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홍명보 울산현대 감독은 무려 32년 만에 ‘소파월드컵’을 경험 중이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 만 21세의 대표팀 막내로 참가한 이래 선수, 코치, 감독, 행정가로 지난 러시아월드컵까지 늘 현장에 있었다. 이번 카타르월드컵은 판교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시청 중이다. 20대 초반인 두 아들과 집에서 TV중계로 월드컵을 시청하는 것은 첫 경험이다. 

평소 편하게 맥주 한 캔씩 즐기는 성향의 홍명보 감독은 “처음에는 많은 국민들처럼 치맥(치킨, 맥주)을 하며 즐길까 생각도 했는데 역시 쉽게 되지 않았다. 아들들과 우리도 편하게 보자고 했는데 막상 경기가 다가오니까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축구에만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선수와 감독으로 치른 월드컵에 비해 마음은 편했지만 뭔가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홍명보 감독은 “응원하는 국민들 심정을 모처럼 이해했다. 대표팀이 우루과이를 상대로 잘해줘서 끝까지 집중하며 승리를 기원했다. 잘 하고도 이기지 못한 건 아쉽지만 좋은 발판을 놨다”며 무승부로 조별리그 1차전을 마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에 대해 가볍게 총평을 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홍명보 감독이 대한축구협회 전무로 재직 중이던 시기 선임된 인물이다. 당시 홍명보 전무는 감독 선임 작업을 총괄하던 김판곤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현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에 힘을 실어줬다. 김판곤 위원장은 에르베 르나르, 카를로스 케이로스, 키케 플로레스, 슬라벤 빌리치 감독과 직접 접촉하거나 협상까지 갔지만 다양한 이유로 실패하며 압박감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홍명보 전무는 “스스로 확신한다면 주변 여론에 흔들리지 말고 결정해도 괜찮다”며 독려했고, 결국 벤투 감독을 영입할 수 있었다. 

행정가의 위치에 있던 홍명보 감독은 축구협회에서 재직 중일 때도, 또 축구협회를 나와서도 벤투호에 대한 평가를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본인 역시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대표팀을 이끌고 나갔던 만큼 크든, 작든 주변의 훈수가 대표팀 감독에게는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벤투 감독의 마지막 무대인 카타르월드컵 첫 경기가 끝나고서야 홍명보 감독은 벤투호에 대해 입을 열었다. 평가를 부탁한다는 질문에 그는 “선수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우루과이전에 대해서는 팀 밸런스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그는 “준비를 잘 했고,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의 밸런스를 잃지 않았다. 선수들이 각자 무슨 역할을 해야 할 지 파악하고 있었고. 그걸 완벽에 가깝게 수행했다. 실수도 크게 나오지 않았다. 한국 축구의 전반적인 국제 경험치가 올라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실제 경기에서도 벤투 감독이 준비한 전략 전술은 잘 먹혔다. 특히 황희찬의 햄스트링 부상으로 대신 출격한 나상호는 김문환과 함께 전반에 오른쪽 측면을 흔들며 흐름을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후반에는 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이강인이 조규성, 손준호와 함께 교체 출전해 우루과이 수비진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주장 손흥민은 안와골절 수술 후 3주 만에 우려를 뒤로 하고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하며 날카로움을 보여줬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들의 선전이 눈에 띄는 데 대해 “자신들의 경기를 90분 동안 잘 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라고 설명했고 한국도 그런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우루과이가 자신들의 경기를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게 보였다. 

“우루과이가 오히려 우리를 더 경계했던 것 같다. 손흥민 선발 카드 등에 어느 정도 당황했고, 상대가 전반에 너무 조심스럽게 경기하면서 자기 플레이를 잘 못했다. 우리 미드필더들이 큰 몫을 했다. 점유율 싸움, 공을 다시 가져오는 리커버리 등 전반적인 주도권 경쟁에서 앞섰다.”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무승부의 의미에 대해서도 축구인 홍명보는 누구보다 잘 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선수로,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 1차전을 무승부로 출발했다. 하지만 두 차례 모두 2차전에서 승리를 가져가지 못해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홍명보 감독은 2차전에 임하는 자세와 준비에 대해서는 경험과 반성을 토대로 조언을 했다. 특히 1차전 내용과 결과에 들뜨지 말고 냉철하게 2차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1차전 무승부는 나쁘지 않다. 우리가 이걸 2차전에서 승리해 반드시 큰 찬스로 이어가야 의미가 있다. 우리 대표팀은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2차전을 앞두고 너무 들뜨는 분위기가 되면 안 된다. ‘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좋지만 아직 ‘해냈다’고 말 할 정도는 아니다. 1994년에도, 2014년에도 결국 2차전에서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해 1차전에서 잘 한 것의 의미가 반감됐다. 2차전에서 승리해야 우루과이전 선전이 의미가 배가된다.”

가나전 준비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감독으로서 자신의 뼈아픈 경험에서 나오는 생각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당시 러시아를 상대로 한 1차전에서 선전하며 1대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2차전에서 알제리에게 2대4로 패하며 무너졌다. 공교롭게 벤투호도 2차전에서 아프리카 팀인 가나를 만났다. 한국은 역대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2차전 승리가 없다. 벤투호가 새 역사를 써야 16강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아프리카 팀은 까다롭다. 어느 국제 대회, 어느 조나 복병이다. 우리도 쉽게 넘어간 적이 없었다. 나흘의 시간 동안 분석을 차분히 해야 한다”고 말한 홍명보 감독은 팀 내부 분만 아니라 외부에도 당부를 했다. 

“2차전 이후의 기회는 생각하지 말고 가나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상대를 쉽게 보지 말고 철저히 파고 들어야 한다. 8년 전 알제리전에서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냉정하게 준비하지 못했던 게 두고두고 아쉬웠다. 벤투 감독과 선수들이 그런 분위기에 신경쓰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가 조금 차분하게 다음 경기를 준비하도록 도우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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