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 선수가 되면 전 세계에서 일할 수 있다. 미드필더 김귀현은 이 말을 몸소 증명한 선수 중 한 명이다. 한국 선수들과 인연이 깊지 않은 나라에서 특별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해 대구FC를 거쳐 오만 최초의 한국인 선수가 된 김귀현이 오만 스토리를 전한다. 축구가 아니었다면 평생 접하지 못했을 나라 오만 속으로 김귀현과 함께 가보자. <편집자 주>

알나스르에 입단하고 아직 채 한 시즌이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감독이 다섯 명이나 바뀌었다. 오만리그 팀들이 전반적으로 그렇다. 벌써 11개팀이 감독을 교체했다. 알오루바는 네 명의 감독을 경질했는데, 그래도 우리 팀이 가장 많이 바꿨다.

우리 구단주가 유독 급한 성격인지, 중동 사람들이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잘 하다가도 몇 경기만 지면 바로 감독 경질을 결정하는 분위기다. 인내심이 없다고 할까? 우리 팀에 온 외국인 선수 한 명도 첫 번째 경기를 속된 말로 ‘시원하게 말아 먹고’ 난 뒤에는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방출됐다.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여기서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외국에서 온 ‘용병’이고, 나도 잘 못하면 ‘전반기가 끝나고 버려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매 경기가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늘 이어지는 압박감 속에 버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었다. 축구 선수에게 가장 먼저 생기는 친구는 역시 선수일 수 밖에 없다. 운동장에서 함께 땀을 흘리는 동료들과 마음이 통했다. 먼저 다가온 것은 오만 선수들이었다. 그 중에도 수비수인 마르완(Marwan Abdul Rajab)이라는 친구와 ‘절친’이 됐다.

우선 마르완은 일단 영어를 잘 하는 선수라 의사소통이 되는 친구였다. 오만이 처음인 내게 먼저 다가와 많은 도움을 줬다. 오만 적응 과정에 이 친구가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지낼 수 있었을 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도움을 줬다.

짐도 많이 싸오지 못한 채 왔고, 혼자 무얼 해먹기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 할 수도 없었다. 밖에서 혼자 밥을 사먹는 날들이었다. 마르완은 그 사실을 안 뒤로 항상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점점 친해졌다.

마르완은 스스로 나서서 훈련을 할 때나, 구단 직원과 얘기를 할 때 통역까지 해줬다. 오만에서 내 기사 역할도 해줬다. 오만은 대중 교통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아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가 어렵다. 택시를 잡는 것이 고작인데, 택시를 찾아보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내가 나가고 싶을 때마다 마르완은 기꺼이 함께 해줬다. 우리집에 직접 데리러 와서 일을 본 뒤에 데려다 줬다. 마음 착한 마르완 덕분에 오만 생활이 즐겁고 편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르완의 집에서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보기로 했다. 늘 마르완만 우리 집에 오고 갔는데, 마르완의 집을 방문해보고 깜짝 놀랐다. 궁전 수준으로 으리으리했다. 알고 보니 오만에서도 굉장히 부유층에 속하는 집안 출신이었다.

마르완의 아버지는 군인이다. 별 세 개를 단 장군이라 오만 내에서 영향력이 아주 큰 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착해서 놀랐는데, 그 다음으로는 너무 잘 살아서 놀랐다. 물론, 환경이 어떤가를 떠나 마르완은 정말 좋은 친구다.

마르완과 늘 같이 붙어 다니다 보니 구단 직원들은 우리 이름을 바꿔서 부르며 장난을 친다. 나를 마르완이라고 부르고, 마르완을 킴이라고 부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르완과 이토록 친해진 배경에는 ‘한류’가 있었다. 마르완의 누나들이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고, 그러다 보니 마르완도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나를 알기 전에 이미 몇 마디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마르완은 “사랑해”나 “감사합니다”같은 일반 적 말부터 한국어 욕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어를 안다는 것도 놀랍지만 발음이 워낙 좋아서 그게 더 놀라웠다. 한국 드라마를 얼마나 봤는지, 그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마르완의 주변에 K팝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마르완은 한국 문화에 대해 어느정도 잘 알고 있었다.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로도 대화가 되는 친구라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내 오만 생활 적응에는 오만에도 부는 ‘한류 열풍’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마르완은 수비수고, 난 그 앞에서 뛰는 미드필더다. 우리는 등번호도 가깝다. 마르완은 13번, 나는 14번이다. 어찌 보면 운명적인 만남 같다.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것은 돈도 있고, 명예도 있지만, 얼마나 좋은 사람을 만나느냐가 더 중요하다. 오만에 와서 마르완이라는 친구를 만난 것이 내가 오만리그와 알나스르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구술=김귀현
정리=한준 기자
사진=김귀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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