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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누구에게나 찬란한, 축구는 희망이 될 수 있을까
풋볼리스트 | 승인 2014.11.14 20:07
나는 그리 낙관적인 사람이 아니다. 세상은 공평한 곳이 아니며, 착한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오는건 동화책에서나 흔한 얘기라 믿는 쪽이다. 그렇다고 염세적인 수준까진 아니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고, 충분히 살아볼 가치가 있는 곳이라 여긴다. 다만, 나는 그저 영화 <세 얼간이>의 주인공 란초처럼 "알 이즈 웰(All is well)"이라 긍정적인 주문을 외는 것이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고 기대하지 않을 뿐이다. 이를테면, 축구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마니악한' 믿음에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편이다.



여기, 꿈마저 가난한 아이들이 있다. 축구장을 달리고 공을 차는 것이 희망의 전부인 아이들. 하지만, 희망에는 양면성이 있다. 아주 작은 가능성일지라도 언젠가 그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기대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사라졌을 때 찾아오는 절망감은 그 무엇으로도 극복하기 힘들다. 물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똑같은 빛을 비추는 저 태양이 실제론 누구에게나 찬란하진 않은 것처럼, 희망이 늘 긍정적인 의미인지를 곱씹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2006년, K리그 인천유나이티드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비상>으로 축구팬들의 갈채를 받았던 임유철 감독이 새로운 작품을 들고 왔다. <누구에게나 찬란한>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그러니까 지금 우리와 똑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다. 임 감독은 6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수작을 뽑아냈다. <누구에게나 찬란한>의 이야기는 간결하다. 경남 지역 아동복지시설이 가정 형편이 곤란한 초등학생들을 모아 운영하는 축구팀 '희망FC'를 다룬다. 하지만, 영화 제목(찬란한)이나 팀명(희망)에서 느껴지는 밝은 기운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따뜻한 포스터와 우아한 제목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뻐근한 진실을 솜씨 좋게 포장한 것이다. 그렇다고 거짓 치장은 아니다. 영화 속 가족들의 고단한 삶 위에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꿈꾸는 또다른 '비상'의 희망이 틈틈이 빛나고 있다.

한편으로, <누구에게나 찬란한>은 좌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다.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들의 삶은 대부분 찬란함과는 거리가 멀다. 가정 형편이 힘든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축구하는 것조차 맘껏 허락할 수 없는 고된 부모들, 생계가 불안정한 지도자들이 결국엔 패배하고 아파하며 일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는 등장인물 모두의 공통점은 '축구'에 희망을 걸었다는 것 정도다. 그들에게 축구는 무채색 삶의 탈출구이자,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다. 가정과 교실에서 늘 혼자인 아이들은, 적어도 훈련장과 경기장에서 친구들과 공을 찰 때만큼은 맘껏 의욕적이다. 프로 선수를 키워보고 싶은 박철우 감독의 열정도, 프로 선수 경력을 가졌지만 지금은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김태근 감독의 애정도, 오로지 축구와 만났을 때에 가장 찬란히 반짝인다.

그러니, 팀명인 '희망FC'는 진취적이면서도, 반어적 이름짓기다. 이 팀에서 뛰고 또 이 팀을 가르치는 것이 (어쩌면) 희망의 대개인 사람들. 하지만 일상에 없던 희망을 찾아 '희망FC'에 뛰어든 그들은, 어렵사리 발견해낸 그 희망을 지켜내기가 버겁다. 영화 밖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우리로선 영화 속 그들의 눈물과 간절함이 가진 크기를 잴 재간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팀과 축구가 그들에게 남다른 의미 - 축구가 단순히 몸을 움직여 공을 발로 차고 노는 놀이 이상의 가치 - 를 지닌 행위였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래서 이렇게 소외받는 축구팀을 통해 '희망'을 얘기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담담한 화면을 통해 관객에게 더욱 선명하게 전달된다.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영화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더 큰 울림을 느끼리라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다.



눈여겨 볼 지점은 관객의 반응이다. 영화를 보는 짧은 시간동안, 관객들은 영화 속 아이들의 이름과 모습, 배경과 태도에 친숙해진다. 희망팀 감독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불과 30분 전, 1시간 전까지만해도 전혀 모르던 아이였던 영화 속 희망FC 선수들이, 짧은 시간 안에 마치 내 조카나 아들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이야기의 힘이다. 등장인물 각각의 사연과 표정을 접한 뒤로, 그들은 더 이상 낯선 사람이 아니다. 영화 후반부 경기 장면에서 관객들이 영화가 아닌 마치 축구 경기를 생중계로 보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빗나간 슛팅에 안타까워하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상영관은, 이제 더 이상 영화관이 아닌 희망FC 학부모석이나 다름없다. 이 장면은 축구, 특히 K리그가 나아가야 할 지향을 일러주고 있다.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고 특정팀과 선수를 응원하게 하는 것은 테크닉이나 경기력이 아니다. 선수나 팀과의 유대감 - 그것이 지연이든 학연이든 무엇이든 - 을 키우고, 또 이를 위해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프로스포츠 단체들이 가장 집중해야 할 영역임을 말해준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느낀 희망과 절망의 감정이 그들의 인생을 좌우할 결정적인 경험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생각보다 길어서, 작은 축구 시합 하나의 승리와 패배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이 모인 것이 결국 한 인간의 삶이다. 그 경험의 무대가 축구장인 이들에게, 그래서 이 영화는 굉장한 공감의 무대이자 반추의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지금 잠시 멈춰 선 희망FC의 축구공이, 머지 않아 다시 구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관람하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축구가 누군가에게 대단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된 덕분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작은 희망을 내려줄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큰 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희망이 짧게 지나가는 한순간의 감정이라 할지라도.

글=서형욱 (네이버 뷰티풀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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