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항저우(중국)] 한준 기자= “중국 축구가 투자를 시작한지 한참인데 왜 아직도 성과가 없습니까?”

어마어마한 인구. 막대한 투자. 그리고 뜨거운 축구 열기. 중국 축구가 곧 세계 축구의 열강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전망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몸값이 비싼 외국인 선수와 감독을 영입하며 중국슈퍼리그는 성장했지만, 중국 대표팀의 성적은 여전히 초라하다.

2012년에 일본 대표팀 감독이었던 오카다 다케시 감독을 영입한 뒤 일본 코치들로 유소년 시스템을 구축하고, 2016년 한국 축구의 레전드 홍명보를 감독으로 선임한 항저우 그린타운의 철학은 중국 축구가 가진 ‘선수 기반’ 문제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스타 아닌 유소년에 투자하는 항저우

항저우를 운영하는 부동산 회사 그린타운은 아파트와 학교, 병원 등을 건설하는 탄탄한 회사다. 저장성에 유일한 프로 팀 항저우를 창단한 그린타운은 이적 시장에서 무모하게 돈을 쓰는 팀이 아니다. 항저우의 선수단 운영 규모는 천문학적 규모와 거리가 멀다.

다만 유소년 선수 육성 시스템에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2004년 9면의 운동장과 세 개 동의 기숙시설, 클럽 하우스 내에 ‘축구학교’를 건립하며 선수 육성에 투자했다. 퉁후이민 항저우그린타운 사장은 “중국에 슈퍼리그 16개팀, 갑급리그 16개팀 등 32개팀 중에 우리가 유소년에 투자하는 규모는 최상위 수준”이라고 했다. 우샤오쿤 부사장은 "중국의 아약스 같은 팀이 되고 싶다"고 했다. 물론 "네덜란드와 중국의 사정이 다르니 차이는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항저우는 12세부터 15세, 17세, 19세 등 연령별 팀을 운영 중이다. 1군 팀과 함께 클럽하우스에서생활하며 운동한다. 이와 별개로 운영 중인 그린타운 축구학교는 중국 내에서도 드문 사례다. 축구학교는 축구 만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축구 선수를 목표로 하는 아이들이 모여 정규 교과 과정을 이행하면서 축구를 배울 수 있는 학교의 일종이다. 항저우그린타운교육그룹 산하에 존재하는 하나의 학교다.그린타운은 항저우 시내에 일반 학교도 건립해 운영 중이다. 명문 학교로 엘리트를 배출하고 있다. 학교 사업에도 노하우가 있다.

항저우 축구학교는 남학생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항저우 클럽하우스의 우수한 시설에서 좋은 지도자들에게 학업 시간 외에 체육 시간과 방과 후 시간에 축구를 전문적으로 배운다. 모두가 축구 선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각종 교과목도 높은 수준으로 가르친다. 클럽하우스 내에는 학생들의 기숙사 뿐 아니라 학교 교사와 가족들이 기거하는 기숙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그린타운축구학교는 학업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축구 실력이 우수한 아이들은 곧바로 항저우 각급 유소년 팀에 들어갈 수 있다. 3학년 이후부터 축구 실력이 어느 정도 기준치에 도달한 학생들의 경우 학비를 전액 지원한다. 축구 선수 양성을 목적으로 하기에 성과를 보인 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수익 목적 보다는 양성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프로 수준에 이르게 못한 학생들은 대학 진학이나 직업 선택을 위한 다른 길도 모색할 수 있다. 중국 대학교는 축구를 잘하는 학생들을 위한 특장생 전형이 있어 중도에 축구 선수의 길을 포기하는 이들에게도 다른 길이 열려있다.

 

 

 

 

항저우그린타운 축구학교는 정원 제한이 있다. 들어오고 싶다고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학교가 아니다. 총명함, 사고력, 신체 능력 등에 대한 시험을 거쳐 선발된다. 이런 축구학교는 본래 항저우와 산둥루넝에만 있었다. 광저우헝다와 광저우푸리가 최근 설립했다.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어린 나이에 선수를 키워야 한다는 것은 중국 축구계도 확실히 인식했다. 상하이 소재 축구학교에서 유소년 코치를 하다 홍명보 감독의 통역으로 항저우에 온 유봉은 “상하이 학교에서는 2~3살 아이부터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부터 구단 운영의 실권을 쥔 젊은 부사장 우샤오쿤은 보다 구체적으로 항저우그린타운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했다.

“슈퍼리그의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클럽마다 자기 만의 운영법이 있다. 광저우헝다, 장쑤쑤닝, 산둥루넝 같은 팀들은 매년 엄청난 돈을 쓴다. 그러나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것은 한 팀 뿐이다. 좋은 선수를 영입해서 챔피언이 되려고들 한다. 광저우헝다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차지했다. 아시아 최고의 클럽팀은 중국 팀이다. 그런데 중국 대표팀은 어떤가? 홍콩도 이기지 못하는 수준이다. 태국, 베트남에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 나라 축구는 대표팀의 실력으로 수준을 판단할 수 있다. 돈으로 월드컵 우승을 할 수 있다면 카타르다 UAE가 할 것이다. 축구는 그렇지 않다. 항저우 그린타운은 중국 축구에 공헌하자는 철학을 갖고 있다. 향후 중국 대표팀 선발 명단의 절반은 ‘메이드 인 그린타운’이 되길 바란다.”

#중국 축구의 문제는 좋은 지도자가 없는 것

우샤오쿤 부사장은 이를 위해 좋은 지도자가 필요하고, 그 지도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항저우가 홍명보 감독에게 원하는 것은 단기성과가 아니다. 전국축구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가능성을 보인 1993년생 선수들을 중국 최고의 선수들로 키워 달라는 것이 가장 큰 미션이다.

항저우가 유소년에 투자한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 동안 항저우 출신 선수들이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항저우 뿐 아니라 중국 축구 전체가 해외 연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를 진행했지만 최고의 선수를 배출하는 데 실패했다. 우샤오쿤 부사장은 좋은 지도자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했다. 좋은 지도자를 키우지 못한 채 진행된 축구 교육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였던 셈이다.

“그룹에서 가장 중심적인 사람은 회장이 아니라 실제 일을 하는 관리층이다. 회장은 방향만 지시할 뿐이다. 그 아래 CEO와 실무자가 있다. 중국 축구가 한국, 일본과 가장 차이나는 부분은 청소년 지도자다. 한국 지도자의 절반이 영어를 할 줄 알고, 일본 지도자의 70%가 영어를 할 줄 안다면, 중국 지도자는 10%도 안된다. 세계 축구가 매년 변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스마트폰도 사용을 잘 못한다. 컴퓨터도 여전히 독수리 타법으로 하는 수준이다. 매일 열심히 가르쳐도 틀린 것을 가르치면 발전할 수가 없다. 아무리 좋은 새싹도 나무가 될 수 없다. 한국은 2002 월드컵의 영웅인 홍명보, 황선홍, 최용수 등이 모두 좋은 지도자가 됐다. 중국엔 그런 인물이 없다. 한국과 중국이 지도자를 다 바꾸고 10년의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해보자. 어떻게 될까? 청소년기의 지도자가 제일 중요하다.”

항저우 유소년 시스템은 최근 결실을 맺고 있다. 중국 올림픽 대표팀에 항저우 유스 출신 선수가 다섯 명 선발됐고,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는 6명이 부름을 받았다. 현재 항저우 1군 팀의 30인 엔트리 중에 5명의 외국인 선수를 뺀 25인 중 한 두명을 뺀 대부분이 유스 출신이다. 16명이 23세 이하 선수다. 2012년 일본인 지도자들이 중국 유소년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성과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항저우는 일본 지도자들의 한계도 동시에 확인했다. 유소년 출신으로 일찌감치 프로 선수가 되고, 스타 선수가 된 이들의 관리 부실 문제가 부각됐다. 이기적인 플레이를 하고, 사생활에 문제가 생기면서 도태됐다. 2015시즌 부임한 필립 트루시에 전 일본 대표팀 감독은 이런 중국 선수들과 큰 마찰을 빚고 반 시즌 만에 사임했다. 과거 항저우를 찾았던 다른 유럽 감독들은 선수들의 기량 발전에 실제적 영향을 주지 못했다.

 

 

 

 

 

 

#유럽 감독의 실패, 홍명보에게 관리를 부탁하다

자체 육성 선수가 많다는 것만으로는 성공이 아니다. 이 선수들이 잘해서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항저우가 홍명보 감독은 ‘모셔 온’ 이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현 항저우 1군 팀에 무려 9명이나 포진한 1993년생 선수들은 유소년 시절 중국의 전국축구대회 2위를 차지하며 잠재력을 인정 받았다. 올해로 만 23세. 이제 성인 선수로 결과를 내야 할 시점이다.

한국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한 홍명보 감독의 경험은 지금 항저우에게 절실한 것이다. 항저우 유소년 총괄 감독을 맡고 있는 오카다 감독도 홍명보 감독을 추천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좋은 팀을 만들고 싶다는 철학에 공감한 홍명보 감독은 프로 감독의 입장에서 당장 성적을 낼 수 없는 팀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항저우의 도전을 함께 하기로 했다.

“항저우에 와서 회장과 미팅을 두 번 했다. 구단이 원하는 것은 물론 프로이니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좋은 선수와 좋은 인간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선수들의 관리 부분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를 했다. 선수단 데이터를 보니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지 알겠더라. 훈련장에 가서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프로의식과 근성이 부족하다.”

홍명보 감독이 부임 후 첫 소집에서 체크한 것은 선수단의 몸 상태다. 한국 선수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체지방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체중도 많이 나가고, 근육량도 부족했다. 1차 태국 전지훈련에서 홍명보 감독은 매일 아침 7시에 가벼운 조깅으로 선수단의 ‘체중 감량’에 나섰다. 20분 간 러닝을 통해 체지방 낮추기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홍명보 감독 본인도 2~3kg 가까이 살이 빠졌다. 태국에서는 주로 몸 만들기에 주력했다. 선수들이 살을 빼고, 근육량을 늘리기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1차 전훈을 마친 뒤 12%에 달했던 선수단 평균 체지방률이 11%대로 내려왔고, 2월에는 9%까지 떨어졌다. 몸무게도 평균 77kg에서 75kg으로 내려왔다. 반대로 근육량인 2kg 가량 증가했다. 지방이 빠지고 근육이 늘었다. 체력 훈련 도중 토하는 선수가 있을 정도로 중국 선수들의 몸 관리는 부실했다. 잘 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체력 훈련은 힘들었지만,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부임과 함께 모든 선수들과 일대일 면담을 했다. 훈련장에서 요구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중국 선수들은 이해하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는다.” 모든 요구와 지시에 세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 받고, 선수들의 머리 스타일이나 축구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소통하며 친근한 관계를 만들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계약서에 들어 있던 ‘벌금 규정’을 간소화한 것이다.

“계약서에 선수들의 행동에 대해 세세한 벌금이 매겨져 있다. 이걸 어기면 500위안, 이걸 어기면 1000위안. 특별히 중요한 사항 외에는 다 빼라고 했다. 벌금을 내는 게 아니라 개선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그 돈 내고 난 이거 하겠다. 이렇게 나오면 어쩔 것인가? 계약 조항으로 규율을 잡을 수는 없다. 훈련장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 나머지 생활은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식단에 변화를 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선수들이 먹는 음식에 기름기가 너무 많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 체중 관리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중국 선수들이 클럽하우스에서 즐겨 먹는 음식을 단번에 빼지 않았다. 트루시에 감독이 부임했을 때 선수들의 식단을 일거에 바꿨다가 반발심만 샀다.

“외국인 감독이 와서 김치가 좋지 않다고 먹지 못하게 했다고 생각해보자.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은근히 크다. 한번에 다 바꾸지 말고 그동안 해온 부분에서 조금씩 바꾸자고 했다. 서로 협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먹는 스테이크도 나중에는 기름기 없이 채소와 먹는 한국식으로 바꿀 생각이다.”

홍명보 감독은 중국 선수들은 익숙치 않은 단체 회식으로 전지 훈련 기간 더 가까워 졌다. 태국에서는 한국 음식을 먹었고, 두바이에선 춘절 기간 중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디테일 훈련부터 불량천재 길들이기까지

프로 감독이라면 적합한 선수들을 추리고 전략을 입히는 데 집중하면 된다. 그러나 아직 기술적으로, 특히 공이 없는 상황에서의 움직임에 개선이 필요한 중국 선수들의 경우 세세한 지도가 필요하다. 유럽 출신 지도자들이 맞지 않다고 여긴 것은 이런 측면도 있었다. 아직 선수시절만큼 날렵한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홍명보 감독은 훈련 과정에서 러닝도 함께 하고 직접 시범을 보여가며 디테일한 부분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 선수들의 문제 중 하나가 어려서부터 세세한 것을 교육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 지도자들은 그런 부분까지는 성인 선수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지금 중국에서 그런 부분에 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난 아직까지는 시범을 보일 수 있는 몸 상태다. 직접 보여주고 있다.”

훈련 후에 한국 선수들과 함께 할 때와 달리 홍명보 감독이 재미있어 하는 부분이 있다. “오늘 훈련 좋았다”거나 “오늘 가르쳐준 것 좋다”며 엄지 손가락을 들며 피드백을 주는 중국 선수들의 모습이다. 감독이 스승이기는 하지만, 축구 팀 안에서 서로 동등하게 의사 표현을 주고 받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 한국에서 감독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선수는 없다. 처음엔 홍명보 감독이 직접 개별적 면담을 진행했으나 이제는 선수들이 먼저 감독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면담 신청을 하는 상황이다. 홍명보 감독은 “감독으로 내게도 엄청 큰 경험”이라며 중국 선수들과 지내는 생활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또 하나 개선한 것은 선수단의 치료다. 국가대표팀에서 오랫동안 의무 트레이너로 일한 황인우 트레이너를 항저우로 데려왔다. 항저우가 육성한 선수들을 제대로 쓰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잦은 부상이다. 이 배경에는 팀 의료진의 적절하지 못한 치료와 관리가 있었다. 구단 측의 진단이다.

오범석은 “황인우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으려면 줄을 서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 선수들이 황인우 트레이너에게 치료를 받고 나면 효과가 좋다보니 훈련이 끝나고 나면 근육을 풀고 통증 부위를 완화하기 위해 몰려든다. 기존 중국인 팀 닥터는 일이 크게 줄었다. 훈련장에서도 물통을 나르고 있었다. 황인우 트레이너는 어느새 간단한 중국어로 중국 선수들과 편안하게 소통하고 있다. 황인우 트레이너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면 지나가는 중국 선수들 모두가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간다. 어쩌면 항저우에 온 한국인 가운데 중국 선수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사람은 황인우 트레이너일 것이다.

먼저 다가온 것이 한국인들 만은 아니다. 오범석은 입단 첫 날 통역도 없는 상황에서 베테랑 우웨이를 중심으로 한 여섯 명의 중국 선수들이 입단 기념으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시내를 다녀왔다. 간단한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빠르게 친해졌다. 중국 선수들은 오범석의 입맛을 배려서 일식집을 택했다. 텃세나 알력다툼, 경계는 없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카다 감독이 천재적인 선수라고 지목한 미드필더 천종류(23)는 홍명보 감독이 길들이기에 나서야 했던 선수다. 연두색 포르쉐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천종류는 화려한 헤어 스타일에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대번에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선수였다.

중원에서 볼을 차는 센스가 남다르다. 모든 감독이 일단 천종류를 처음 만나면 선호한다. 그러나 경기장 안팎에서 천방지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량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몸 상태를 체크했을 때 가장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도 천종류였다. 홍명보 감독은 첫 면담에서부터 다른 팀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보인 천종류의 마음을 당근과 채찍으로 잡았다. 천종류는 홍명보 감독이 부임하고 가장 많이 면담을 가진 선수다. 경기 전 훈련장에서도 따로 이야기한 시간이 가장 많은 선수다. 특별관리대상이다.

태국 전훈 기간 홍명보 감독은 천종류가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혼자 훈련에서 빠지자 내보내겠다고 호통을 쳤다. 실제로 이적 결정권을 갖고 있는 구단 관리자를 부르기까지 했다. 이어서 선수단 전체를 불러 모아 훈련 태도를 강하게 질타했다. 그 뒤로 선수단의 자세가 달라졌고, 천종류의 훈련 태도도 바뀌었다. 천종류를 시즌 개막 시점에 와서 가장 많이 달라진 선수가 됐다. 항저우의 첫 두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해 인상적인 플레이를 했다. 천종류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항저우 구단 측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홍명보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중국에서 30명의 1군 엔트리에 들지 못한 선수들은 출전 기회를 찾아 3부리그 팀으로 임대 혹은 이적을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홍명보 감독은 여름에 있을 엔트리 교체 시기에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다며 2군 선수 중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잡았다. 오전에 1군 훈련을 하고 나면 오후에 2군 훈련을 직접 지휘하며 가르치고 있다. 그 전 감독들에겐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현 1군 선수단에는 19세 이하 팀에서 재능을 보이는 3명의 선수를 함께 훈련 시키고 있다.

많은 것을 바꾸고 있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다. 홍명보 감독은 항저우의 경기력 수준이 아직 많이부족하다고 자평하고 있다. 무엇보다 골키퍼가 불안하기 때문에 경기 결과를 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볼 소유권을 빼앗긴 뒤 강한 전방 수비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그의 축구철학도 있지만, 선수단 구성상의 문제도 있다.

 

 

 

 

 

 

“우리 팀의 현실은 강등권이다. 강등권에서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선수들과 한 가지 목표를 이뤄야 한다. 얼만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항상 후회없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창춘야타이와 중국슈퍼리그 개막전을 마친 뒤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 감독만 해와서 경기를 치른 뒤 선수들과 이별해야 했다. 이젠 내일도 이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며 웃었다. 홍명보는 처음 맡은 프로 팀에서 감독직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다.

홍명보가 중국 축구, 그리고 항저우를 얼마나 바꿔놓을 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홍명보를 영입한 항저우의 철학에서, 중국 축구가 이제는 시행착오를 딛고 본격적인 발전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선수들이 키나 파워, 스피드 등 소질은 아시아에서 가장 좋다. 자기들이 갖고 있는 것을 쓸 줄 모른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10세 이전에 지금 시스템으로 배운 선수들은 좋을 것이다. 홍명보 감독이 와서 가르칠 선수들은 정신적인 면에서 강해질 것이다. 싸우기 위해선 자신부터 강해져야 한다. 홍명보 감독에게 2,3년 내지 5년의 시간을 주고 싶다.” 우샤오쿤 부사장은 장밋빛 기대를 바라봤다.

퉁후이민 사장은 “눈으로 별을 보지만 발은 땅을 딛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간다”고 했다. 이상과 목표는 크지만 실행은 차근차근하겠다는 말이다. 화려한 영입 리스트에만 시선이 쏠리고 있지만, 중국이 축구에 투자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항저우처럼 내실을 다지는 것에 집중하는 팀도 있다. 스포트라이트 이면의 진실은 현장에 있다. 홍명보 감독은 만나기 위해 시작한 여정의 끝에서 중국 축구의 속살을 조금은 보고 온 느낌이다. 항저우는 중국 내에서도 특별한 케이스다. 어느 팀의 상황이든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할 것이다. 중국은 우리의 생각 보다 크고 넓다.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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