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별리그 첫 경기를 모두 마친 현재 가장 돋보인 팀 중 하나는 러시아다. 무려 4골을 작렬시키며 체코에 4-1로 승리, 8강 진출을 위한 5부 능선을 넘었다. 러시아를 이끄는 ‘작은장군’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우리 대표팀을 이끌어 익숙한 인물이다. 2006년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4년 전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성공을 거둔 팀의 유산을 상속받아 지휘하고 있다.

8강 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는 개최국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하루 앞둔 11일(현지시간) 아드보카트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 나섰다. 하지만 기자회견은 쉽지 않았다. 제니트 감독 시절부터 함께 해 온 미드필더 콘스탄틴 지리아노프와 함께 등장한 아드보카트 감독은 기자회견장 입구에서 자원봉사자에게 저지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기자회견에 들어가기 위해선 대회 측에서 발부한 확인증(SAD)이 필요한 데 자원봉사자가 아드보카트 감독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것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한 것.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숨을 내뱉던 아드보카트 감독은 뒤늦게 쫓아 온 UEFA 직원에 의해 기자회견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기자회견에서는 그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러시아는 첫 경기에서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러시아 팬들은 최악이었다. 체코의 흑인 수비수 셀라시에를 향해 경기 중 원숭이소리를 내 인종차별 논란에 불을 붙이는가 하면, 경기 진행요원들을 집단 폭행해 물의를 일으켰다. 기자들은 러시아 팬들의 이런 행동에 대해 아드보카트 감독의 생각은 어떤지를 묻기 시작했다. 러시아 대표팀의 미디어 담당관이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집요한 미디어의 추궁에 아드보카트 감독의 표정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폴란드 기자가 자신들의 팀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고서야 아드보카트 감독은 그가 원하던 답을 던질 수 있었다. 그는 “(폴란드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개막전 무승부로 폴란드는 승리가 더 간절해졌다. 지난 경기처럼 많은 찬스를 만들긴 힘들 것이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어서는 “겨우 한 경기를 치렀다. 대회는 이제 시작됐다. 지금의 분위기는 좋지만 한번의 실수가 상황을 부정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말로 첫 경기 승리로 들뜬 분위기를 경계하기도 했다.

바르샤바(폴란드)=서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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