하고, 각종 유해물질에 대한 저항력을 갖춘(혹은 이미 많이 노출된) 어른들이야 뭐. 그렇다 쳐도, 갓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생각보다 더 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역시 유난을 떠는 것 같지만, 몇 년 전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돌아보면, 또 대충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닙니다.

‘아기전용세제’라는게 본격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은 것은 미디어의 힘이 컸습니다. ‘불만제로’에서 다뤘습니다. 당시 프로그램은 ‘아기전용세제’라는 이름을 달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상품들을 뒤집었습니다. ‘친환경’, ‘유기농’, ‘자연물질 함유’라는 말을 썼지만, 각종 유해성 화학물질들이 여전히 함유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 이후 사람들은 더 많이 ‘아기전용세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불만제로에서 칭찬한 제품은 정말 불티가 났습니다. 업체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이 왜 안전하고 좋은지를 홍보했습니다. 또 어떤 업체들은 ‘우리는 기준치 미만’이라며 또 반박 혹은 홍보를 했고요. 인터넷에서는 ‘뭐가 좋더라, 뭐가 천연 재료만 썼다 더라’는 말이 퍼지면 미친 듯 가격이 오르고 품귀현상이 나기도 했죠. 업체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이 왜 안전하고 좋은지를 홍보했죠

부모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당장 내 아이가 입을 옷을 조금 더 순하게, 안전하게, 순하게 해 주기 위함입니다. 유해한 화학성분이 가득한 옷이 내 아이의 몸을 감싸고 있다면, 내 아이가 빨아먹고 있다면 누구라도 눈-깔이 뒤집힐 것입니다.

물론 세제에 ‘아기전용’이라는 단어가 붙기 시작하면 가격은 더 비쌉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이것 조차 상술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뭘 그렇게 유난을 떠나”라는 생각도 잠시 하지만 막상 닥치면 신중한 고민을 거듭하게 됩니다. 저도 샀습니다. ‘좋은 제품’을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은 것 같다’는 기대 혹은 믿음을 샀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옛날처럼 쌀뜨물을 가지고 냇가에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인 것 같습니다. 여튼, 오늘도 세탁기는 열심히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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