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데베네디티스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본인 제공
안드레아 데베네디티스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본인 제공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안드레아 데베네디티스 나폴리동양학대 교수는 김민재와 가장 먼저 인연을 맺고 화제를 모은 나폴리 시민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여름 김민재의 나폴리 이적 당시 유창한 한국어 통역으로 화제가 됐던 데베네디티스 교수는 ‘풋볼리스트’ 등 여러 한국 매체와 인터뷰를 가졌고, 시즌 막판에도 한국 유튜브 ‘슛포러브’에 출연하는 등 재미있는 추억을 여럿 남겼다.

데베네디티스 교수는 나폴리 시민이지만 지역 태생도 아니고 축구팬도 아니다. 세리에A 우승을 차지한 나폴리 축구팬들의 광적인 열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관찰자로서 날카로운 통찰을 들려줄 거란 기대를 안고 인터뷰를 부탁했다. 내용은 기대한 그대로였다. 유창한 한국어 표현 역시 기대한 그대로였다. 서면 답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전한다.

- 개인적으로 나폴리 사람이지만 축구팬은 아니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 교수님이 느끼는 나폴리 우승은 어떤 의미입니까

참고로 저는 나폴리 태생은 아닙니다. 여기로 이사온지 7년 되었고, 제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대학교는 저의 모교이기 하지만 저는 다른 지방에서 태어났고 자랐습니다. 어쨌든 이번 우승을 매우 의미 깊은 일로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타이밍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나폴리는 젊은이들이 많고 활기 찬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코비드(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이후론 이 도시 분위기 자체도 많이 쳐졌고 사람들이 매우 우울해진 상태였습니다. 많은 경제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가운데, 특히 빈곤층이 유난히 고통스럽게 살던 현실에서 때마침 이 우승이 나폴리 시민들에게 잃어버린 희망과 기쁨을 다시 안겨준 셈입니다.

- 한 현지 매체는 '축구에서만 우승을 차지한 게 아니라 나폴리 시의 사회적 승리다'라고 이번 우승을 정의했는데 일리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네, 축구에 한정되진 않은 우승이라고 저도 봅니다. 사회적인 승리보다 시민의 승리라고 표현해야 하나. 1861년에 이탈리아가 통일된 이후론 경제문화적으로 으뜸이었던 이 도시가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고 다른 도시에 추월당하면서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게 됐습니다. 그렇게 잘나가던 이 도시의 찬란한 역사를 각종 편견으로 가려버리면서 정부가 그런 과정을 정당화시켜왔고요. 이번 우승에 힘입어 이 도시가 세계적인 각광을 받게 되고 몇 세기를 걸쳐 겪어온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계기가 되리라는 희망이 시민들 마음 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 나폴리 시민들이 우승에 대해 느끼는 감흥은 세계 어느 도시와도 달리 엄청난 것처럼 보입니다. 맞다면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질문은 인류학자한테 던져야한다 생각하는데요. 소박하지만 저의 개인 의견을 말씀해 보겠습니다. 이유를 여러 가지 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우선 이탈리아는 한국만큼 저출산 문제가 매우 심각하지만 나폴리는 이 추세에서 예외입니다. 빨리 결혼하고 애를 낳고 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이 아직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도시에 비해 젊은 층이 많아요. 그리고 자기 고향에 대한 시민들의 자부심 역시 남다른 것 같습니다. 경쟁심이 강해서라기보다는 순수하게 자신이 즐기고 자란 문화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나폴리 사람이 아니지만 나폴리 문화를 늘 매력적이라 느껴 왔고요. 연극, 미술, 건축, 음악 외에도 아름다운 바다가 있어요. 거기 더하여 나폴리 인들과 얘기 나누다 보면 그 속에 ‘운명론적인’ 철학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차피 우리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내일이 아닌, 오늘을 즐기자. 언젠가 이 화산이 우리를 재로 뒤덮을 테니 그 때까지는 이 지금을 만끽하자는 철학? 전통적으로 가무를 즐겨온 한민족하고 좀 비슷하지 않은가 싶어요.

- 김민재 통역과 ‘슛포러브’ 출연을 잘 보았습니다. 그밖에도 김민재로 인해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저는 김민재 선수는 딱 두 번 밖에 못 만났는데요. 연락처도 없고 어디에 사시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입단 기자회견을 본 거의 모든 제 지인들이(한 백 명 정도 되려나) 제가 선수님하고 굉장히 친한 줄 알고 별의별 부탁을 해왔어요 다음에 만나게 되면 사인 받은 양말부터 시작해서, 유니폼, 티셔츠, 축구공까지 얻어와 달라는 부탁과 주변에 누가 아프다면서 꼭 부탁을 들어 달라고요. 그럴 줄 알고 김민재 선수가 저를 일부러 피하는 거 아닌가 싶네요. 전화해서 영국에 가지 말라고 해달라고 한 친구들도 꽤 되는 것 같아요 (웃음).

-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크고 한국에 대해 고찰할 기회가 많았을 교수님과 제자들에게 김민재의 우승은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우선 김민재 덕분에 나폴리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보다 높아진 것 같고요. 보통 우리 한국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처음에 한류 콘텐츠 때문에 한국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는데요. 앞으로 스포츠로도 한국에 대해 이목을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 보면 지극히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김민재 선수님이 나폴리와 한국 사이의 직접적인 교량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아요. 경기를 보러 많은 한국분들이 오셨고 동시에 많은 나폴리 시민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교류가 많아진 만큼 제 제자들도 앞으로 여러가지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컸겠지만, 대다수 나폴리 시민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나폴리 시민들이 김민재를 통해 한국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됐을까요? 실감하신 적이 있나요?

대학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번에 두 분의 한국 남성을 나폴리로 초청하게 됐는데요. 30대 초반 작가와 50대 초반 교수님이신데요. 두 분 다 김민재 선수와 닮지 않았고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하지만 같이 있을 때 이런 일을 몇 번 목격했어요. 이분들이 누구한테 한국에서 오셨다고 밝히는 찰나에 그 누군가의 표정이 자동적으로 밝아지고 그 누군가가 엉뚱하게도 ‘킴킴킴’거리면서 난리법석 떨기 시작하는 일이요. 김민재 선수를 떠나서도 최근 이탈리아에서 한국 문화 콘텐츠는 굉장히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문화에 매료되고 있어요. 나폴리도 예외가 아니죠. 올해만 해도 우리 대학교 한국학 신입생이 140명을 넘는다는 게 명백한 증거죠.

- 축구를 중심으로 볼 때, 이탈리아와 한국은 2002 월드컵 이후 악연에 가까웠습니다. 김민재의 이번 활약은 나폴리 사람들에게 한국 축구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돌려놓는 효과가 있었을까요?

이탈리아는 원래 축구 강국인데 최근 들어 월드컵하고 인연이 좋지 않네요. 2002년부터 많은 세월이 지났고 그 당시의 많은 기억들이 퇴색해졌거나 이미 잊혀졌을 거라고 생각돼요. 나폴리 인을 제외하더라도 아직까지 2002월드컵으로 인해 ‘한’이나 악감정을 품은 이탈리아 인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확실히 김민재 활약을 통해서 (저의 동생을 비롯해서) 많은 이들이 한국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한국 축구를 새로 인식하게 된 것 같아요.

- 반대로 한국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나폴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었습니다. 김민재의 활약을 보러 나폴리를 여행한 한국인도 많았는데요. 나폴리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됐을까요?

최근에 나폴리는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길가다가 최근에 한국어가 들리기도 하고… 한국 단체 여행객이 보이기도 해요. 김민재 선수가 오시기 전에는 흔한 일이 아니었어요. 나폴리 이미지를 바꾸려면 아직 갈 일이 멀다 생각되지만 치안이 나쁘다든가 하는 편견이 이미 좀 많이 극복된 것 같아요! 나폴리 역사를 보면 나폴리는 모순의 도시, 비극의 도시인만큼 희망의 도시이기도 해요. 그리고 여전히 인간적인 정을 느낄 수 있는 드문 도시라고 봐요.

- 알려진 바로는 김민재가 1년 만에 이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떠난다면 나폴리 시민들에게는 유다로 기억될까요, 아니면 다른 팀 선수가 된 뒤에도 애정으로 바라볼까요?

김민재 선수는 이미 나폴리 사람들한테는 영웅이죠. 근데 마라도나처럼 ‘신’으로 추앙되려면 좀 더 계셔 주셔야 해요 (부탁이기도 함). 저의 집 바로 앞에 망자를 추모하는 데가 있는데 며칠 전부터 동네 사람들이 죽은 친척의 사진들을 싹 치우고 마라도나 사진 한 장으로 대체했어요. 저의 단골 카페에서도 마라도나 머리카락 한 타래(가짜겠지만)를 사리처럼 숭배하고 있고요. 약간 광적이고 미신적 행동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김민재 선수도 그렇게 추앙되면 좋겠네요.

김민재(나폴리, 왼쪽)와 안드레아 데베네디티스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칼초나폴리24' 유튜브 캡처
김민재(나폴리, 왼쪽)와 안드레아 데베네디티스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칼초나폴리24' 유튜브 캡처
김민재(나폴리). 게티이미지코리아
김민재(나폴리). 게티이미지코리아

- 나폴리가 한 한국인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지난 1년이 교수님의 향후 행보나 연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잖아요. 제가 김민재 선수와 옷깃만 스친 것이 아니라 통역까지 해드렸으니 여러 혜택을 받은 모양이에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저도 덕분에, 나름대로 주목을 받게 되었고 알지 못하는 사람분들(작가, 교수 등등)한테 연락을 종종 받았어요. 그런 것보다 이렇게까지 유명한 한국분이 나폴리 어딘가 가까운 곳에 계셔서 마음이 든든했고 자랑스러웠습니다.

- 한국에서 유명인사가 되셨는데, 한국의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하하, 공부하지 말고 축구를 하세요! 농담입니다만 기자회견 시에 김민재 선수가 자신이 멘탈적으로 강하다고 하셨어요. 저는 이어서 통역하면서도 그 말이 자꾸 저의 머리 속에 떠오르더라고요. 저도 그렇지만 저의 주변 사람들 중에서 그런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렇게 자신 있게, 씩씩하게 단언할 수 있을 만큼이요. 자꾸 운동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그만큼 우리한테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접하시게 되시는 독자분들께,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면서 한국에 꼭 가보고 싶어 하지만 갈 방법이 없는 제 학생들에게 좋은 찬스를 마련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사진= 안드레아 데베네디티스 교수 제공, '칼초나폴리24' 유튜브 캡처,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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