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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사이드] 홍명보의 고백 ① “의리로 뽑은 선수는 없다”
풋볼리스트 | 승인 2016.03.07 02:22


[풋볼리스트=항저우(중국)] 한준 기자= 누군가의 진심을 온전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 삶에는 가슴 속을 꺼내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혹은 그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 싶을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무수히 벌어진다. 얼굴을 마주치고 함께 생활하는 사이에도 그런데, 미디어라는 ‘프레임’을 통해 비춰지는 인물들의 진심이야 제대로 알 길이 있을까. 기자의 주관, 여론에 반응, 잘못 알려진 정보 등 다양한 이유로 왜곡될 가능성이 무궁한 것이 미디어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도 그러한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국 항저우에서 프로 감독 데뷔전을 준비하고 있던 홍명보(46)를 만났다. 논란의 중심에 있던 그 자신에게 가장 사실에 근접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가 새롭게 맡은 팀, 그리고 그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도 궁금했지만, 그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벌어진 일이다.

1990년 2월 4일 처음으로 국가 대표 경기를 치른 이후, 2014년 7월 10일 국가대표 감독직에서 물러나기 까지 홍명보는 ‘한국 축구 그 자체’였다. 22년이라는 시간 동안 홍명보가 태극마크를 달고 쌓아 올린 공든 탑은, 마지막 1년 동안 허물어져 내렸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기적을 이룬 영웅들은 2년 만에 ‘의리’라는 프레임 속에 그들 만의 대표팀이 되었다. 명분을 인정 받지 못한 대표팀이 거둔 실망스러운 결과에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가혹한 비난이 날아들었다. 대표팀 귀국 현장에서 실제로 선수단을 향해 엿이 날아왔다. 그 뒤로 대표팀의 회식 동영상과 홍명보 감독의 땅 매입과 관련한 기사가 보도되었다.

당초 보장된 2015 호주 아시안컵 대회까지 대표팀을 이끌기로 했던 홍명보 감독은 스스로 물러났다. 사퇴 회견에서 그는 “내 삶이 그렇게 비겁하지 않았다”는 말을 남겼다. 돌아선 여론을 되돌리기에 충분한 설명을 할 여유도, 상황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본인이 받은 상처가 컸다. 1년 6개월 여의 시간 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야인으로 지내던 홍명보 감독은 새로운 출발선에 서기 앞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그 자신이 원해서 입을 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월드컵을 마치고 정작 준비과정과 전략, 전술 등 축구적인 면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았다.

항저우에서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 대표팀’ 감독직을 맡았을 때 이미 “국민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홍명보의 진심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홍명보라는 인물의 프레임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본래 은퇴 이후 지도자 보다는 행정가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던 홍명보가,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시점의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1. 홍명보는 왜 지도자가 되었나?

2004년 LA 갤럭시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홍명보는 행정가로의 진로 희망을 밝힌 바 있다. 2005년 7월 한국으로 들어온 홍명보는 우선 어린이 축구 교실을 창단했다. 이때 한국 축구는 2006 독일월드컵을 1년 앞두고 또 한번 위기론에 휩싸여 있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최종예선을 마친 뒤 경질됐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새로 선임됐다. 코칭 스태프도 전면 교체가 진행되는 가운데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던 핌 베어벡과 압신 고트비가 합류했다. 여기에 한국인 코치 몇몇이 후보군에 올랐다. 외인 스태프와 한국 선수 간의 연결고리가 된 인물은 홍명보였다.

“처음에 코치를 하게 된 것은 나의 어떤 생각에서라기 보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던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수원 보조 경기장에서 어린이 축구 교실 창단식을 했는데, 그날 저녁 이회택 기술위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대표팀 코치를 맡아달라고 했다. 나는 코치 수업도 받지 않았고, 자격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고사했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더라. 아드보카트 감독이 직접 이름을 찍어서 내려왔다고. 2002 월드컵을 하면서 나와 선수로 같이 했던 핌과 압신이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얘기를 했을 것 같다.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선수로 경험이 있고, 같이 운동 해본 선수들도 많았다. 내 경험을 전하고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은 내가 대표팀 선수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거였다.”

- 지도자를 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해보니 매력이 있었나?
가장 큰 이유는 일본과 미국에서 축구가 현장에서 하는 일 외에 바깥의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 배웠기 때문이다. 선수들을 축구장에서 성장시킬 수도 있지만, 축구를 외적으로 성장시키고, 좋은 성적만 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구단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감독에 대해선 특별히 생각을 갖지 않았다. 축구 교실은 그 일환이었다. 내가 코치로 있을 때는 전부 외국인 감독이었다. 유일한 한국인 스태프였기에 선수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오해하지 않게 전하는 게 중요했다. 선수뿐 아니라 행정 스태프, 의무 스태프 등 감독과 관계하는 한국인은 내가 관리했다. 대표팀 안에 있어보니 팀을 발전시키는 부분을 감독에게도 배우고, 선수들의 피드백도 느꼈다. 지도자가 이런 맛이라고 느낀 것은 2009년에 감독이 되면서다. 가장 큰 매력은 선수들이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 연령별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배경은?
2008년에 한국 프로팀과 일본 프로팀의 오퍼를 같이 받았다. 일본 팀은 내가 거절했고, 한국 팀은 얘기가 진행 중이었다. 그 팀이 중간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래서 내가 그 팀에 지금 가면 안되겠다고, 서로 없었던 얘기로 하자고 끝냈다. 협회에서 20세 이하 청소년 팀을 맡아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왔다. 2012 런던 올림픽을 목표로 하는 팀이라고 했다. 그 기간 안에도 내가 잘못됐으면 올림픽팀을 맡을 수 없는 상황이 됐을 것이다. 다행히 FIFA U-20 월드컵 8강에 들어서 올림픽까지 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 프로 대신 청소년 대표팀을 택한 이유는?
2007년에 대표팀 코치를 하던 어느 날이다. 방안에서 선수 명단을 쭉 보는 데 청소년 대표 출신이 없더라. 당시 황인우 의무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여기 청소년 대표 출신이 몇 명 있나 물었더니 두 세명 밖에 없다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다. 다 부상을 당했거나, 낮은 곳에 가 있고. 내가 지금 있는 팀 항저우와 같은 상황이다. 육성한 좋은 선수가 있다면서 다 어디 간지 모른다. 대부분 부상 중이다. 그렇다면 육성과 관리가 잘못된 게 아닌가. 축구도 중요하지만, 부상 당하지 않고 잘 할 수 있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잘한다던 청소년 대표 출신들, 대표를 경험한 선수들은 다 어디로 갔나. 공정하게 노력해서 대표팀에 온 선수들이지만, 청소년기에 1차적으로 검증을 받았던 선수들이 계속된 검증 속에 살아남았다면 더 나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청소년 대표팀을 맡았을 때는 2012년을 목표로 했지만 이 선수들 모두를 국가 대표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 첫 번째 미션이었다. 2007년에 그런 생각을 했는데, 2009년에 실제로 맡게 되면서 한번 어린 선수들을 키워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 촉박했던 월드컵 제안, 왜 수락했나?

2002 한일 월드컵 4강이 신화였다면,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은 기적이라 불렸다. 홍명보는 10년 만에 한국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성공에서 또 한번 주인공이 됐다. 이후 휴식기를 가진 홍명보는 거스 히딩크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이 이끌던 러시아 클럽 안지마하치칼라에서 코치 수업을 받았다. 이미 감독을 지낸 상황에서 여전히 부족함을 느꼈다. 러시아를 다녀온 뒤 그에게 국가 대표 감독 지휘봉이 주어졌다. 모두가 탐내는 자리지만, 이미 조광래 감독과 최강희 감독이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가운데,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던 자리다. 대표팀 감독을 새로 시작하기에 이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월드컵을 준비할 시간은 부족했고, 해결할 문제는 산적했다. 홍명보는 그 자리에 갔다.

“그동안 대표팀만 해왔기 때문에 클럽 팀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선수로 클럽팀에 오래 있었지만 지도자로 해보고 싶어서 히딩크 감독에게 부탁했다. 흔쾌히 오라고 해서 올림픽이 끝난 뒤 시간을 갖고 그 일을 하기로 했다. 직접 감독으로 하기 보다 (코치로) 한 단계를 거치면서 공부도 하고 경험도 쌓고 다음 단계로 가고자 했다. 그런데 그 당시 한국 축구 상황이 너무 긴박하게 돌아갔다.“

“내가 2012년에 동메달을 땄기 때문에, 2014년에는 나 이외에 어떤 경쟁자도 없었다. 어쩌면 동메달이 내게 족쇄가 된 것 같다. 물론 그것도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다. ‘무슨 소리야. 나 안해. 나는 내 앞길은 생각하면 지금 하면 안돼. 다음에 할거야.’ 이렇게 할 수도 있는데, 난 그런 사람은 아니다. ‘지금 죽게 되더라도 내가 할게. 그리고 죽어버릴 게.’ 그런 성격이기에 한거다. 모든 사람이 다 얘기한다. ‘너 그거 왜 했어. 하기 전에 상의 해야지.’ 난 결정하기 전에 일부러 내 주위의 아무한테도 전화 안했다. 어차피 얘기하면 나보고 미쳤다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하지 않고 나 혼자 판단하고 결정했다.”

- 대표팀 코칭 스태프가 되는 것은 연령별 팀도 그렇지만 모두가 꿈꾸는 일이다.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매번 당장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맡았다. 처음 지도자를 택했을 때처럼 사명감이 컸나?
맞다. 제일 큰 건 사명감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장학사업도 마찬가지고, 코치에 입문 한 것도,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을 맡은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거기서 시작해서 거기서 끝난 것이다. 난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하지 않았다. 내 개인을 위해서 였다면 그때는 대표팀 감독을 안했을 것이다. 하고 싶었다면 2014년 팀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최강희 감독이 그만두면서 누가 할지 말이 많았다. 대한민국이 날 필요로 할 때였다. 난 그런 상황을 비껴가지 못한다. 내 스타일인 내가 죽더라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때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 그 전에는 두 번 고사했다.
두 번 제안을 받았다. 한번은 허정무 감독이 끝나고, 그 다음에는 조광래 감독이 끝날 때 받았다.그 때는 올림픽 팀을 맡고 있었고, 머리 속에 오직 올림픽 만 있었다. 그래서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

- 아드보카트 감독 시절에 이미 짧은 준비 이후 월드컵 본선에서 성공이 어렵다는 것을 경험했다. 선수, 코치, 감독으로 계속해서 월드컵을 경험했다. 아마 한국에서 월드컵을 가장 많이 경험한 사람일 것 같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었을 것 같다..
솔직히 지난 월드컵 팀은 시작부터 말이 많았다. 이 팀은 벌써 그 전에 두 명의 감독이 바뀌는 과정을 거쳤고, 팀이 일원화 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맡으면서도 이 팀의 결과가 어찌될지 알고 있었다.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국민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맡으면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협회에 제안했다. 월드컵을 마치고 떠나면 나도리스크가 크고 협회도 크니, 나한테 한번의 기회만 더 달라. 그게 아시안컵이다. 이건 내 생각도 그랬지만 히딩크 감독의 절대적인 조언이었다. 히딩크 감독과 같이 상의를 했다. 협회에선 아예 2년 계약을 하자고 얘기했지만 난 그렇게 까지는 하지 말고, 딱 한 번의 기회만 더 달라. 월드컵이 잘 못되더라도 아시안컵의 결과가 잘되면 다시 계약하고, 안되면 내가 떠나면 되고.



#3. 의리 논란의 진실, “실제로 모두 그 프레임에 갇혔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실패 이후의 비판은 ‘의리 축구’ 논란이다. 홍명보 감독이 런던 올림픽 멤버를 편애해 공정하지 않은 대표 선수 선발을 했고, 이것이 16강 진출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고 질타했다. 사회적 분위기가 어두운 데다, 런던 올림픽 당시 박주영의 병역 논란, 최강희 감독 재임 기간 기성용의 SNS 파문 등이 터지며 부정적 시선은 더더욱 확산됐다. 대회 전부터 쏟아진 부정적인 시선은 결국 대표팀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베테랑 홍명보에게도 전에 겪어보지 못한 어려운 숙제였다.

“2013년 1월부터 5월까지 러시아에 있었다. 그 기간엔 대표팀에 관심을 못 가졌다. 러시아에서 새로운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와 집에 있으면서 그동안 했던 경기들을 다 봤다. 우즈베키스탄과 마지막 경기에서 한 골을 더 실점했다면 플레이오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과정에 제안이 와서 선임됐다. 그때 기성용 SNS 문제가 터졌다. 그 문제는 나도 굉장히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선수와 선수가 다툰 것이 아니라 선수와 감독 사이의 일이었다.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솔직히 답이 없더라.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디 감히 선수가 감독을 뒤에서 욕하느냐는 게 많았다. 감독의 입장에서 뭘 생각해야 될까. 여론? 최강희 감독? 기성용? 내가 기성용을 안 쓴다고 하면 모두가 수긍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성용은 써야 하는 선수다. 이 상황에서 나의 판단은 선수였다. 선수는 내가 감싸 안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최강희 감독에게 내가 전화도 하고, 기성용한테도 그런 자세를 보여라. 그렇게 했다. 결과적으로는 이에 대한 의견 공방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기성용이나 최강희 감독, 그리고 내 관계 등은 나름대로 괜찮게 마무리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대표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굉장히 높게 만들어 놓고 끝났다.”

- 선수를 택했지만 말한 대로 대표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운 단초가 됐다. 그 결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나?
나는 선수를 선택한 건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그 선수가 지금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선수가 그때 내 선택으로 피해를 받고 선수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 될 수 있겠지. ‘넌 이렇게 했으니 이정도 처벌 받아야 돼. 난 상관 안 해.’ 하지만 그게 아니라 난 이런 상황을 통해 더 나은 선수가 되고, 더 좋은 선수가 되야 한다는 마음을 심어주려 했다. 결과적으로 지금 기성용은 우리 대표팀의 중심적인 선수가 됐다. 그 일로 성숙되지 않고 지금도 똑같이 하는 게 더 문제 아닌가. 난 그 사건을 감싸 안아줬고, 기성용 본인도 진심으로 느꼈다. 지금 잘하고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선수를 택한 것은 지금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2012 런던 올람픽 때도 박주영을 두고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비슷한 상황이지만 반대의 상황이기도 했다. 그때도 선택을 하고 결과가 못 나왔으면 여론의 뭇매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선택한 뒤 대회의 결과가 나온 뒤에 그런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과정 단계에서 너무 심해졌다. 최소한으로 피해를 줄이려고 했는데 국민적 감정 자체가 너무나 나빠진 사건이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방법 자체가 없었다. 선수는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서 결국은 마무리가 됐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커졌다.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논란이었다. 그때부터 대표팀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춰졌다. 응원은 해주겠지만 마음 속 깊이 응원해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냥 열심히 해. 그런 정도. 2002 월드컵을 당시 국민적 성원의 힘을 느꼈다. 저 사람이 정말로 나를 도와주고 싶은 것인가. 진심인가 형식상인가. 진심으로 응원해야 모두 힘이 되는데, 형식적이었다. 그게 가장 컸다.

- 경기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표팀은 소집 기간 짧다. 준비 기간을 보면 10개월이지만, 훈련 일수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도 그 기간 안에 팀을 확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그건 당연하다. 그래도 나한테 좋았던 것은 동아시안컵으로 시작한 것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뛰는 선수들만으로 했는데, 그 안에서 내가 관심이 있었고, 필요한 선수들을 충분히 소집해서 했다. 9월과 10월에는 그 시점에 K리그에서 컨디션이 좋은 선수들, 해트트릭을 한 선수들은 다 불러서 봤다. 조찬호나 임상협도 그때 다 불려서 훈련했다. 그런 과정을 토대로 마지막에 선수 선발이 되는 것이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을 불러서 한 게 아니다.

동아시안컵 때 선수들은 내가 대표팀 코치와 연령별 팀을 하면서 직접 본 선수들이다. 파악하고 있던 선수들이다. 생각한 것만큼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올림픽이 끝난 지 1년 밖에 안된 시점이었다. 올림픽 선수들 중 상당수가 유럽에서 뛰고 있었다. 경기에 못 뛰는 선수들이 몇몇 있었지만 경기력으로 평가했을 때 난 올림픽 때 선수들이 더 낫다고 본거다. 언론에서 내가 K리그 안 본다는 데, 말 안하고 가서 봤다. 내가 가는 게 알려진 채 갔을 땐 집중해서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몰래 가서 다 보고 왔다. 눈에 띄는 선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프로에서 잘한 선수는 웬만하면 다 그 다음 대표팀 경기에 뽑았다. 내가 생각하는 수준의 경기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 2012년에는 영웅이 되었던 선수들이 의리로 뽑힌 선수들이 되어 버렸다.
‘감독이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만 뽑는다.’ 그런 얘기는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 선수를 평가하기 전에, 다른 선수도 평가해야 한다. 그럼 과연 이 선수가 그 선수 보다 나은가. 이 선수가 가지 않으면 월드컵에 나갈 만한 다른 선수가 있었는가.

그리고 또 한 가지. 국가 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에게 소집 외 기간에 할 수 있는 말은 각자 소속팀에서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에 나가지 않으면 대표팀에 들어오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이 것은 나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감독이 똑같다. 경기력이 안되면 뽑을 수 없다. 나도 그 말을 한 것이다. 선수들에게 마지막으로 채찍질을 한 것이다. 벤치에 앉아 있지 말고 겨울 이적 시장에 다른 약한 팀이라도 가라. 그때 유럽에 있는 선수들이 다 옮겼다. 박주영도 아스널에서 2부에 있던 왓퍼드로 갔고, 지동원은 선덜랜드에서 독일로 갔고, 그런 면에서 선수들이 뛰고 싶어하는 의지를 확인한 거다.

윤석영의 경우 소집했을 때 못한 적이 없다. 청소년 대표팀, 아시안 게임, 올림픽 때도 다 잘했다. 영국에서 경기에 많이 못 나가고 있었지만, 내 판단에 윤석영만큼의 실력에 대응할 선수가 K리그에 없었다. 그래서 뽑은 것인데 마치 서로가 친해서 뽑은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 프레임에 갇힌 것이다. (Q: 사실 윤석영은 그때 QPR에서 후반기에는 팀의 승격을 이끌며 맹활약했다.) 마지막에는 레드냅 감독이 보내 주지도 않았다. FIFA 규정까지도 어겨가면서 안 보내줄 정도였다. (Q. 실제로 당시 주전은 런던 멤버가 아닌 새로 뽑은 김진수였는데 뽑혔다가 다쳐서 빠졌다.) 그게 바로 의리라는 프레임에 따 갇힌 부분이다. 분명 사람이 없고 윤석영에 나갈 사람이 없었는데 관계 때문에 뽑힌거라는 생각이 우리를 벗어날 수 없게 꽉 막아 버린 거다.

원래는 그렇게 선발한 선수들에 대한 평가도 시합이 끝나고, 결과가 잘못되면 해야 하는데, 우리는 시작 전부터 비판을 받았다. 바깥에서 얘기하는 의리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 같다. 선수들이 스스로 당당히 실력으로 뽑혔다고 생각을 하지않는 것이다. 친해서 뽑혔다고 생각하니 선수들도 나를 보면 눈을 못 맞추고 나도 그럴 정도였다. 그게 아닌데도 우리는 그 프레임에 갇혀서 벗어날 수 있는, 회복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공간적 여유가 없어졌다.

- 당시 K리그에서 연속 공격 포인트 행진을 하던 이명주를 뽑지 않은 것이 ‘의리 논란’에 결정타였다.
맞다. 난 대표팀 생활을 오래 했다. 가장 문제가 없는 선수 선발은 이거다.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 한 명, 언론에서 좋아하는 선수 한 명, 지금 컨디션이 좋은 선수 한 명. 이렇게 뽑으면 문제가 없다. 그 당시에 이명주는 섀도우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포항에서는 김승대 밑에 섰다. 이명주는 볼 키핑력이 있고 패스는 좋지만 스피드가 없다. 영남대 2학년때부터 올림픽 대표팀 후보군으로 데려가서 계속 훈련 시켰다. 결과적으로 2012년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2014년에는 그 자리에 김보경, 구자철, 이근호가 있었다. 구자철, 이근호를 옵션으로 봤는데, 그들과 비교했을 때 이명주가 다 높다고 쉽게 얘기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 전훈 때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2,3년 지켜본 상황에서 이명주의 포지션은 원래 거기였다. 그런데 황선홍 감독이 선수가 없으니 너 여기 한번 해봐. 해서 했는데 계속 잘하면서 그 포지션이 된 거다. 그런데 대표팀에서까지 쓸 상황은 아닌거다. 월드컵에 이명주가 간다면 수비형 미드필더로 생각한 건데 멕시코에 0-4로 진 경기에서 실망했다. 나도 어떤 게 문제 없는 선발인지 다 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고민한 것은 이 선수 선발이 다른 사람들에 비춰져서 문제 없으면 되는 것이냐, 정말 우리 팀에 필요한 선수를 뽑는 것이냐. 우리 팀에 필요한 선수를 뽑는 것이 내 일이다. 이명주만 뽑았어도 의리 얘기는 안 나왔을 것이다. 그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난 택하지 못했다. 구자철과 이근호가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 인기 있는 선수를 뽑으면 선수 선발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한편에선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미친놈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감독으로 그런 선발은 안 한다.

-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난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훈련 프로그램부터 선수단 장악법 등등이다. 또하나는 외국인이라 한국어를 모른다. 한국 언론이 뭐라고 하는지 모른다. 자기 생각대로 갈 수 있는 거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외국인 이상으로 언론에서 뭐라고 하는지 안 보려 했다. 이걸 보면 헷갈리고, 저걸 보면 또 헷갈린다. 난 그런 점도 외국인 감독에게 배웠다.

- 최종 엔트리 발표가 다른 나라보다 빠른 편이었다는 점도 지적이 있었다. 엔트리 교체도 발생했다.
많이 빠른 건 아니었다. 엔트리 발표 마감 전에 있었던 마지막 주말 경기가 끝난 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발표를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때 김진수가 딱 걸린 거다. 김진수가 경기를 마치고 일본에서 날아왔는데 다쳤다는 거다. 경기 비디오까지 왔다. 그날 컨디션이 엄청 좋았다. 근데 이상하게 다쳤더라. 이케다 세이고 코치와 커뮤니케이션하고, 일본 구단과도 얘기했는데 그쪽에선 2주 정도를 예상하더라. 하필 이 자리에 박주호도 봉와직염을 앓고 있었다. 우리의 레프트백 후보군은 박주호, 김진수, 윤석영이었다. 그런데 김진수와 박주호 모두 부상이 있으니 둘 중 하나 밖에 선택할 수가 없다. 그때 우리는 박주호를 훈련 시켜 놓았다. 봉와직염을 앓아서 4월에 들어왔다.

(Q. 박주영도 봉와직염을 앓았는데 박주호는 왜 안됐나?) 박주영은 미리 알고 한국에 들어와서 치료를 받았다. 박주호는 유럽에서 적절하지 않은 치료를 하며 2-3주의 시간을 허비했다. 박주영이 훈련을 시작한 시기에 박주호는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었다. 박주호는 이케다 코치가 하루에 한 번, 두 번씩 훈련 시키고 준비시켰다. 김진수가 결국 안되면서 박주호로 바꿨다. 우리는 다 그때 어린 선수들이 많았기에 왼쪽에 윤석영이 뛴다면 다른 한 명은 경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고 봤다. 작은 경험이라도 그때는 필요한 시기였다.

- 지난 월드컵 팀의 문제는 경험 있는 선수가 적다는 것이었다. 주장을 맡을 만한 베테랑이없었던 것이 큰 아쉬움으로 꼽힌다.
그랬다. 예를 들면 나도 선수 시절에 그랬고, 박지성 같은 선수도 그렇고 구심점이 될만한 선수가필요하다. 밖에서 보기에 구자철이 약한 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봐왔던 주장의 역할 측면에서, 구자철이 충분히 그 역할을 해줄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주장은 감독 이상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세상이 달라져서 그것 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과 친밀감, 관계가 좋아야 하고 안에서 나오는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한다. 스태프와 선수의 가교가 되야 한다. 곽태휘도 생각했다. 충분한 리더십이 있는 선수인데 경기에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조금 없었다. 우리 구성원 안에서는 구자철이 주장을 하는 것으로 스태프 회의에서 결정했다.

- 박지성이나 차두리 같은 베테랑이 없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박지성은 벌써 대표팀 은퇴를 했었다. 선수가 은퇴하고 싶다고 하면 존중해줘야 한다고 나도 말한 적이 있다. 내가 감독이 되었을 때 대회를 앞둔 4,5월쯤 언론에서 박지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대표팀 은퇴는 했지만 PSV 에인트호번에서 여전히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퇴 여부와 관계 없이 필요하다, 아니다, 불필요한 잡음이 나올 것이다. 직접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박지성에게 의사를 물었으나 결과적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차두리는 3월 그리스 전에 데려가려고 소집을 했는데 ACL 경기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안 됐다. 그리스전 경기에 직접 보지 못했고, 그 뒤로는 갓 회복해서 좋은 경기력을 하기 어려운 시기라 뽑을 수 없게 된 것이다.



#4. 월드컵 준비 과정, 무엇이 문제였나?

- 홍정호. 하대성 등이 다치고, 전체적으로 선수단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불운도 있지만 체계적 관리가 안되었다는 점도 지적됐다. 황열병 주사를 늦게 맞은 부분도 비판이 있었다.
그 동안 준비하며 쌓은 경험과 데이터를 보고 평가했다. 선수들과 개별 면담을 통해 컨디션을 체크했다. 결과적으로는 컨디션 문제에서 우리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컨디션 좋지 않기에 경기력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황열병 주사는 내가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선수들이 제각기 떨어져 있었고, 5월에 소집해서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의무분과위원회와 상의해서 진행했는데 그것도 영향이 없었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미국 전훈지의 환경은 좋았다. 비가 며칠 오긴 했지만 하루 이틀 그럴 수 있는 거다. 마이애미의 5월은 날씨가 좋다.

- 러시아전은 반드시 이겨야 했는데 선수 교체 이후 실점했다.
그 부분은 나도 아쉽다. 그 상황은 버텨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나전 실수로 곽태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때였다. 그때 곽태휘의 경험을 선택하면 어땠을까 생각은 했다. 다 끝나고 나서 태휘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끝나고 나서야 알 수 있다. 인생은 A아니면 B, 둘 중 하나의 선택이다. A를 해서 잘되면 맞은 거고, B를 했는데 아니면 틀린 거다.

- 러시아전 이후엔 훈련장 분위기 좋았다. 그러나 알제리전이 결정적 패착이 됐다. 알제리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나?
기본적으로 러시아를 조금 더, 약 15% 정도 더 분석한 것은 맞다. 첫 경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알제리, 벨기에도 상당히 많이 분석했다. 알제리 같은 경우, 실점 장면을 보면 우리가 공격에서 앞으로 나가는데 상대 수비수가 그냥 걷어 냈다. 그 볼이 김영권과 홍정호 사이로 떨어졌는데, 거기에 상대 포워드가 들어갔다. 둘이 그걸 마크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축구에서는 개인적인 실수로 본다. 조직적인 실수가 아니다. 거기서 파울로 끊었으면 그냥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 실수는 코너킥 상황에서 나온 골키퍼 미스다. 그 두 골로 게임이 끝나버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 골 넣고, 두 골 넣었다. 물론 또 골을 먹긴 했지만. 경기 자체는 처음에 나온 두 번의 실수가 흐름을 완전히 바꿔놨다.

- 홍정호는 경기를 뛰기 어려운 몸 상태인데 나갔다고 했다.
홍정호의 몸 상태는 우리 의무팀과 피지컬 코치가 전체적으로 확인했다. 몸 상태가 되지 않는데 나가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본인의 의지도 있었다. 우리 판단으로는 문제 없다고 보고 내보낸것이다. 스포츠는 결국 결과론이다. 이기면 상관 없고, 비겨도 괜찮은데 지면 여러가지 문제가 나온다. 러시아전 등 그전 상황은 전혀 문제 없다고 판단이 들어서 선발로 내보낸 것이다.

- 김영권, 홍정호 등 두 센터백이 모두 공을 잘차고 영리한 타입이다. 좀 더 힘있고 파이터 성향의 선수가 있었으면 어땠나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경험이 부족한 조합이기도 했다.
나는 수비도 중요하지만 공격적인 부분도 생각한다. 수비가 공격의 시작이다. 여기서 패스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공격 패턴 자체가 달라진다. 두 선수는 빌드업 과정에서 굉장히 좋은 능력을 가졌다. 수비적 능력만 가지고 보면 공은 못 차도 뛰어난 선수들이 있다. 그러나 그건 내가 갖고 있는 축구관에선 원치 않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패싱력과 수비력을 모두 갖춘 선수를 필요로 했다.

- 전방 압박이 중요하다. 러시아전은 잘됐는데 알제리전은 잘 안됐다. 정성룡 골키퍼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골을 먹고 나버리니까 흐름 자체가 넘어갔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두 골을 내주니까 벌써 선수들은 혼이 나간 상태였다. 정성룡을 선택한 이유는 경험이다. 다른 선수들이 다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벨기에전은 정성룡의 경기력이 좋지 않았기에 또 내보내기엔 위험성이 있었다. 다음 선수가 나가는 것이 맞는 상황이었다.

- 박주영은 그리스와 경기에서 경기력이 좋았다. 그때는 모두가 선발을 공감했다. 막상 월드컵에선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움직임이 좋았지만 득점이나 슈팅이 없었던 점은 전문가가 아닌 대중은 잘 알기 어려운 부분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괜찮았다. 박주영 역할은 1차적인 수비 역할이었다. 내가 지시한 것이다. 박주영이 수비를 잘 해주지 못하면 우리는 미드필드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공격적인 것도 요구했지만 수비적인 것도 함께 요구했다. 박주영은 충실하게 그 역할을 잘해줬다. 그걸로 난 만족한다. 골은 못 넣었지만 박주영이 매번 나가서 골을 넣을 수 있나. 그건 아니다. 골은 다른 선수가 넣어도 된다. 조커로 나간 이근호가 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전략은 그거였다. 수비는 절대적으로 다 함께 한다. 그 중에도 제일 중요한 것이 센터포워드다. 주영이는 올림픽에서도 같이 했고, 국제 경험도 많은 선수다. 그런 역할을 해줬다.

- 2002년과 2012년의 성공도 있지만, 사실 대표 선수나 코치로 월드컵 같은 무대에서 실수나실패를 한 적도 적지 않다. 감독으로 느낀 2014년의 실패는? 다른 때와 달랐던 것은 무엇인가?
역시 월드컵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나오는 무대다. 얼만큼 잘 준비하느냐, 그 과정이 중요하다. 아무리 약한 팀이라도 준비를 잘하면 모른다. 월드컵의 승패는 준비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경험을 2002년에 했다. 그에 비해 2014년의 준비과정을 보면, 내가 감독이 된 이후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선수단 내의 SNS 문제도 그렇고 의리 논란도 그렇고. 나는 대표팀에 있으면서 이 팀이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격려를 받고, 다시 일어나고. 항상 그런 생각이었는데 2014년에는 나도 그렇고 이 팀도 국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로 국민들에게 아주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팀이라는 인식을 했다.

- 마지막 벨기에전에는 투혼이 보였다. 아시안컵까지로 계약을 한 것은 월드컵의 실패가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나?
맞다. 때론 결과를 알고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다. 우선 최대한열심이 준비를 하고, 월드컵이 잘못되더라도 치르고 나면 다음 스텝엔 굉장히 좋아질 것이라 봤다. 그래서 아시안컵 얘기를 한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봤다. 올림픽에서 한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1년 간 준비해서 월드컵에 가면 어떤 결과가 나오고, 그 다음 아시안컵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고 있었다. 월드컵을 치른 다음에는 그냥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수준을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2)편에 계속 됩니다.

사진=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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