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목포] 권태정 기자=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천생(天生)’ 주장 조소현이 지난달 입단한 일본 아이낙고베에서도 주장 역할을 할 기세다.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이 전지훈련 차 묵고 있는 목포현대호텔에서 조소현을 만났다. 지난달 아이낙고베 입단 후 팀 훈련을 갖느라 다른 대표팀 선수들보다는 열흘 늦게 합류한 조소현은 하루 세 탕씩 웨이트 훈련을 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없는 사이 임시 주장을 맡았던 지소연에게 주장직 인수인계를 받고 난 뒤, 조소현은 빠르게 팀 분위기를 살폈다. 타고난 주장인 조소현은 뒤에서 알게 모르게 동료들을 챙기는 것이 몸에 배있다.

팀을 옮긴 직후라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조소현은 자신 있게 새 팀에서의 적응이 끝났다고 말했다. 생애 첫 해외 진출이었지만 낯가림의 시간은 고작 일주일이었다. 조소현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이미 준비가 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조소현과의 인터뷰 전문.

-대표팀에 다른 선수들보다 약 열흘 정도 늦게 합류했다. 분위기는 어떤가?
체력 훈련이 많아서 힘들었다고 그러더라. 그래도 아시안게임(2014년) 때보다는 덜했다고 했다. 그때는 여름이었으니까… 분위기는 괜찮다. 최종 명단이 발표되고 나서 약간 흔들리긴 했다. 의외의 선수들이 나갔다. (권)하늘이나 (이)은미가 나가게 될 줄은 몰랐다. (여)민지도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나가게 돼서 아쉬웠다. 남은 선수들도 좀 당황한 것 같다. 나마저도 그랬다. 어쨌든 결정은 감독님과 코칭스태프들이 하는 거다.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소연이 임시 주장을 맡았다.
지난번 중국 4개국 친선대회 때도 내가 늦게 합류해서 소연이가 주장을 맡고 있다가 내게 넘겨줬다. 하기 싫다고 빨리 오라고 한다(웃음). 소발이(지소연의 별명)는 워낙 자유분방한 아이고, 자기 의사가 강한 친구다. 완장을 차게 되면 바로 제약이 생기니까 힘들었을 거다. 그래도 그 또래 선수들 중에서 소연이가 주장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지 않나 생각한다. 나나 (심)서연이가 은퇴하고 났을 때 누가 주장을 맡을까 생각해 보면 소연이가 먼저 떠오른다. 자기 실력도 보여주면서 주장 역할도 해낼 수 있는 선수가 소연이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에이스인 즐라탄(이브라히모비치)이 완장을 찬다. 팀의 에이스가 주장 역할까지 하면 더 시너지가 날 수 있다. 소연이가 지금은 힘들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주장 조소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주장이라는 자리가 내 것을 하면서 남까지 챙겨야 하는 자리다. 원래 평소에도 다른 사람을 많이 챙기는 편이다. 중학교 때도 주장을 맡았었는데, 내가 다른 친구들을 하나하나 챙기는 걸 지켜보신 부모님께서 고등학교 갈 때는 감독님한테 나를 주장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까지 하셨다(웃음). 대표팀에서는 2012년 런던올림픽 예선 때 주장을 맡았었고, 2014년 아시안컵 때 서연이가 다치는 바람에 주장을 맡게 됐다. 이후로 쭉 주장을 맡고 있다. 주장이 아닐 때에도 다른 사람들을 많이 챙기는 편이긴 한데, 주장을 맡으면 책임감이 더 생긴다. 완장의 무게는 직접 완장을 차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 같다.

-아이낙고베에 입단한 지 약 한 달이 됐다. 많이 적응했나?
솔직히 훈련 시작하고 첫 일주일 동안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훈련하는 데 규칙도 모르겠고, 내가 방해되는 것 같고 하니 자신감이 떨어져서 훈련 나가기도 싫었다. 그래서 계속 되뇌었다. ‘안돼, 소현아, 흔들리면 안돼, 계속 해야 해.’ 멘탈 붙잡느라 고생했다(웃음). 소연이가 해외진출을 적극 권유하면서 했던 말이 ‘가서 꼭 성공해야 한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한다’는 거였다. 첫 일주일 동안 소연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일주일이 딱 지나니까 괜찮아지더라. 훈련 방식도 익숙해지고 선수들이랑도 친해지니까 이제는 훈련 나가기가 신난다. ‘아싸! 훈련이다!’ 하면서 나간다.

-선수들이 잘 대해주나?
걱정했던 것보다 빨리 친해졌다. 미리 일본어를 공부해 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말이 어느 정도 통하니까 소통하면서 점차 조화가 되는 것 같다. 훈련할 때 자신감을 갖고 축구로 보여주다 보니까 나를 조금씩 인정해주는 것 같다. 이제는 내가 먼저 말도 걸고, 챙겨주기도 하고, 어떻게 해보자고 제안도 하곤 한다. 다들 착해서 잘 대해준다. 나보고 상냥한 사람이라더라. 내가 우리나라에서는 무서운 선배로 통한다고 했더니 안 믿더라(웃음).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다면?
원래 적응하는데 좀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1년 차에 고생 좀 하겠구나 생각했다. 예전에는 새로인 팀에 가면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버리고 그 팀에 다 맞춰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이제는 생각을 바꿔서, 내가 가진 것을 지키면서 이 팀의 장점들을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는 것 같다. 일주일밖에 안 걸려서 정말 다행이다.

-직접 경험해본 일본축구는 어떤가?
모두 알다시피 패스축구를 한다. 빠르고 정교한 패스축구를 추구한다. 훈련 강도도 높다. 내가 힘들다고 하면 진짜 힘든 거다(웃음). 근데 재미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어 좋다. 패스게임도 여러 가지 규칙을 적용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한다. 처음에는 규칙을 신경 쓰면서 하는 게 어려웠는데 점점 익숙해져서 재미가 생겼다. 그리고 모든 선수들이 주눅드는 게 전혀 없다. 자기 생각에 따라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다양한 플레이를 시도한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플레이도 나온다. 한국은 큰 틀에 맞춰서 축구를 하는 반면, 일본은 자유분방함 속에 질서가 있다고 할까? 나는 처음에 이렇게 해도 되나, 저렇게 해도 되나 고민을 했었는데, 감독 말이 ‘생각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라’는 거였다. 그래서 나도 내 판단에 따라 플레이를 하다 보니 조금씩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오는 것 같다. 직접 해보면서 배우고 있다.

-한국에서는 줄곧 숙소 생활을 하다가, 일본에서는 혼자 지내고 있다.
원래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내 스스로 스케줄을 관리하고 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인천현대제철에 있을 때도 혼자 과외를 받거나 공부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 지금은 완전히 혼자 지내고 있는데, 이것도 재미있다. 낮에 장 봐와서 직접 밥 해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국 오기 전에는 카레를 해먹었다. 나중에는 팀 동료들을 집에 초대해서 떡볶이나 잡채 같은 한국 음식들을 대접해 봐야겠다. 돌아가면 아예 내 몸에 맞게 식단을 짜서 관리해볼 생각이다. 다른 사람이 챙겨주지 않고 내 스스로 몸 관리를 해야 하다 보니까 오히려 신경도 더 많이 쓰고 공부도 하게 된다. 몸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더 느낀다.

-남자친구와 떨어져 지내는 건 괜찮나?
일본 진출이 결정됐을 때 가장 축하해 줬다. 남자친구는 전부터 어디든 나가라고 응원해줬다. 일본에 오고 나서 처음에는 정신이 없어서 문자 답장을 제대로 못했더니 서운해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숙소 생활을 하니까 연락이 좀 뜸해도 걱정이 없었는데, 지금은 혼자 지내니까 더 걱정이 돼서 그런 것 같다. 대화로 잘 풀었다. 한국 오는 날 남자친구가 공항에 마중 나와서 목포까지 데려다 줬다. 서로 서운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웃음).

-1년 임대 계약인데, 그 이후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1년은 짧은 것 같다. 최소한 2년 정도는 한 리그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은 후에 다른 리그에 도전하고 싶다. 언어도 현지인만큼 잘하고 싶다. 1년 안에 일본어 자격증 따려고 한다. 이왕에 하는 거면 회화뿐 아니라 제대로 하고 싶다. 은퇴 후에 스포츠마케팅 쪽에서 일하고 싶기 때문에 외국어를 배워두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다른 나라에 가서도 그 나라 말은 꼭 매울 거다. 원래 외국어 공부를 좋아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브라질 선수들이랑 대화하려고 포르투갈어 책을 사서 독학을 했다. 많이는 못했지만… 영어랑 독일어는 과외도 받았었다. 독일어는 어렵긴 하지만 발음이 마음에 든다. 중후한 느낌이 좋아서 꼭 배우고 싶다. 프랑스 리옹과도 이적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그때 프랑스어 책을 사서 공부하기도 했다. 해외진출이 내게 많은 자극을 주고 있다. 좀 더 일찍 나오면 좋았을 걸 싶다. 목표의식이 생기고 더 많이 성장하고 싶다.

-런던올림픽 예선에서 1승1무3패로 탈락했었다. 4년만에 다시 도전하게 됐는데?
4년 전의 어렸던 선수들이 이제는 대표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우리는 조금씩 기량이 올라가고 있는 시점이다. 일본은 2011년 월드컵 우승 등의 좋았던 멤버들이 점차 저물 시기다. 물론 노련미는 더 있겠지만 체력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있을 거다. 북한도 예전만큼은 아니다. 작년 동아시안컵 때도 경기 초반에 우리가 좋은 장면을 많이 만들었었다. 이제 기량 면에서 비슷한 시기가 온 것 같다. 한 끗 차이다.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이 될 것 같다. 쉬운 싸움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다. 선수로서 올림픽에 한 번은 나가봐야 하지 않겠나. 스물아홉이다. 이번에 꼭 나가야 한다.

-이틀 간격으로 5경기를 치러야 해서 체력적인 부담도 있을 것 같다.
로테이션으로 안배를 하게 될 거다. 북한, 일본을 1, 2차전에서 만나게 된 것이 부담도 되지만 한 편으로는 잘됐다고 생각한다. 초반 두세 경기를 죽었다 생각하고 참고 뛰면 되지 않겠나. 각 경기마다 어떻게 경기를 운영해야 할 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쓸데없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면서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도록 내 위치에서 정리를 해줘야 한다. 한 경기 결과로 순위가 갈리는 상황이 분명이 생길 것이기 때문에 경기 운영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월드컵과 올림픽 중 어느 대회가 더 꿈의 무대에 가깝나?
비슷한 것 같다. 작년 이맘때는 두 무대가 모두 미지의 세계였다. 월드컵 무대를 밟아봤으니 이제는 올림픽 차례다. 두 대회를 모두 나가본다는 것은 선수로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국여자축구가 크게 발전할 거라 생각한다. 월드컵 때도 그랬지만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게 확확 변하진 않겠지만, 조금씩 발전해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남자올림픽대표팀의 한일전 패배를 봤나? 일본을 이겨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일본에 있을 때 봤다. 상당히 열이 받았다. 2-0으로 이기고 있을 때도 조금 불안했다. 이전 경기에서 후반전에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차라리 잠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후반 들어서 우리 분위기가 슥 내려가는 걸 보면서 불안해졌었는데, 연달아 실점하는 걸 보고 정말 아쉬웠다. 일본 중계진이 소리지르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아쉬운 마음이 더 커졌다. 다음날까지 뉴스마다 축구 얘기가 나왔다. 그 마음을 기억하면서 꼭 승리를 쟁취하고 싶다.

사진=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제주 라이브] 전훈지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카메라 전쟁’
[UCL FOCUS] 불가능 없는 메시, 체흐 징크스 없었다
‘경험 무’ 즐라탄, “EPL에 적합한 남자”
바르사, “승우-승호, 미트윌란 압박감 느끼게 했다”
[특강 모집] 풋볼리스트 아카데미X 축구직업설명서! 3월 주말 특강 개시!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