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전북현대의 박진섭은 미드필더일까, 센터백일까? 지난 겨울 박진섭은 전북현대에 입단, 내셔널리그(대전한국철도)와 K리그2(안산그리너스, 대전하나시티즌)를 차례로 거쳐 K리그1 디펜딩챔피언인 고향팀까지 입성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로 주목받았다. 현재는 전북의 주전 센터백으로 입지를 굳건히 하며 포지션 변신의 성공 사례로 다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전북 수비의 기둥인 홍정호가 아킬레스건염으로 2개월 넘게 빠진 사이에도 팀이 1위 울산현대를 오히려 더 추격할 수 있었던 것은 박진섭이 센터백으로서 맹활약해줬기 때문이다. 

지난 3월부터 센터백으로서 뛰기 시작한 그는 고작 반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팀의 주전 센터백으로 손색없는 선수가 됐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올 시즌 활약상만 놓고 보면 박진섭이 K리그1 시즌 베스트11에 뽑혀도 납득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대학 시절(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과 내셔널리그에서 그가 한 시즌에 10골 이상을 기록했고, K리그2에서도 4시즌 동안 20개의 공격포인트를 올린 미들라이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포지션에 대한 정체성은 더 헷갈린다. 김상식 감독은 "축구 천재인 거 같다. 잘 할 거라 예상은 했는데 이 정도로 해 줄 지는 몰랐다"라고 평가했다. 

박진섭 본인은 “이제는 센터백의 정체성이 강해졌다. 물론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도 자신 있다. 두 가지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건 선수로서 너무 큰 장점이다. 축구 인생에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를 준 전북과 김상식 감독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여러 전문가들의 호평에는 “아직 내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 그 정도는 아니라 본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다음은 센터백 박진섭이 탄생한 과정에 대한 긴 이야기다. 

- 반년 만에 너무 자연스럽게 리그 정상급 센터백이 됐다. 이전에 센터백으로서의 경험이 있었나?
안산에서 뛸 때까지 센터백을 본 적이 없다. 대전에서는 상황에 따라서 3백 중앙을 볼 때가 있었다. 작년 후반기에는 대전에 부상 선수가 많이 발생하다 보니 임시로 4백에서 센터백을 본 경험은 있다. 하지만 개념적으로 볼 때 제대로 센터백을 소화한 건 이제 6개월 정도다. 

- 전북이 지난 겨울 센터백 보강에 실패했다. 그런데 김상식 감독은 박진섭이 센터백으로서 뛰는 플랜을 갖고 있다고 일찌감치 예고했다. 
감독님이 이적 과정에서 나를 원한다고 처음 연락을 주셨을 때부터 센터백의 가능성을 얘기하셨었다. 동계훈련을 시작할 때도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의 비중을 5대5로 생각해 달라고 하셨다.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들어왔다. 이렇게 빨리 센터백으로 완전히 전환을 할 지는 몰랐다. 동계 때 감독님에게 배운 게 일단 큰 자산이 됐다. 포지셔닝을 중점적으로 배웠고, 센터백으로서 필요한 습관을 알려주셨다. 상대 선수 체크와 수비 경합 때의 요령 같은 노하우였다. 

- 프로에 와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에서는 유사성이 있지만 그래도 세세한 역할이 다르다. 처음엔 어려움을 있었을 것 같다. 
센터백 뒤에는 골키퍼뿐이다. 상대에게 뚫리면 바로 실점 상황을 내주고 만다. 수비형 미드필더 때와의 플레이 하나 하나에서 느끼는 책임감의 차원이 달랐다. 초반에는 그게 부담이 됐다. 전북이라는 팀에서는 그런 상황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그래서 김민재, 홍정호 같은 최고의 센터백들이 이 팀을 지켰다. 동계훈련을 거쳐 시즌에 돌입해서 과연 내가 그만큼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가졌다. 사실 프로 경험치가 쌓였다고는 해도 K리그1은 올해가 처음이었고, 그것만으로도 내겐 상당히 큰 도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센터백을 봐야 했기 때문에 표현할 수 없는 중압감이 왔다. 

 

- 시행착오를 줄이고 최대한 빨리 새로운 포지션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있었나? 주변의 도움은?
국내외 경기를 많이 본다. 내 포지션에 위치한 선수를 보며 배우려고 했는데, 이제는 센터백의 움직임과 플레이를 관찰하게 된다. 영상으로 공부를 많이 했다. 훈련할 때는 일단 감독님께서 위치를 잡는 법을 중심으로 많이 가르쳐주셨다. 정호 형도 옆에서 많이 도와줬다. 해외 선수 중에선 파리생제르맹의 마르키뇨스 선수를 중점적으로 봤다. 신장이 센터백으로서 아주 크진 않은데 상대 선수를 어떻게 막는지, 커버하는 방법, 공을 소유하면서 안정적으로 풀어가는 모습을 주목했다. 

시행착오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라인을 맞추는 부분, 수비로 전환할 때의 1차적인 위치 잡는 데서 초반에 내 실수가 있었다. 그럴 때는 정호 형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정호 형은 사람이 좋아서 내가 실수를 해도 뭐라고 안 한다. 그냥 자기가 와서 다 커버하고 막아준다. 대신 진수 형이 엄청 뭐라고 했다. 진수 형은 실전에서 실수가 나오면 쌍욕을 한다. 진수 형한테 욕 안 들으려면 집중력을 120%로 발휘해야 한다. (웃음) 그런데 경기장 밖에서 가장 잘해주는 선배가 진수 형이다. 진수 형한테 혼나면서 수비를 배웠고, 그러면서 센터백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덜 걸렸다고 생각한다. 나를 센터백으로 키운 지분의 상당 부분은 진수 형 몫이다. 

- 언제부터 이제 내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센터백이라는 생각이 들던가?
센터백이라는 정체성이 강해지고, 자신감이 생긴 건 여름부터다. 베트남에서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를 치르며 집중적으로 경험을 쌓았다. 그러면서 센터백으로서의 시야, 그리고 위치 선정에 이질감이 사라졌다. 비슷한 상황에서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이구나, 라는 학습이 됐다. 미드필더를 오래 봐 왔기 때문에 기존 수비수보다는 체력, 그리고 패스로 풀어나가는 점에서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한발 두발 더 뛰며 커버를 하고, 라인을 앞으로 당겼을 때 상대의 압박에 대처하는 게 조금은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을 센터백으로서의 경쟁력으로 키워가고 있다. 

- 홍정호가 빠진 동안에는 어땠나? 오히려 수비의 중심 역할을 하며 돋보였다. 
정호 형이 부상으로 빠진 동안에는 영선이 형, 자룡이 형과 계속 대화를 나눴다. 두 선배 모두 많은 경험과 능력을 갖고 있다. 센터백으로서는 내가 팀에서 경험치가 가장 낮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영상을 같이 보며 형들에게 질문을 했다. 형들의 답변 하나 하나가 내게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아도 쌓이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내가 형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 실점 장면을 돌아볼 때 아직은 내가 센터백으로서 미진한 점이 있다고 절감했던 때는 언제였나?
김천 원정에서 김준범 선수에게 내 준 동점골 장면이 계속 생각난다. 아직 센터백으로서 무엇이 부족한 지가 드러났다. 센터백은 공격수와 부딪히는 상황에서 예측하거나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나는 김준범 선수가 1차 트래핑 후 바로 슈팅을 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위치만 잡고 블록만 하면 된다고 봤다. 그런데 김준범 선수가 거기서 한 번 더 트래핑을 하며 빠져나가 버려서 반응을 못했다. 기술이 좋은 선수니까 그런 시도까지 할 거라고 예상하고 끝까지 보고 반응했어야 했다. 그런 장면에서 또 배웠다. 

 

- 반대로 센터백으로서 자신감이 가장 올라갔던 순간도 궁금하다. 
AFC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는 센터백으로서 내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자신감이 커졌다. 특히 비셀 고베와의 경기에서 무고사 선수를 상대하며 내가 이만큼 업그레이드됐다라는 걸 느꼈댜. 무고사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는 K리그 선수라면 다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날 위치상 내가 무고사를 많이 상대해야 했다. 그런데 일대일 상황에서 잘 막아냈다. 내가 이만큼 성장했고, 이런 좋은 공격수를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니까 이 포지션의 매력도 새로 느끼게 됐다. 

- 수비형 미드필더로는 K리그2 최고의 선수였지만, 센터백으로서는 K리그1 베스트11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변에서도 포지션 변경이 신의 한 수라고 본다. 형들이 하나 같이 센터백을 소화하게 됨으로써 프로로 롱런할 거 같다고 얘기한다. 나 역시 센터백이 이제는 옵션 중 하나가 아니라 진짜 내 포지션처럼 느껴진다. 그런 부분을 내다보고 포지션 변경을 권유해 주신 김상식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리그 베스트11은 감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제 센터백으로 6개월 했다.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 올해는 K리그1에 도전해서 안착하는 게 목표였다. 전북이라는 내가 꿈 꾸던 팀에 와서 꾸준히 경기도 뛰고, 골도 넣었다. 지금 상황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베스트11 후보에만 들어도 내게는 꿈만 같은 일이다. 

- 남은 시즌 동안 센터백 박진섭의 역할이 더 중요할 것 같다.
파이널 라운드는 단기전 성향이라 수비수의 역할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전북이 목표로 하는 우승을 위해서는 5경기 모두 무실점을 해내야 한다는 각오다. FA컵 같은 토너먼트는 우리가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쌓은 경험이 발휘될 것이다. 정호 형이 돌아왔고, 시즌 막바지로 올수록 전북이 지녔다는 위닝DNA가 뭔지 팀 안에서 느끼고 있다. 형들이 차분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준비 중이다. 남은 시즌 동안 단단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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