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축구의 나라다. 주말 밤이면 남자들은 펍에 모여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나스페인프리메라리가를 본다. 베트남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럽 인기 팀의 ‘짝퉁’ 유니폼을 파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20대 남자 대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유럽 축구다. 월요일에 모여 주말에 열렸던 유럽축구 이야기를 한다. K리그는 ‘유럽축구의 나라’ 베트남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유럽축구를 사랑하는 나라에서 K리그라니.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첫 걸음은 중계권 수출이었다. K리그가 베트남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해외 마케팅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궁금했다. K리그가 베트남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떠났다. ‘풋볼리스트’는 K리그 생중계 의미와 그 경제적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 정치수도 하노이로 향했다.<편집자주>


[풋볼리스트=하노이(베트남)] 김환 기자= K리그는 성적 중심의 리그다. 높은 순위에 오르는 게 축구단의 최대 목표다. 축구로 돈을 벌겠다는 개념은 부족한 편이다. 기업 구단의 경우 운영비는 거의 전적으로 모기업의 몫이다. 시도민구단 역시도 시∙도에서 도움을 주지 않을 경우에는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다.

축구단의 재정적 독립을 강조하고 있는 유럽분위기와는 반대되는 현상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구단주의 결정에 따라 구단이 휘청거릴 수도 있는 구조로 가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떠한 변수에도 버틸 수 있는 든든한 뿌리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K리그의 생존과 연관돼 있다. 물론 투자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돈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비즈니스도 연동이 돼야만 한다. 큰 틀에서 봤을 땐 축구단을 정치나 사회 환원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건 K리그 발전의 저해 요소다.

그런 의미에서 동남아 시장은 K리그 구단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무대다. K리그가 아시아 지역에서는 최고 수준의 리그인데다가 한류가 형성된 동남아 국가가 많아 좋은 아이디만 있다면 K팝이 아닌 K스포츠의 열풍도 기대할 수 있다. 1편에서도 언급했듯이 베트남은 K리그를 포함한 한국의 컨텐츠를 바라고 있다. 단지 수입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한류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 이것은 K리그에 또 다른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

레콩빈 일본행, 구단-맥주-도시가 떴다
동남아 시장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예측한 곳은 일본이다. J리그는 2012년부터 연맹 차원에서 태국,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등과 협약을 맺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태국 방콕 한복판에 일본 축구대표팀을 홍보하는 광고판을 건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 축구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일본의 삿포로맥주가 2011년 베트남 시장 진출을 노렸으나 광고 규제에 막혔던 적이 있다. 자국 맥주 활성화를 위해 삿포로맥주를 견제하는 분위기 때문에 제대로 된 광고를 하지 못했다. 삿포로맥주는 홍보할 방법을 찾지 못할 때, 자신들이 후원하는 축구팀인 콘사도레삿포로로 돌파구를 찾았다.

삿포로맥주는 2013년 여름 베트남의 축구영웅 레콩빈을 J2리그 콘사도레삿포로로 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임대료와 연봉을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이적을 도왔다. 그 결과 베트남 안에서의 열기는 뜨거웠다.

레콩빈의 에이전트 응우엔 궉 훙은 “레콩빈이 베트남을 출발해 일본에 도착해서 구단에 갈 때까지 취재진이 따라다녔다. 공항에 도착하자 교민들이 나와 꽃다발을 주면서 큰 환영행사를 열었다. 일본에 거주하는 베트남 사람들까지 들썩인 큰 사건이었다. 마치 박지성과 같은 한국 선수가 유럽에 진출하는 것과 비슷했다”고 회상했다.

레콩빈이 일본에 진출하자 삿포로맥주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베트남 시장 진입이 어려웠던 분위기를 축구로 뒤집어버렸다. 그 결과 삿포로맥주는 2013년과 2014년 베트남 맥주 소비량 1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다. 실제로 펍에 가면 하노이 지역맥주와 함께 삿포로맥주가 맨 위에 표기가 돼 있다. K리그 현지 대리인 팜 호아이 남 GM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삿포로맥주를 잘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 레콩빈이 콘사도레삿포로로 가면서 삿포로맥주와 삿포로라는 도시가 동시에 큰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레콩빈은 삿포로에서 9경기를 뛰며 2골을 넣었다. 데뷔 골을 넣은 날 퇴장까지 당하며 화제를 모았다. 베트남 팬들은 레콩빈을 보기 위해 삿포로로 몰렸고, 삿포로는 한때 베트남인이 가고 싶은 해외 도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일본 기업 ‘수미모토 코퍼레이션’과 ‘SSSC'도 콘사도레삿포로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일본 축구가 베트남TV에 더욱 자주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레콩빈의 이적은 베트남과 일본이 축구를 매개체로 다양한 비즈니스를 만들어낸 역사적인 사건이다.

베트남 스포츠신문 ‘테타오스포츠24’의 응우엔 덕 훙 편집장은 “베트남 내에서도 엄청난 화제였다. 모든 사람들이 레콩빈의 경기를 보기 위해 주말 낮에는 모두 TV 앞으로 갔다. 베트남 선수가 동아시아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베트남에서도 많은 취재진이 삿포로로 넘어가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고 했다.

물론 레콩빈이 반 시즌 만에 자국리그로 돌아오자 J리그와 열풍은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J리그 TV중계도 점차 사라지더니 2015년 가을부터는 아예 편성에서 빠졌다. 그렇데 이러한 현상을 거품으로만 볼 수 없다. 삿포로라는 도시와 지역 맥주는 4~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미 베트남 전역에 큰 홍보 효과를 누렸다.


K리그, 제2의 레콩빈이 필요하다
베트남이 바라보는 K리그는 ‘빅리그’다. 베트남 선수들의 수준으로 노려볼 수 있는 최대 시장이 K리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베트남에 K리그가 중계된다. 레콩빈과 같은 베트남 선수를 데려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다. 베트남 현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K리그에 베트남 선수가 진출하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하노이외국산업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 레 반 엿씨는 “K리그에 베트남 선수가 가면 무조건 시청할 생각이다. 베트남 선수가 K리그에 갔다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될 수 있다. 생각만 해도 자랑스럽다. 베트남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것 같다”고 했다.

호앙 은옥 후안 VTVcab 대표는 “베트남 선수가 K리그에 간다면 일반 축구팬뿐만 아니라 베트남 방송국에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채널뿐 아니라 다른 채널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선수가 K리그에 진출한다면 베트남 기자들을 한국으로 파견할 생각”이라고 했다.

K리그는 레콩빈의 일본 진출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기억해야 한다. K리그가 중계가 되는 현 시점에서 베트남 선수가 K리그에 입성할 경우, 연맹과 구단은 경제적인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협력하는 것이다. K리그에 베트남 선수를 보내는데 지원을 한 이후 초상권을 받아와 베트남 현지 홍보에 사용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K리그 구단과 공조만 잘 이뤄진다면 훌륭한 마케팅 롤모델이 될 수 있다. 베트남 내에서 축구 스타가 갖는 위치는 매우 높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 베트남 선수 이적이 가져다준 파급 효과는 이미 레콩빈이증명했다.

응우엔 에이전트는 “베트남 선수가 현지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면 누구든지 K리그에 가려고 할 것이다. K리그에서 가치를 높여 베트남으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에 모두 동아시아를 꿈의 무대로 생각한다”고 했다.


베트남 선수 영입이 가져올 효과는?
2015년 10월 기준,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은 13만9000명이다.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2세까지 계산하면 그 수는 30만 명에 이른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가운데서는 중국인(95만8000명), 미국인(14만4000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한해 한국을 찾는 베트남 여행객도 24만 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에 1%만 경기장에 오더라도 수 억 원의 경제적 이익이 발생한다.

한국에서 7년을 거주한 팜 호아이 남 GM엔터테인먼트 대표를 통해 국내에 거주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관심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팜 대표는 “한국에서 살 때 베트남 사람들끼리 모일만한 행사가 많지 않았다.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커뮤니티 형성도 쉽지 않다. 대부분 외롭게 생활한다. 베트남 선수가 K리그에 진출한다면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이 축구를 통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형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보러 갈 것이다”고 전망했다.

레콩빈이 콘사도레삿포로에 진출했을 당시 많은 베트남 여행객들이 삿포로로 여행을 떠났듯이 지역 전체의 관광 산업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뜻은 베트남 선수의 영입이 기업구단보다 시도민구단에 더 어울리는 방식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베트남 선수의 영입으로 인해 구단의 연고지가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베트남 팬들을 경기장으로 끌어 모은다면 축구장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의 소비까지 유도하게 된다.

동남아 선수들의 실력은 그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베트남 선수를 영입하더라도 그들이 뛰지 못하면 문제는 K리그나 각 구단이 거둘 수 있는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레콩빈도 콘사도레삿포로에서 어느 정도 활약을 했기 때문에 효과가 커졌다. K리그 구단들이 동남아 선수 영입에 이은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면서도 이를 실행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서울이랜드FC, FC안양 등이 과거 동남아 선수에 관심을 보였다가 철회한 이유도 이와 같다.

한 K리그 구단은 동남아 선수를 영입할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최대 마케팅 효과로 5억 원 정도를 예상했다. 실현된 적이 없으니 아직 정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실력이 경제적인 성공을 안겨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연맹과 각 구단은 최적의 동남아 출신 선수를 영입해 수익을 내고 구단의 가치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K리그의 생존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베트남 선수 영입은 작은 파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로 하여금 파생되는 산업의 가지는 무궁무진하다. 작은 결정이 큰 파도가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다. 축구를 승패로만 따지는 시대는 지났다. 축구는 곧 산업이다. K리그도 이제는 돈이 나오는 동남아에 눈을 돌려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할 때다. 레콩빈의 영입 하나가 삿포로라는 도시와 맥주 그리고 구단에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 말이다.

사진= 테타오TV, 풋볼리스트
사진설명= ①2013년 레콩빈 삿포로콘사도레 입단 사진
②호앙 은옥 후안 VTVcab 대표(좌)와 팜 호아이 남 GM엔터테인먼트 대표
③VTVcab의 중계 스튜디오 모습

[현장르포V] 1편 다시보기 - K리그 베트남 생중계, 한류와 축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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