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 강원FC 대표. 강원FC 제공
이영표 강원FC 대표. 강원FC 제공

[풋볼리스트] 조효종 기자= 2002년 6월 14일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당시 한국은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에 한 걸음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올라갈 수 있었으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상대가 조 최강팀 포르투갈이었다. 한국은 끝까지 진심으로 포르투갈을 상대했고, 후반 25분 터진 결승골을 통해 당당히 새 역사를 썼다. 당시 골을 합작한 선수는 향후 10여 년간 대표팀의 '믿을맨'으로 활약했던 박지성, 그리고 이영표였다.

박지성의 골을 어시스트했던 이영표는 20년이 흐른 지금도 한국 축구계의 도우미 역할을 맡고 있다. 이제는 경기장 밖을 부지런히 누빈다. 강원FC의 대표로 구단의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일하고 있고, 대한축구협회(KFA) 부회장으로 한국 축구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풋볼리스트'가 한일 월드컵 20주년을 앞둔 지난 5월 말 이영표를 만나 20년 전을 회상해 봤다. 대표, 부회장 이영표가 선수 이영표로 돌아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2 월드컵은 그만큼 강렬한 기억이었다.

2002 월드컵 이후 벌써 20년이 지났다

2002 월드컵 때 20대였다. 그때는 20년이란 시간이 인생의 전부였기 때문에 엄청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20년이 지나고 나니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2002 월드컵 이후 많은 일을 겪긴 했지만 그래도 20년이 참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4강에 오른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2002년이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계급 사회가 아님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구분돼 있다. 서로를 적대시하고 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2002 월드컵 도중에는 그런 게 뒷전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앞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축구가 매개체가 돼 국민들이 하나로 통합된 것이다.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다. 지금은 당시 확인할 수 있었던 축구의 힘이 더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오늘은 5월 27일이다. 20년 전 5월 27일은 개막 나흘 전이었고, 프랑스와 최종 평가전을 치른 다음날이었다. 그날 어떤 심정이었나

그보다 1년 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와 만나 0-5로 졌다. 그때 프랑스 선수들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템포로 공을 잡고 움직였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아예 감을 잡지 못했다. 경기를 마치고 무력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후 1년 동안 (거스) 히딩크 감독님 아래에서 준비를 하고 월드컵 전에 다시 프랑스와 만났는데 그들이 하는 패스와 터치, 공을 잡고 움직이는 타이밍이 눈에 들어오고 예측이 되더라. 많이 놀랐다. 앞선 잉글랜드전에서도 그랬다. 잉글랜드와 1-1로 비기고, 프랑스에 2-3으로 졌는데 세계적인 팀들을 상대로 3골을 넣으면서 엄청난 자신감이 생겼다. 2002년 5월 27일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상태였다. 두려움이나 긴장감보다는 기대감을 갖고 월드컵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지성 전북현대 어드바이저(왼쪽), 이영표 강원FC 대표. 대한축구협회 제공
박지성 전북현대 어드바이저(왼쪽), 이영표 강원FC 대표. 대한축구협회 제공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아무래도 포르투갈전일까?

맞다. 나는 월드컵 2~3일 전에 부상을 당해서 첫 두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포르투갈전이 첫 경기였다. 그리고 포르투갈전에서 그토록 원했던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2002 월드컵뿐 아니라 축구 인생 전체에서 한 경기를 뽑아도 포르투갈전이다. (중요한 경기에서 결승골 어시스트까지 기록해서 의미가 더 클 것 같다) 그걸 어시스트라고 하기엔…(웃음) 골에도 지분이 있다. 어떤 골은 어시스트가 9고, 골을 넣은 사람의 공은 1밖에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내 생각엔 포르투갈전 결승골은 99% 지성이가 만든 거다. 내 비중은 1%도 안 된다. 운이 좋았다.

월드컵 4강까지 도달했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

16강에서 이탈리아를 이겼을 때 정말 기뻤다. 스페인을 이기고 4강에 올랐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4강 독일전부터는 '이래도 되나? 결승까지 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웬만한 나라는 16강에만 가도 성공이라고 하고 만족스러워하는데 무려 4강에 오른 것이니까.

당시 대표팀은 정말 강했던 것 같다

진짜 실력 있던 팀이었다. 개개인의 능력은 몰라도 조직력, 체력 면에서 다른 팀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한국 축구 전체를 이야기하면 여전히 세계 축구 정점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2002 월드컵 당시 대표팀만큼은 4강에 갈 자격이 있었다. 운만으로는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이기고, 독일과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없다. 실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때 우리는 수준 높은 축구를 했고, 그 중심에는 히딩크 감독님이 계셨다.

2002 월드컵 이후 당시 멤버로서 자부심도 있었겠지만 책임감도 뒤따랐을 텐데

월드컵 이후 해외에는 '운이 좋았다, '홈 어드밴티지 때문에 4강에 갔다'라며 우리 대표팀을 폄하하는 시선도 많이 있었다. 그래서 홈이 아닌 원정 월드컵에서도 16강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2002 월드컵 세대에 주어진 마지막 사명이었다. 02 월드컵 4강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당시 성과가 평가절하되지 않을 수 있었고, 후배들이 16강을 넘어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은 얼마 남지 않은 2002년 멤버에게 마지막 월드컵이었는데, 그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하니까 그제서야 '아 나는 이제 은퇴해도 되겠다. 할 일을 다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는 2002 월드컵을 통해서 정말 정말 엄청난 혜택을 받았고, 응원과 사랑도 받았다. 지금도 2002년 멤버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구단 대표가 된 지금, 당시 선수 이영표를 평가해 본다면?

난 기본적으로 부족한 게 많은 선수였다. 부족한 건 워낙 많으니까 장점을 이야기해 보자면 공격과 수비가 동시에 되는 선수였다. 90분 내내 수비만 할 수도 있고, 공격만 할 수도 있었다. 그럴 체력도 갖고 있었다. 최소한 1명을 제치고 슈팅이나 크로스, 패스를 할 수 있는 능력도 지녔다. 음, 다시 생각해 보니 괜찮았던 선수였다. (지금 다른 팀에 선수 이영표가 있다면 영입을 시도할 것인지) 무조건 한다(웃음). 정승용 선수가 잘해주고 있지만 한 포지션에 한 선수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두 명은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런 선수가 이제 막 20대 중반이 됐다? 거액의 이적료를 지불하고서라도 데려올 것 같다.

이영표 강원FC 대표. 서형권 기자
이영표 강원FC 대표. 서형권 기자

월드컵을 기점으로 선수 이영표의 커리어가 크게 바뀌었다

그렇다. 월드컵 전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축구 인생뿐 아니라 개인적인 삶도 달라졌다. 내 인생의 BC(기원전)와 AD(기원후)를 나누는 기준이 2002 월드컵이다. 월드컵은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됐고,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 줬다. 말 그대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은퇴 이후 2014, 2018 월드컵은 해설위원으로 지켜봤다. 당시 정확한 예측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사실 내가 맞춘 게 많지 않다. 2014 월드컵 초반에 스코어 예상을 했었는데 우연히 몇 번 적중했다. 운이 좋았던 거다. 재미로 한 건데 내가 뭘 알아서 맞췄겠나(웃음). 그 이후로 50번은 틀린 것 같은데 맞춘 것만 부각이 됐다. (그럼 재미로 2022 월드컵 우승 팀을 전망해 달라) 나는 예측할 능력이 없다. 그냥 누구나 하듯 별 의미 없이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래도 프랑스가 하지 않을까? (한국 성적은?) 개인적으로 정말 기대가 된다. 부상을 비롯해 큰 변수가 없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기대를 받는 선수는 손흥민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까지 수상했으니까. 직접 그 무대에서 뛰어봐서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와닿을 것 같다

손흥민이 득점왕에 오른 2022년 5월 23일은 아시아 축구의 새 역사가 만들어진 날이다. 한국 축구만의 일이 아니다. 손흥민의 23번째 득점은 '아시아 올타임 넘버원은 손흥민'이라는 공식 문서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 골이었다. 22골과 23골은 다르다. 22골에 그쳤다면 한 달 정도 '대단한데 아쉽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끝났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반면 득점왕은 이름이 아로새겨진 것이기 때문에 축구 역사가 이어지는 한 계속 기억될 것이다. 이제 누가 '아시아 넘버원이 누구냐?'같은 이야기를 하면 들을 필요도 없다. 일본의 누구? 이란의 누구? 23번째 골로 논쟁의 여지가 없어졌다. 일단 프리미어리그 득점왕부터 하고 와야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한국은 손흥민, 차범근, 박지성이라는 아시아 TOP3를 다 보유하고 있다.

손흥민이 갓 토트넘홋스퍼에 입단해 부침을 겪을 때 곧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대표팀에서 같이 훈련을 해본 적이 있는데 손흥민은 아주 뚜렷한 장점이 3가지가 있다. 속도, 침투, 마무리. 3가지 능력이 탑클래스다. 그리고 경기에 임하는 태도, 축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를 통해 손흥민이 매 시즌 20골을 넣고 10개 가까이 도움을 기록하는 선수가 된 것이다.

※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 인터뷰는 풋볼리스트의 한일 월드컵 20주년 기념 시리즈 '2002+20=2022'의 일환입니다. 당시 멤버였던 현영민, 이영표, 설기현, 김태영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사진= 강원FC,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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