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항저우(중국)] 한준 기자= 보조 경기장을 포함해 총 9개면의 운동장을 보유한 중국슈퍼리그 축구팀 항저우그린타운의 클럽하우스 규모는 거대하다. 1군팀부터 U-12, U-15, U-17, U-19로 구분된 연령별 팀, 그리고 중국에만 존재하는 ‘축구 학교’가 한 곳에 모여 축구로 미래를 그리고 있다.

항저우 클럽하우스는 거대한 부지를 차지하고 있지만, 외딴 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항저우 도심에서 차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근방에 고급 아파트 단지가 모여 있고, 클럽하우스 뒤로는 수십억을 호가하는 부호들의 별장이 늘어서 있다. 떠오르는 중국 경제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지역이다.

사실 항저우는 중국슈퍼리그 안에서 그리 주목 받는 팀은 아니다. 시선을 사로 잡는 스타 선수를 영입한 것도 아니고, 지난 몇 년간 성적은 꾸준히 강등권을 맴돌았다. 5만석 규모의 항저우 경기장에 관중이 꽉꽉 들어차지도 않는다. 항저우 팬들의 열정이 특별히 강한 것도 아니다. 항저우는 중산층이 많은 부유한 도시다.

거리를 걸어보면 사람들의 옷차림과 풍경이 중국의 다른 도시보다 세련되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중국 3대 대학으로 불리는 절강대학교를 중심으로 IT 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한류 인기도 높다. '축구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항저우시를 대표하는 기업 '그린타운(뤼청)'은 축구를 통해 시민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단의 운영 원칙이 중국의 다른 팀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한국 언론이 축구로 항저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전 한국 대표팀 감독 홍명보(47)를 2016시즌의 수장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항저우가 입히고자 하는 것은 ‘한국색’만이 아니다. 2012년 먼저 항저우 지휘봉을 잡았던 전 일본대표팀 감독 오카다 다케시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카다 감독은 현재 항저우 유소년 총괄 감독 직함을 갖고 있다. 상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기 마다 항저우를 찾아 유소년 시스템을 관리, 점검한다.

항저우 연령별 유소년 팀의 감독은 모두 일본인 감독이다. 1군 훈련장에 주로 들리는 말이 한국어라면, 이와 맞닿은 유소년 훈련장에서는 일본어를 듣는 것이 익숙하다. 통역을 통해 전달되는 중국어와 함께 한중일 3국의 말을 항저우 클럽하우스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은 항저우에 부임하면서 한중일 3국 사람들로 코칭 스태프를 꾸렸다. 기존에 대표팀에서 함께 했던 박건하, 김태영, 김봉수 등 한국인 코치진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나도 처음 오는 데 이곳이 낯선 이들이 모두 온다면 시행착오가 커질 수 밖에 없다.”

#홍명보는 왜 다국적 코칭스태프를 구성했나

홍명보 감독은 수석코치로 항저우 유소년 팀 감독을 맡았던 오노 다케시(54) 코치를 영입했다. 일본 프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하던 오노 코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강사직 제안도 받은 상태였는데 홍명보 감독의 요청에 항저우 행을 택했다. “지금 팀의 중심으로 올라온 1993년생 선수들을 맡았던 것이 오노 코치다. 누구보다 이 선수들을 잘 아는 코치다. 내가 팀에 적응하는 데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오노 코치는 상대 전력 분석은 물론 피지컬 트레이닝에 대한 지식도 갖추고 있으며, 항저우 생활에 이미 적응을 마친 지도자다. 홍명보 감독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다. 일본 J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한 홍명보 감독은 오노 코치와 일본어로 대화가 가능하다. 보다 디테일한 소통을 위해 대표팀에서 이케다 세이고 코치의 통역을 맡았던 재일교포 3세 조광수(35)를 한국인 코치로 영입했다. 일본과 한국에서 실업 리그를 경험한 선수 출신으로, 축구 이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올림픽대표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이케다의 피지컬 코칭 노하우를 전수 받은 조광수 코치는 홍명보 감독이 미래를 기대하는 젊은 지도다.

여기에 전 중국대표선수 출신 가오셩(54)과 항저우 유스 팀 코치를 맡았던 왕준 등 두 명의 중국인 코치를 1군에 합류시켰다. 중국 선수들과 가교 역할을 위한 인선이다. 홍명보 감독은 어찌되었든 이방인이다. “내게 필요한 코치도 데려오지만 기존 코치의 의견도 중요하다. 의견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에서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다. 중국 코치의 의견도 많이 듣는다”고 했다. 홍명보 감독이 중국 코치들과 막역한 것은 훈련을 마친 뒤 진행된 내기 게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홍명보 감독은 중국 코치와 같은 편으로 선수들과 게임을 한 뒤 훈련을 정리했다. 개막전을 앞두고도 무거운 긴장감 보다 즐기는 분위기 속에 팀을 다지는 모습이었다.

가오셩 코치는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해 일본어로도 소통이 가능하다. 가와사키프론탈레에서 유소년 팀 감독을 지내기도 했고, 2013년부터 2014년 사이에는 랴오닝우인의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기도 한 베테랑 지도자다. 오노 코치와 마찬가지로 가오셩 코치도 홍명보 감독 보다 나이가 많다. 홍명보 감독은 '부릴' 사람이 아닌, 함께 일할 사람은 코칭 스태프로 앉혔다. 모든 의사 결정 과정은 토론을 통해 결정된다. 실수와 실패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항저우 플랜, 일본의 시스템 + 한국의 정신 + 호주 선수 영입

한중일 삼국의 힘이 합쳐진 곳이 항저우다. 항저우 운영의 실권을 쥐고 있는 우샤오쿤 부사장은 “그린타운은 집을 짓는 회사다. 집 짓기로 비유하면 한국인의 정신으로 기초를 다지고, 일본의 시스템으로 건물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 “일본은 매우 조직적인 축구를 하고, 한국은 전투력이 좋다. 중국은 그런 특징이 없다.” 우샤오쿤 부사장은 일본의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선수들의 기술 기반을 다지고, 한국 선수들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팀 정신을 확립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홍명보 감독은 항저우의 제안을 받았을 때 이 점에 매료됐다. “항저우는 유소년 시스템이 중요한 것을 알고 있더라. 일본 시스템이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중국에는 이런 팀이 없다. 그냥 선수를 사와서 성적을 내는 것만 생각한다. 내게도 한국 선수들처럼 강한 선수들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것은 한국 축구가 오랜 시간 쌓아온 결과물이다. 당장 감독 한 명 왔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답했다. 지금부터 그런 기반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 우샤오쿤 부사장은 “2년 계약이지만 성적과 관계 없이 길게는 5년 정도 홍명보 감독에게 맡기고 싶다”고 했다.

항저우보다 많은 돈을 쓰는 다른 중국 팀들은 유럽과 남미 출신의 명장을 데려오고 있다. 유럽과 남미의 현역 스타를 데려오며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항저우의 방향성은 다르다. 퉁후이민 항저우 사장은 “돈을 많이 써서 스타 선수를 데려오는 목적은 빠른 시간에 성적을 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목적성, 우리가 가진 철학과는 다르다. 우리는 중국 선수를 키워서 중국 축구의 성장을 이끄는 것이 목표다. 다른 팀들이 미친 듯이 돈을 쓰고 있는 데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항저우도 유럽 출신 감독을 영입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중국 선수들의 사정과 상황을고려하지 않았다. 선수들과 마찰도 있었다.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1998년 창단 이후 18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은 중국과 보다 가까운 아시아 축구의 발전된 나라로부터 노하우를 전수 받은 것이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몇 천명의 중국 아이들이 유럽에 나가있다. 우리가 판단하기에는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우샤오쿤 부사장은 중국 안에서, 한국과 일본의 장점을 흡수하며 단계적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중국 축구가 강해질 수 있는 정도라는 생각을 밝혔다.

그런 점에서 홍명보 감독은 이상적인 인물이다. 퉁후이민 사장은 “우리 회장님이 대단한 축구 팬이다. 나도 엄청난 축구 팬이었다. 1982년부터 축구를 봤다. 홍명보 감독은 중국의 많은 팬들이 다 아는 인물이다. 선수로나 감독으로 다 인정을 받은 분”이라고 선임 배경을 말했다. “젊고 활기 있는 감독. 중국 축구와 아시아 축구에 대한 이해가 큰 감독이라는 점을 봤다. 우리 팀은 어린 선수가 많다. 이들의 육성 발전에 가장 적합한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가세한 세력은 ‘아시아쿼터’로 각광 받는 호주다. 항저우가 현재 보유한 다섯 명의 외국인 선수 중 두 명이 호주 대표 선수다. 수비수 매슈 스피라노비치는 지난시즌 중반부터 항저우에서 뛰고 있고, 올 시즌에는 공격수 팀 케이힐이 새로 왔다. 오범석을 포함하면 외국인 쿼터 중 세 명이 아시아 선수다. 코칭 스태프를 포함하면 아시아 축구의 열강 4개국의 힘이 항저우에 합쳐져 있는 셈이다.

 

 

 

 

 

 

#홍명보의 미션, 이기는 팀 보다 좋은 팀 만들기

항저우에 입단해 호주 선수들과 생활하고 있는 수비수 오범석은 “호주 선수들이 모두 젠틀하다. 그리고 아주 열심히 한다”며 인성적으로 훌륭하다고 했다. 실제로 호주 공격수 팀 케이힐은 훈련장에서 홍명보 감독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중국 선수들에게도 의견을 주고 받는 데 적극적이었다. 훈련을 마친 뒤에 그라운드에서 홍명보 감독과 10여분 넘게 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홍명보 감독은 "잘해주고 있어 고맙고 앞으로 그런 역할을 더 해달라는 얘기들을 했다. 그런데 케이힐이 나보다 더 말을 많이 하더라"며 대화가 길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선수들이 모두 적극적이다. 팀과 함께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확실하다.

우샤오쿤 부사장은 홍명보 감독의 “인격적 매력이 넘치는 분”에 이라고 했다. 항저우는 단지 축구 만 잘하는 스타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훌륭한 선수로 좋은 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는 그들의 회사 경영철학과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재산은 돈으로만 따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도 재산이다. 항저우에서 자란 선수들, 그리고 우리 축구팀이 항저우시에 얼마나 공헌하느냐도 중요하다. 돈은 많이 벌고 스타가 되었는데 자선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사회를 위해 하는 일이 없는 선수라면, 우리는 싫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팬들이 인정하는 것은 결국 클럽의 문화다. 상하이 그린랜드 선화의 모 기업도 부동산 회사다. 사람들은 그린랜드가 지은 아파트와 그린타운이 지은 아파트 중에 그린타운의 아파트를 택한다. 그린랜드 아파트가 단단하다는 인정을 받고 있다.”

중국 선수들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부족한 규율과 자기 관리다. 홍명보는 선수들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경력의 소유자다. 여기에 한국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며 쌓은 노하우와 성과는 홍명보를 항저우의 이상형으로 만들어 주었다. 홍명보 감독도 그 점에서 항저우 적응이 어렵지 않다고 했다. 항저우의 30명 엔트리 중 16명이 1993년 이후에 태어났다. 올해 만 23세가 된 1993년생 선수가 9명으로 전력의 중심이다.

“내가 처음 20세 이하 대표팀을 할 때처럼, 정성을 쏟는다. 그때 대학생이었던 (구)자철이나 (김)보경이와 훈련 할 때. 그때 굉장히 정성을 쏟았다. 새싹을 키우듯이, 물도 많이 주고. 성인 대표 선수들은 자기 프라이드도 있고,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있으니 그렇게 까지 하지는 않아도 된다. 어린 선수들은 관심도 많이 갖고, 관찰도 많이 해야 한다. 항저우는 93년생이 주축이고, 94년, 95년생 선수도 많다. 청소년 대표팀을 하던 때의 상황이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홍명보 감독을 향한 호감은 비단 중국 선수들뿐 아니라 호주 선수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케이힐은 “홍명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국의 데이비드 베컴이다. 분명한 레전드”라고 했다. 스피라노비치도 “굉장한 선수였고 환상적인 경력을 쌓았다.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존경한다”고 했다. 특히 센터백 스피라노비치는 “난 그와 같은 포지션이고, 역할도 같다. 그가 가진 대단한 능력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훈련장에서 둘은 유독 홍명보 감독과 소통이 많은 선수들이기도 하다. 홍명복 감독은 두 선수가 팀을 정신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이끌어 주길 바라고 있다. 둘은 열정적으로 그 요구를 이행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부임 후 진행한 하나의 파격인 외국인 선수 스피라노비치를 주장으로 결정한 것이다.

“작년에 주전으로 뛴 수비수 중 남은 것이 스피냐(스피라노비치의 애칭)뿐이다. 중국 선수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 외국인 선수들과 중국 선수들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주장을 맡겼다.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며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라.” 홍명보 감독은 선수 시절 주장을 맡아 무거운 책임감을 경험했다. 대표팀 감독이 된 이후는 주장 한 명에 부담을 주기 보다 선수단 전체가 주장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스피라노비치는 항저우의 유일한 리더십이 아니다.

홍명보 감독은 케이힐과 오범석이 중국의 젊은 선수들에게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스피라노비치도 “책임감을 많이 느끼지만 우리 팀에는 한 명 이상의 주장이 있다. 오범석이나 케이힐 같은 경험 있는 선수가 있고, 자오위하오도 부주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스피라노비치가 주장을 맡은 대신, 중국 올림픽 대표 출신 자오위하오에게 부주장을 맡겼다. 자오위하오는 항저우가 기대하는 1993년생 선수들 가운데 중심적인 선수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겸할 수 있는 선수로, 그 역시 홍명보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 다른 중국 선수들이 조금 가벼운 느낌이라면, 자오위하오는 늘 진중한 얼굴로 훈련장에서 중심을 잡는 모습이었다. 스피라노비치가 부상으로 뛰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주장 완장을 차고, 리그 초반 두 경기에 수비 중심 역할을 했다.

여기에 20대 후반의 중국인 고참 선수 황시앙이 부주장 역할을 같이 한다. 이 결정 과정에도 중국인 코치진의 의견을 꼼꼼히 반영했다. 홍명보 감독은 나이와 국적, 상황에 따라 소외되는 선수들이 없도록 신경 쓰고 있다. 맑은 날에도 미세먼지 때문에 하늘은 혼탁했지만, 항저우 훈련장에는 그늘진 얼굴을 가진 선수가 없었다.

워낙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는 만큼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홍명보 감독도 “바로 얘기를 못하니까 불편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래서 더 많은 소통을 시도한다고 했다. “하다 보니 통역이 전하기 전에 벌써 알아듣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나도 하나씩 중국말을 배우고, 그 선수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다. 굉장히 재미있게 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항저우에서 성공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역일 것이다. 홍명보 감독의 말을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유봉은 항저우에서 뛰었던 선수 출신이다. 항저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축구를 해본 인물이기에 디테일한 부분까지 잘 전할 수 있다. 조선족 출신이라 한국어와 중국어 모두 능통하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 출신이다 보니 내가 무얼 얘기하고 싶은지 다 안다. 어떤 때는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얘기한다"며 웃었다.

 

 

 

 

 

 

#선수부터 관리층까지 모두 젊은 항저우

항저우에서 은퇴한 이후 상하이의 축구학교에서 코치를 하던 유봉(37)을 홍명보 감독의 통역으로 데려온 인물은 우샤오쿤 부사장이다. 우샤오쿤 부사장은 이제 겨우 서른 한 살 밖에 되지 않은 젊은 리더다. 그는 유봉과 항저우에서 함께 선수 생활을 했다. 유럽으로 축구 연수도 다녀온 중국 축구계의 엘리트다.

항저우는 우샤오쿤 부사장 외에 구단 사무국 전체가 다른 중국 클럽 보다 젊은 것이 특징이다. 구태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방법과 개혁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홍명보 감독 영입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우샤오쿤 부사장이다. 항저우가 미래적 사고 방식을 갖고 구단을 운영할 수 있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어린 우샤오쿤 부사장이 과감한 운영을 진행할 수 있는 배경은 그가 그린타운 송웨이핑 회장의 친조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 슈퍼리그에서 가장 어린 팀이다. 클럽 관리층 인사도 가장 어리다. 젊은 층에 기회를 주신 회장님께 감사하다. 돈을 많이 쓰는 팀들과 비교해서 우리가 우세한 점은 팀 전체가 젊다는 것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젊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2~3년은 앞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시즌 항저우는 간신히 잔류했다. 홍명보 감독이 선임되기 전 주전급 선수 상당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항저우는 당장 높은 성적을 기대하는 팀이 아니다. 홍명보 감독에게 주어진 성적 커트라인은 ‘1부 잔류’다. 1993년생 선수들이 경험을 쌓고 성장해 3~4년 뒤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팀을 구축하는 장기 계획이 홍명보 감독의 임무다. 퉁후이민 사장은 “우리는 홍명보 감독에게 충분한 시간을 줄 것이다. 인내심을 가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선수 출신 부사장의 존재는 팀 케이힐 단기 계약이라는 성과를 냈다. 본래 항저우는 브라질 공격수 안젤무 하몽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선수가 부상으로 여름에야 뛸 수 있는 상황이다. 부상 이전 활약이 좋아 장기 계약을 맺은 선수다. 아직 계약 기간이 2년이나 남은 선수였다. 우샤오쿤 부사장은 상하이선화에서 갑자기 계약을 해지당한 케이힐을 단기 계약으로 데려와 하몽의 공백에 대처했다. 행정만 봐온 인물이었다면 추진할 수 없었던 일이다. 중국에서 선수 출신으로 프로 구단에서 행정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례는 거의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10월 말에 리그 일정이 끝나는 중국 슈퍼리그는 12월부터 프리시즌 준비에 들어간다. 홍명보 감독이 12월 말에 계약하고 1월에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한 달 가량 준비가 지체됐다. 외국인 선수 영입도 2월 말에 완료됐다. 여러모로 초반 준비 상황은 미흡하다. 홍명보 감독은 물론 구단 측에서도 초반 성적은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창춘야타이와 리그 개막전에서 2-1 승리로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항저우는 지난 5년 간 개막전에서 이기지 못하던 팀이었다.

항저우는 홍명보 감독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오범석은 “중국의 어린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한다. 스폰지처럼 빨아들인다”며 오기 전에 걱정했던 것과 분위기가 다르다고 했다. 실제로 항저우 훈련장 분위기는 밝고 열정적이었다. 국적의 경계 없이 하나로 뭉친 ‘원팀’이 있었다.

“돈을 놓고 보면 우리가 다른 팀을 이길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 가야 한다.” 홍명보 감독은 훈련 전 미팅에서 “상대에 휘둘리지 말고 우리가 가진 것을 하자”고 주문한다. “무엇보다 경기장에서 여러분들이 가장 즐거워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훈련을 시작한다. 퉁후이민 사장은 “한국 축구가 의지가 강하니 홍명보 감독이 엄격할 것으로만 알았는데 그런 면모와 더불어 어린 선수들과 편하게 소통하는 모습이 좋다. 예상한 것 보다 훨씬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6자 회담이 열리면 나도 불러줬으면 좋겠다.” 홍명보 감독은 사석에서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한국에서 축구를 시작한 홍명보는 일본과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러시아에서 코치 경험을 했으며, 중국에서 첫 프로 지휘봉을 잡았다. 남북 통일 축구경기로 북한도 방문한 적이 있다. 홍명보는 6자회담 대상 국가에서 모두 경험한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물론 홍명보가 항저우를 택한 게 특별한 사명감 때문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즐길 수 있는 일을 택했다.

“일을 택할 때, 기본적으로 내가 얼만큼 도움을 줄 수 있고,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가 우선이다.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은 한국이다. 하지만 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국가를 다니며 생활하고,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낯선 사람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좋다. 일본은 한번 해봤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흥미가 있었다. 축구를 떠나 인생에 좋은 기회라고 봤다.”

(2)편에서 계속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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