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규, 구자철, 이창민, 진성욱(왼쪽부터, 이상 제주유나이티드).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8일 스틸야드에서 열린 포항스틸러스와 제주유나이티드의 K리그1 35라운드. 후반 27분 구자철이 교체 투입됐다. 지난 7월 30일 전북과의 원정 경기에 교체 출전한 이후 부상으로 긴 회복과 재활을 이어오던 그가 70일 만에 그라운드를 다시 밟는 순간이었다. 윤빛가람을 대신해 중원에 배치된 그는 함께 투입된 진성욱과 후반 들어 포항에 밀리던 흐름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후반 36분 제주는 포항 문전에서의 거센 2차, 3차 공격 끝에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주민규와 윤빛가람이 교체돼 나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1, 2번 키커가 빠졌다. 그 상황에서 제주가 가장 신뢰하는 키커는 이창민이었다. 자연스럽게 페널티 스팟으로 이창민이 걸어갔다. 하지만 이창민은 이내 공을 들더니 뒤로 걸어가 구자철에게 뭔가를 얘기했다. 구자철이 고개를 젓자 이창민은 공을 페널티 스팟에 세웠고, 특유의 강력한 슛으로 2-1 승리의 결승골을 기록했다. 

경기 후 이창민은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자철이 형이 K리그에 복귀했는데 아직 골이 없다. 복귀를 알리는 득점을 넣을 수 있는 기회라 형에게 양보할까 싶었는데, 형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내가 차는 게 낫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구자철이 그 기회를 받아들이고 무난히 득점에 성공했다면 이창민의 말대로 ‘구자철 K리그 복귀골 신고’ 등의 기사가 몇 개는 더 나왔을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구자철은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 내용을 꼼꼼히 본다면 임팩트는 있었다. 공격을 이끌진 않았지만, 이창민의 뒤에서 안정적인 역할을 해주며 포항의 막판 공세를 끊었다. 유연한 탈압박, 안정적인 공 소유는 여전했다. 후반 40분에는 묘기에 가까운 장면을 선보였다. 포항의 완델손이 허용준과의 2대1 패스로 제주의 중앙을 파고들려고 할 때 쫓아가 뒤에서 공만 긁어내 오는 태클을 구사해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70일 만에 복귀한 구자철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선수는 항상 팀을 위해 뛰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제주유나이티드 팀과 팬, 경기장에 와 주시는 모든 분을 위해 내가 어떤 컨디션, 어떤 기분이든 간에 100%를 쏟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렇게 뛰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구자철(제주유나이티드).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올 시즌 K리그 복귀 후 두 차례 부상을 당한 터라 무리한 동작 없이 안정적으로 경기를 하는 쪽으로 컨트롤하는 모습이었지만 완델손의 돌파를 막는 태클에서는 클래스가 느껴졌다. 구자철은 “동료 선수에게 주고 그 선수가 들어갈 거라고 확신했다. 멈추지 말고 같은 스피드로 따라가야 되겠다고 했고, 공이 발에 닿는 거리까지 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태클을 시도했다”라고 말했다. 

페널티킥 장면에서 거절한 이유가 궁금했다. 구자철은 “음…”하면서 깊게 생각하고 입을 떼는 특유의 버릇으로 당시 자신의 판단을 설명했다. 

“내가 차서 골을 넣었다면 내 입장에서만 좋았을 거다. 팀 내부의 원칙이 있고, 그 선을 넘지 않으려고 했다. 그 상황에서는 감독님이 창민이를 1번 키커로 신뢰하고 계신다. 내게 주어진 임무가 있으니 그것부터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창민이 네가 차는 게 맞겠다'라고 얘기했다.” 

자신의 복귀를 알리는 방식이 골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의미였다. 그럴 욕심을 낼 선수도 아니었다. 구자철은 “복귀골을 기다리거나 반기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굳이 지금...’ 이라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다. K리그로 돌아올 때 멀리 보고 왔다. 한 순간, 한 경기의 장면보다 긴 관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억지로 하려고 욕심내거나 서두르지 않으려고 정신적으로 컨트롤하고 있다. 앞으로 보여줄 게 많다고 확신을 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조금 더 기다려 주시면 좋겠다”라는 부탁을 했다. 

구자철이 부탁한 기다림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2월 말 그가 오랜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의 프로 커리어의 출발점이었던 제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팬들은 금세 구자철의 클래스를 느낄 수 있는 경기력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복된 부상과 긴 재활이었다. 2011년부터 11년간 해외에서 뛰었던 구자철에게 K리그의 여러 환경은 적응해야 할 대상이었다. 친구인 기성용과 이청용도 해외에서 돌아온 뒤 첫 시즌에 K리그에서 애를 먹은 공통점이 있다.

“올 시즌 왜 많이 못 뛰고 있느냐, 경기력이 안나오느냐는 질문에 평소 나의 스타일대로 답을 드리면 ‘핑계가 있겠습니까, 제가 못해서죠...’라고 해야 한다. 사실 적응의 문제가 있었다. 그걸 온전히 나를 위한 핑계로 삼고 싶진 않다. 다만 한국 축구를 위한 고민을 더해서 답을 드린다면 좀 다르게 얘기할 부분이 있다. 잔디 문제다. 경기장의 잔디 상태는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퍼포먼스의 수준이나 부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그 중요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공감하는 부분에서 해외와 국내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경기력이나 템포 등 여러 면이 잔디 상태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선수의 부상 위험도 크게 낮출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아직 K리그는 발전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자철(제주유나이티드).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올 시즌 구자철이 경기 중 당한 두 차례의 부상이 그와 연관돼 있다. 국내의 잔디와 그라운드 상태는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 중동에 비해 좋지 않다. 촘촘하고 풍성한 잔디가 양탄자처럼 깔린 해외와 달리 국내의 잔디는 불규칙하고 패인 곳이 많다. 잔디 아래의 땅도 푹신하고 무른 유럽과 달리 건조하고 딱딱하다. 구자철뿐만 아니라 기성용과 이청용도 K리그 복귀 첫해 햄스트링, 무릎 등에 부상 위험을 안아 기여도가 낮았다. 구자철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낼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시즌 끝나고 셋이 보기로 했는데, 그때 한번 얘기해 보려고 한다. 우리마저 아무 목소리를 안 낸다면 정말 변화하려 하지 않을 것 같다. 혼자서 공론화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유럽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돌아온 이들이 함께 공론화시킬 때 영향력이 클 거다. 우리도 단숨에 바꿔 달라고 얘기하기보다는 모두가 문제를 이해하고, 화합해서 풀어갈 수 있도록 천천히 긍정적으로, 하나씩 바꾸는 목소리를 내 보려고 한다.” 

포항전 승리는 제주가 4경기 만에 얻은 승점 3점이었다. 여전히 리그 6위지만 제주(49점)는 4위 인천유나이티드(50점)에 승점 1점 차로 따라붙었다.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확보하려면 3위 포항(55점)을 제쳐야 한다. FA컵 우승을 전북현대가 가져갈 경우에는 리그 4위 팀에도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주어지는 만큼 남은 3경기에서 제주의 목표는 최소 4위 확보다. 그런 면에서도 남은 시즌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승점 3점의 가치는 의미가 컸다. 

구자철은 “선수들이 많이 지쳐 있었다. 시즌 막바지고, 결과도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항상 그 순간에 맞는 동기부여를 찾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이번 시즌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다음 시즌 준비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래서 남은 3경기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선수단 전체가 그걸 중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타르 월드컵 기간에는 KBS에서 해설위원으로서 활동할 예정이다. 그로 인해 일부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팀에 최선을 다 하고, 선수로서의 몸 상태 유지가 우선이 아니냐는 것. 제주가 부진한 시기에 외부 활동을 하다 보니 나온 지적이었다. 구자철이 잔여 시즌을 뛰지 않을 것이라는 루머까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날 보란 듯 경기에 출전해 팀 승리에 보탬이 됐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지금 다른 어떤 것보다 제주의 팀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다. 몸 상태는 괜찮다. 나 역시 최선을 다해야, 제주에 더 나은 내년이 기다린다고 본다. 선수들과 하나가 돼 플레이를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싶다. 동료들이 경기장에 나가서 흥미를 느끼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과로 돌아와 보람을 느끼도록 옆에서 같이 열정을 불태우려고 한다.”

구자철은 인터뷰 말미에 중요한 얘기를 덧붙였다. 아내의 병환(급성백혈병)으로 인해 팀을 떠나 있는 마철준 수석코치에 대한 마음이었다. 제주 선수들은 포항전에서 윤빛가람의 선제골 이후 마철준 코치와 가족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담긴 유니폼을 들어 보였다. 구자철은 “2010년 팀이 준우승 할 때 마철준 코치님과 선수로 함께 뛰며 인연을 이어왔다. 축구인으로서, 제주의 한 가족으로서 뭐든지 돕고 싶다. 할 수 있으면 다 하고 싶다. 제주유나이티드 모든 구성원들이 마 코치님을 응원하고 있으니까 힘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잘 되길 소망한다”며 바람을 남겼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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