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 선수가 되면 전 세계에서 일할 수 있다. 미드필더 김귀현은 이 말을 몸소 증명한 선수 중 한 명이다. 한국 선수들과 인연이 깊지 않은 나라에서 특별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해 대구FC를 거쳐 오만 최초의 한국인 선수가 된 김귀현이 오만 스토리를 전한다. 축구가 아니었다면 평생 접하지 못했을 나라 오만 속으로 김귀현과 함께 가보자. <편집자 주>

2015년 8월. 오만의 한 축구 팀에서 내 경기 영상을 보고 직접 테스트해보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 처음 연락을 받고 든 생각은 사실 두려움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봐도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오만 생활이 어떤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확실한 입단 제안도 아니었기 때문에 가봐야 하는 지 자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여자친구와 같이 몇 번이고 생각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인 이유는 축구적인 부분과 별개였다. 당시 한창 언론 지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김군 이야기’ 때문이다. IS(이슬람국가)로 향한 한국인 고교생의 이야기, 그리고 불안한 중동 정세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오만 무스카트로 향하는 여정이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이어지기 때문에 김군과 IS가 자꾸만 떠올랐다.



결국은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난 축구 선수다. 날 원하는 팀이라면 만나볼 가치가 있다. 내가 뛸 수 있는 무대라면 다른 문제로 주저하지 말자.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도전해보겠나. 무조건 가자. 마음을 굳혔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얘기지만, 그때는 나름 비장한 마음이었다. 내 축구 경력이 달려있기도, 인생이 달려있기도 한 선택이라 여겼다. 짐을 꾸릴 때까지도 오만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별로 없었다. 평소 잠이 많은 편인데 비행기 안에서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나름 강하게 마음을 먹었지만 가슴 한 구석에 남은 불안감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오만 무스카트에 도착했을 때 두 젊은 청년 두 사람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나오는지 몰랐고, 말도 안통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킴, 킴!”하는 것을 보니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둘이 내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무리 없이 만났다. 동양인 방문 자체가 많지 않은 것도 있지만 나름 개성 있는 얼굴이라 바로 알아본 것 같았다.

무스카트까지 혼자 날아왔는데, 그 다음 일정에 비행이 또 있는 줄은 몰랐다. 두 청년은 내게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다시 뜨끔. 혹시 이상한 곳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라는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2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내린 곳은 나를 보고 싶다는 팀 알나스르SC의 연고지 ‘살랄라’였다.

살랄라는 오만 제2의 도시다. 수도 무스카트 다음으로 큰 도시다. 한국으로 따지면 부산과 비교할 수 있는 도시라고 한다. 살랄라에 도착해서도 이미 나를 알아 보는 구단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야 공항에서 나와 차를 타고 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파트에 도착해 짐을 풀고도 한 동안은 두근거림이 가시지 않았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 그리고 텅 빈 아파트에 혼자 있는데, 누군가 불쑥 나타나지 않을까. 무서운 마음이 하루 내내 발 끝을 간지럽혔다.

도착 당일에는 쉬라는 얘기 뿐이었다. 하루 푹 쉬고 좋은 컨디션으로 훈련에 합류하라고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긴 잠에 빠졌다. 하루 온종일 잠만 잤다. 다음 날 다른 직원이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훈련장으로 데려갔다.

무섭다는 생각이 컸는데 막상 훈련장에서 본격적으로 인사를 나누고, 공을 차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정말 착했다. 순박한 모습에 사실 많이 놀랐다. 이방인인 나를 정말 친절하게 대해줬고, 모든 면에서 배려 해주는 모습에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훈련을 몇 번 같이했고, 감독의 OK 사인이 금방 떨어졌다.

사실 일주일 정도 테스트를 하고 다시 한국에 들어 갈거라 생각했다. 짐도 간단히 챙겨왔는데 리그 개막이 3주 밖에 남지 않았다며 지금부터 쭉 시즌 준비를 해야하니 돌아가지 말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짐이 도착할 때까지 티셔츠 세 장을 돌려 입으며 버텨야 했다.

티셔츠 세 장 가지고 시즌 개막을 준비했는데 마음은 편했다. 내가 뛴 그 어떤 팀 보다 편했다. 기대를 안한 탓인지 모든 것이 생각 보다 좋았다. 무엇보다 사람이 좋았다. 오만을 보는 내가 오만했다. 오만은 오만하지 않았다.

구술=김귀현
정리=한준 기자
사진=김귀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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