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지난 27년 동안, 그라운드를 향하던 김병지(46)의 걸음은 힘차고 당당했다. 그 어떤 경기도 두렵지 않았다. 25일 낮 서울 청진동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김병지의 모습은 그와 달랐다. 그답지 않게 긴장했다. 마른 침을 삼키며 무대에 섰다. 수척해진 두 뺨을 덮은 수염은 스타일을 위해 기른 것이 아니라, 깊은 마음 고생의 흔적이었다.

김병지는 최근 인터넷상을 뜨겁게 달군 자신의 막내아들, 초등학교 2학년생 태산군이 연루된 학교 폭력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2015시즌을 끝으로 전남드래곤즈와 계약이 마무리된 김병지는 아직 새 팀을 찾지 못했다. 새 팀을 찾는 것 보다 시급한 문제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릴 겨를이 없다.

김병지는 지금 축구장 밖, 더 차디찬 현실 세계라는 전장에서 잔혹한 진실 게임을 치르고 있다. 김병지가 가족 문제로 속앓이를 시작한 것은 지난 해 10월부터다. 10월 15일 학교 체험학습 시간에 순천 월등농원 볼풀장에서 김병지의 막내아들 태산군이 같은 놀던 학급 친구의 얼굴을 할퀸 일이 발생했다. 곧바로 피해 학생의 어머니가 인터넷에 이 사실을 알리며 일파만파 커졌다.

▶ 김병지 막내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김병지 측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네이트판과 상위1% 커뮤니티 등 인터넷 게시판에11월까지 총 9차례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내용에 대해 김병지는 “얼굴을 할퀸 사실 외에 대부분이 거짓이고 왜곡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사견 없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 ‘팩트’만 밝히러 왔다”고 했다. 김병지는 상대측 학부모 및 학교장과 담임교사 등에 대해 허위 사실 유포 및 잘못된 내용의 인터뷰 등으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 동안 김병지는 해당 사안에 대해 말을 아껴왔다.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병지는 “진실의 왜곡으로 인하여 잘못 파생된 부분이 너무나 잔인하고 방대하다. 반드시 밝혀야 하 진실이 있기에 용기 내어 이 자리를 마련했다”며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언론 앞에 섰다고 했다. 당사자간 원만한 해결을 원했으나 상대측 어머니와 3개월 간 진전 없는 평행선을 달렸다.

김병지가 제시한 증거 자료를 통한 주장은 이렇다. 폭행은 쌍방이었다. 볼풀장에서 같이 놀던 중 실수로 튀어나온 공에 맞은 상대편 아이가 태산군에게 볼을 6차례 강하게 던졌다. 볼을 맞고 울던 태산군이 잠시 후 달려들어 목을 잡고 얼굴을 할퀴었다. 빠져나온 상대편 아이가 태산군 위로 타고 올라가 가슴에 주먹질을 했다. 이는 볼풀장에서 함께 놀며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목격한 B어린이의 진술에 따른 것이다.

정작 학교폭력위원회에는 B양의 진술이 기입되지 않았다. 김병지 측은 B양의 진술 녹취 원본을 공개했다. 상대측 어머니가 진술을 받은 아이들을 확인 결과 당시 상황을 목격하지 못했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상대측 어머니가 정확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신고를 했고, 글을 게시했다는 점은 상대측 어머니가 다른 학부모들과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나눈 문자 내용을 통해 증거로 제시했다. 언론에 보도된 다른 피해 아이의 사례의 경우에도 태산군의 폭행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해당 아이의 증언을 녹취한 음성 파일로 반박했다.

이밖에 김병지 측이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했다는 부분 역시 동석했던 병원장 녹취록과 태산군의 모친이 직접 쓴 사과 문자와 편지 등의 증거를 제시했다. 진정성 판단 문제는 여론에 맡겼다.

▶ 김병지의 진실 게임

김병지 측은 학교 폭력이 일방이 아닌 쌍방으로 가닥이 잡히자 상대측 어머니가 왜곡된 내용으로 구성된 전단지를 돌리며 탄원서를 받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고 했다. 인터넷 게시글이 늘어난 것도 이 시점이다. 김병지는 “무엇이 억울한 것인지, 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과를 했고, 치료를 위해 지원했고, 학교폭력위원회 측이 내린 징계도 따랐다”며 아이들의 싸움으로 그칠 수 있었던 사태가 이렇게 커졌는지 반문했다.

태산군은 현재 학교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고, 흉흉한 여론 때문에 평소 좋아하던 미술학원에도 가지 못한 채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 10대의 나이가 된 다른 자녀들도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가족 모두 심리 치료를 받고 있을 정도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태산군 모친은 해당 사건으로 세 차례나 혼절했다. 혼절 사실도 자신의 집 1층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입증했다. 김병지는 자신의 모든 주장에 대해 증거를 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병지가 새로 뛸 수 있는 팀을 찾아 나서기는 어렵다. 축구 경력은 물론 일생일대의 큰 위기를 맞았다. 김병지는 “내가 거짓된 이야기로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고소를 했다면, 만약 내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었다고 드러나면 어떻게 되겠나”라고 반문하며 진심을 알아 달라고 호소했다.

과거부터 행실이 나빴으며, 여러 학부모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 1학년 생활 기록부 및 전 담임 선생님의 발언, 태산군 모친의 통화 내역 등을 언급하며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해명이 거짓이고, 그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드러나야 하는 데 게시글의 주장 외에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며 자신의 진정성을 이야기했다.

“참고 기다리면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재생산되고 있다.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침묵의 끝은 오해를 낳고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는 김병지는 “진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방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아직도 있다. 서로 이 일로 상처 받지 않고 예쁘게 커나가길 바란다”는 김병지는 단지 자신의 아들이 처한 문제라서가 아니라 자라는 모든 아이들에게 생길 수 있는 문제라며 이 땅의 많은 어른들에게 당부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베테랑 골키퍼는 골문 보다 가족을 지키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 어떤 축구 경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겨운 진실게임이다.

사진=풋볼리스트, 김병지 측 제공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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