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약점을 숨기고, 강점을 딱 한 번만 발휘해 승리를 챙긴다. 병법서에나 나올법한 추상적인 승리 시나리오처럼 보이지만, 주제 무리뉴 첼시 감독에겐 익숙한 이야기다.

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2014/2015 캐피털원컵’ 결승전을 치른 첼시는 토트넘을 2-0으로 꺾고 우승했다. 무리뉴 감독은 첼시에 돌아온 뒤 두 번째 시즌에 첫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우승 청부사’의 면모를 되찾았다.

경기 전 첼시는 중원에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네마냐 마티치는 징계로, 대체 자원인 존 오비 미켈은 부상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첼시가 이번 시즌 내내 고수해 온 4-2-3-1 선수 배치를 유지하려면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파트너로 마티치가 꼭 필요했다.

무리뉴 감독은 미드필드를 완전히 새로 짜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무리뉴 1기’ 시절 첼시의 상징이었던 4-3-3 포진을 다시 꺼내 들었다. 원래 중앙 수비수인 커트 주마를 과거 클로드 마케렐레가 맡았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했다. 그 앞에 파브레가스와 하미레스를 나란히 배치, 중원의 수비벽을 두텁게 쌓았다.

급조한 미드필드의 완성도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 그래서 첼시는 무리하지 않았다. 하미레스와 파브레가스는 모두 공격 가담을 자제하고 주마 옆에 머물렀다. 과거에도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 어려울 때 자주 보여준 ‘질식 수비’였다. 토트넘은 경기 초반 기세를 올렸으나 점점 공격할 방향을 찾지 못했다. 토트넘의 주전 공격수 해리 케인도 경기 초반 반짝 활약했을 뿐 곧 돌파할 방향을 잃었다.

일단 50대50의 상황을 만들어놓은 뒤, 첼시는 승리로 가기 위해 세트 피스를 활용했다. 프리킥과 코너킥 상황마다 잘 준비해 온 공격을 펼치던 첼시는 전반 45분 첫 골을 넣었다. 선제골의 주인공은 가장 절실할 때마다 골을 넣으며 첼시를 지탱해 온 수비수 존 테리였다. 윌리안의 프리킥을 토트넘 수비수들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문전에 떨어진 공을 테리가 오른발 슛으로 곧장 마무리했다.

후반전에도 토트넘은 활로를 찾지 못했고, 그러던 와중 첼시는 순간적으로 공격 속도를 올려 빠르게 추가골을 뽑아 냈다. 후반 11분 단 한번의 공격이었다. 좀처럼 전진하지 않던 파브레가스가 토트넘 미드필더들이 저지할 틈을 주지 않고 올라가 디에고 코스타에게 스루 패스를 내줬고, 코스타는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토트넘 수비수 카일 워커의 발에 맞고 공이 굴절되는 행운도 첼시에 따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첼시의 경기 운영은 점점 쉬워졌다. 토트넘이 무사 뎀벨레, 에릭 라멜라, 로베르토 솔다도를 차례로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해 봤으나 첼시 수비수들이 예측할 수 없는 슛은 없었다. 토트넘은 점유율에서 63대37로 앞섰다. 그러나 슈팅 횟수는 첼시가 15대13으로 오히려 많았다. 경기 운영의 차이였다.

무리뉴 감독은 경기 전체를 장악하기 힘든 상황이 되자 첼시의 현실을 순순히 인정하고 수동적인 경기로 전환했다. 실리주의자다운 면모였다. 그러면서도 승리하기 위한 두 가지 공격 루트를 마련해 뒀고, 이 두 가지가 모두 통해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하는 비법을 강의할 때 시청각 교재로 쓰면 좋을 경기였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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