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권태정 기자= “어쩔 수 없는 인생인가 봐. 마음 편해지는 건 은퇴할 때 할래.”

전가을(28, 웨스턴뉴욕플래시)은 항상 스스로를 다그친다. 늘 조금 더 완벽해지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한다. 지난 1월 1일부로 한국여자축구 최초의 미국여자축구리그(NWSL) 진출 선수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꿈에 그리던 미국 진출을 이루고 나더니, 지금은 미국 생각을 할 때가 아니란다.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 16강의 영광이 전가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해줬으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전가을은 월드컵 출정식 때 “대한민국에서 여자축구선수로 산다는 것이 외롭다”며 눈물을 흘렸던 이다. 눈물은 멈췄지만, 도전은 계속된다.

전가을의 시선은 29일부터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2016 리우올림픽’ 예선을 향해 있다. 북한, 일본, 중국, 호주, 베트남과 경쟁해 2위 안에 들어야 사상 첫 올림픽 본선행을 이룰 수 있다. 전가을이 더욱 이를 악물고 있는 이유다.

올림픽 본선 진출의 꿈을 이루면 그 다음에는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으냐는 질문에 전가을은 또 아니란다. 전가을은 “마음 편해질 수가 없다. 은퇴할 때 편해져야지.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다.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혼이 난 느낌이었다.

아래는 전가을과의 인터뷰 전문.

-지난달 중국 4개국 친선대회에서 1승 2패를 거뒀다.
(한숨) 할 말이 없다. 준비가 부족했다. 몸이 안돼있는데 의욕만 앞선 것 같다. 중국은 몸 상태가 되게 좋더라. 감독이 바뀌고 나서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 정신적으로도 잘 잡혀 있고… 멕시코한테도 생각지도 못하게 졌다. 작년에는 2-1로 이겼고, 내용면에서도 앞섰기 때문에 자신감 있었는데… (또 한숨)

멕시코랑 중국한테 연달아 0-2로 졌는데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거다. 뛰면서 전광판을 봤는데 점수가 0-2… 뛰고 있는 내가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경기 끝나고서도 내 자신한테 화가 나고, 스태프들한테 미안하고, 안 뛴 선수들한테 미안하고. 정말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러면서 위안을 삼은 것이 ‘이 게임이 다가 아니다. 오히려 잘 됐다. 이런 비참한 기분 잊지 말고 더 잘 하자’ 생각했다.

다른 선수들도 다 마찬가지일 거다. 서로 말 안 해도 다 안다. ‘아, 이거 아니다. 이대로 올림픽 못간다’라는 생각이 다들 들었을 거다. 잘~ 졌다고 생각한다. 작년 월드컵 이후에 관심도 전보다 좀더 받고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예전 치 만큼의 간절함이나 절실함이 나오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 좋은 계기로 생각한다. 선수들 모두 같은 마음일 거다.

-사상 첫 올림픽 본선 진출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상 월드컵보다 더 나가기 힘든 게 올림픽 본선이다. 만약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딴다면, 한국여자축구에 있어 월드컵 전과 후의 차이보다 올림픽 전과 후의 차이가 더 클 것이다.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도 훨씬 많아질 거다. 제일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내 축구 인생에서도 월드컵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이 될 거다. 본선 티켓을 따는 것만해도 세계 강호 일본, 북한을 넘는 거다. 안 될 건 없다. 어렵지만 해내면 된다. 우리는 일 잘 내니까…(웃음) 누군가 해야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한다.

-남자 올림픽대표팀이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봤나?
봤다. 잘하더라. 정말 잘하더라. 몸 상태도 좋아 보였다.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 준비를 많이 한 팀은 경기에서 딱 드러난다. 준비과정이 정말 중요하다. 결승전에서 일본한테 진 건 아쉽지만, 기회로 삼아서 리우에 가면 더 잘 할 것 같다. 오히려 마음을 더욱 다질 수 있을 테니까. 다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 올림픽대표팀은 메달 획득이 군 면제라는 동기부여 요소가 있다. 그에 비해 여자대표팀은 확실한 동기부여 요소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나 역시 그런 동기부여 없는데도 내가 왜 이렇게 (올림픽에) 목을 매는지 모르겠다(웃음). 그냥 이게 내 성격일 수도 있고, 책임감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지금의 우리가 여자축구를 더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 더 알려야 한다는 것… 그런 것에 대한 책임감. 누군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지 않나. 여자축구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그게 우리가 되길 바란다.

-‘2012 런던올림픽’ 때도 예선에 참가했고,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때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사실 그때도 어린 나이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때랑 또 마음가짐이 다르다. 월드컵 다녀오기도 전이었고, 부상 때문에 고생하기도 전이었다. 사실 그때는 지금처럼 크게 생각 안 했다. 돌이켜보면 기회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럴 때가 있었으니까 지금 깨닫고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부상을 겪으면서 몸은 아팠지만 누가 가르쳐줘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혼자 깨달아야만 하는 것들.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나, 간절함에 대한 것들. 그래서 힘든 시간들이 후회되지 않는다. 그전의 나는 텅텅 빈… 뭐랄까? 껍데기였다면,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알맹이를 채워간 것? 물론 나중에 생각하면 지금이 또 부족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월드컵에 다녀온 이후에 올림픽에 대한 자신감도 더 생겼나?
그랬…었다. 근데 이제는 자신감도 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걸 비워야 한다. 4개국 친선대회를 치르면서 느낀 거다. 다시 밑바닥부터 해야 한다. 4팀 중에 3위다. 전력 차가 있는 베트남을 빼면 중국, 멕시코한테 졌으니 냉정하게 꼴찌 했다고 봐야 한다. 자신감 가질 때도 아니고, 가질 수도 없다. 월드컵에서 어떻게 했건 다 없던 걸로 하고, 다 지워버려야 한다. 목포에서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

-4일부터 목포 훈련이 시작된다.
이미 지독한 훈련이 예고됐다.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 안 해도 선수들이 이제 감이 있다(웃음). 왜 목포에 가는 지 다들 알고 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 한다. 올림픽 예선 첫 경기가 북한이다. 2014년 아시안게임 때 (훈련이) 진짜 힘들었거든. 그러니까 북한이랑 만나서 좋은 경기를 했던 거다. 힘들어도 해야 한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에 이제 덤덤하다. 마음은 하기 싫어도 머리는 해야 된다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지난 몇 년간 해마다 크고 작은 부상이 있었다.
일단 부상이 없다는 거에 제일 감사하다. 정말 아무데도 없다. 더 바라지도 않는다. 이대로 유지를 잘 하려고 관리하고 있다. 목포 훈련을 잘 하고 하면 월드컵 때보다 컨디션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나 역시 나름대로 기대가 있다. 월드컵 전에는 너무 아파서(장경인대 부상) 심리적으로도 불안했고 준비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지금은 훨씬 좋은 상황이다.

-미국 진출이 확정된 상황에서 올림픽 예선을 치르는 것이 집중을 방해하진 않나? 빨리 소속팀에 합류하고픈 마음은 없나?
팀에서는 되도록 빨리 와주길 바랐다. 그렇지만 말했다. 올림픽 예선이 너무 중요하다고. 끝나고 바로 가겠다고 했다. 3월 10일에 오사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12일에 미국으로 간다. 솔직히 이번 4개국 친선대회 나가기 전까지는 나도 모르게 들뜬 마음이 좀 있었다. 주변에서 계속 미국 진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근데 대회 하고 오면서 정신이 번쩍 든 거다. ‘지금 뭔 생각하고 있냐. 중요한 게 이건(올림픽 예선)데 미국 가는 생각이나 하고 있고.’ 다시 정신차렸다.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하는 게 지금 가장 중요하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도 미국 진출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중국 갔다 온 뒤로는 미국은 생각도 안하고 있다. 목포 가서 훈련 할거만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미국 진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으니 들려달라. 어떻게 웨스턴뉴욕플래시와 연결됐나?
해외 진출을 알아볼 당시 에이전트가 없었다. 외국어에 능통한 친구가 도와줬다. 처음에는 영국 팀들 위주로 접촉을 하면서 진행하고 있었는데, 웨스턴뉴욕플래시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원래부터 미국에서 뛰고픈 꿈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다른 것들을 다 접고 이 팀과 협상을 했다.

20~21살때쯤 대표팀 전지훈련으로 미국에 갔었는데, 그때부터 동경의 무대가 됐다. 그 즈음에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팀 사정 때문에 불발되기도 했다. 그런 기억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리고 월드컵 출전이 무엇보다 컸다. 그 전까지는 작은 우물 안에 갇혀서 우물 밖 넓은 세상을 모르고 지냈던 거다. 큰 대회에 다녀오면 많이 달라진다고들 하지 않나. 정말 그런 것 같다.

-웨스턴뉴욕플래시 경기는 좀 봤나? 아직 합류 전인데 느낌이 어떤가?
유튜브에 리그 전 경기가 다 뜨더라.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접하기 쉬우니까 나만 잘하면 되겠다 싶었다. 유투브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것들이 잘 운영되고 있다. WK리그는 그렇지 않으니까, 정말 시장 규모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더 자극이 되고,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 시드니 루루 등 미국 여자대표팀 선수들도 있다.) 윤덕여 감독님도 루루 얘길 하셨다. 엄청나게 빠르다고…(웃음)

미국 대표팀 선수들과 같이 경쟁한다는 것이 아직은 실감이 잘 안 난다. 가서 얼마나 많이 좌절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겠나. 그런 걸 겪으면서 느끼고 깨달을 걸 생각하면 오히려 설렌다. 힘든 것 속에서 얻는 게 있을 테니까. 최대한 많이 가져오고 싶다. 나중에 한국에 왔을 때 내가 가져온 걸 다 뿌려줄 수 있도록.

-지소연(25, 첼시레이디스)을 제외하면 그간 해외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이 대부분 1년 남짓의 해외 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금방 돌아오지 않게끔 노력해야 한다. 기회를 얻은 것이니 내 걸로 만드느냐는 내가 하기 나름이다. 내가 잘 해야 계속 미국에 나갈 수 있는 선수들이 늘어날 거다. 후배들도 ‘언니가 잘해야 해’, ‘오래있다 와’ 이런 얘기 많이 한다. 지금은 1년 임대 신분이고, 1년 후에 어떻게 될 지 모른다. WK리그 최강인 인천현대제철 소속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임대 신분이니까 인천현대제철에 대한 책임감도 있다. 내가 잘 하면 인천현대제철의 위상도 올라가리라 생각한다.

-올해 꼭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일단은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는 것이 첫 번째다. 개인적으로는 킥. 킥을 완성시키고 싶다. 프리킥, 코너킥 상황에서 차는 것마다 위협적일 수 있도록 말이다. 동아시안컵 일본전에서 나온 프리킥 골처럼 팀을 살릴 수 있는 기회에서 킥을 확실한 내 무기로 만들고 싶다. 반복 연습이 답이다. 하나하나 더 신중하게 차고, 정확도와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한다. 나중에는 (데이비드) 베컴처럼 선수가 킥을 대표하고 킥이 그 선수를 대표하는 만큼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

사진=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웨스턴뉴욕플래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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