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노 주심, 2002 한일월드컵 / 게티이미지코리아
모레노 주심, 2002 한일월드컵 /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김동환 기자= 20년 전, 대한민국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2002 한일월드컵을 공동 개최했던 대한민국이 4강 신화를 썼다. 지금까지도 가장 '극적인 승부'로 회자되는 경기는 2002년 6월 18일 대전월드컵에서 개최된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이다. 

당시 한국은 매 경기 아시아 축구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지안루이지 부폰,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 프란체스코 토티, 파울로 말디니 등 최전성기의 역대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이탈리아는 특유의 거친 축구로 한국을 압박했다. 강력한 '질식 수비'는 한국에 패색을 안겼다. 전반 시작 5분만에 설기현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안정환이 실축했다. 그리고 전반 18분 엄청난 피지컬의 비에리가 헤딩골로 한국의 골망을 흔들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설기현-안정환-황선홍-차두리로 이어지는 초유의 공격라인을 가동했다. 종료 2분을 남긴 후반 43분 상대 수비수의 실수를 틈타 설기현이 왼발로 이탈리아의 골망을 흔들었다. 연장전 돌입 대세는 한국을 향해 기울었다.

연장 전반 13분 토티가 헐리우드 액션으로 두 번째 경고를 받고 퇴장을 당했다. 그리고 연장 후반 12분, 이영표의 크로스를 받은 안정환이 골든골로 경기를 끝냈다. 

초유의 8강 진출 확정은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다. 동시에 지구 반대편 이탈리아도 달아올랐다. 토티의 퇴장 장면을 '심판 매수'로 기정사실화 했다. 당시 페루자에서 활약하던 안정환은 팀에서 쫓겨났다.

당시 주심을 본 에콰도르 국적의 바이런 모레노 심판은 오랜 기간 온갖 공격에 시달렸다. 자국은 물론 남미를 포함한 국제 무대에서 잔뼈가 굵고 신뢰받는 심판 중 한 명이었지만 이탈리아의 '국민 역적'이 됐다. 

2002 한일월드컵 20주년을 맞이해 모레노 심판이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심경을 고백했다. 그는 에콰도르에서 축구 경기 판정 관련 분석 TV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탈리아 언론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가 모레노 심판과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모레노 심판은 "한일월드컵에서 후회가 남는 장면은 딱 하나다"라고 했다.

이탈리아 축구팬들은 모레노 심판이 20년 만에 토티의 퇴장에 대한 '양심고백'을 하는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모레노 심판은 당시 장면을 정당했다고 못박았다. 

"지금까지도 이탈리아 팬들에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욕을 먹고 있다. 하지만 나는 결백하다"라고 운을 뗀 모레노 심판은 "대표적으로 토티의 퇴장 상황이 비판을 받았다. 영상을 보면 한국 선수가 먼저 공을 잡았다. 이탈리아 선수가 다가가고 쓰러진다. 파울을 유도하는 장면이다. 규정상 시뮬레이션은 경고가 주어지고, 앞서 경고를 주어지니 퇴장을 당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선수가 판정 후 항의를 하지 않으면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당시 퇴장을 당한 후 토티의 자세가 그랬다"고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모레노 심판은 당시의 판정이 옳았음을 근거와 함께 제시한 것이다.

대신 모레노 주심은 한일월드컵 당시 후회가 되는 단 하나의 장면으로 이탈리아와 한국의 경기를 꼽았다. 후반 27분 황선홍과 잠브로타의 맞대결이었다. 그는 "황선홍이 잠브로타를 막았다. 결국 부상으로 이어졌다. 내가 후회하는 단 하나의 장면이 그 장면이다. 돌아간다면 아마 한국 선수에게 퇴장을 줬을 것이다"고 했다.

모레노 주심은 당시 판정에 대해 "10점 만점 중 8.5점"이라고 자평했다. 이어 그는 "당시 경기에서 이탈리아가 실수했다.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은 전술적으로 가투소를 잘못 활용했다. 그래서 패배했다"라고 이탈리아의 패인을 꼬집었다.

인터뷰가 공개된 이후 이탈리아 축구팬들은 다시 한 번 분노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는 모레노 주심을 향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모레노 심판의 범법 이력까지 거론 중이다.

모레노 심판은 지난 2011년 미국에서 마약 밀수 혐의로 실형을 받고 미국 교도소에 수감 된 바 있다. 이탈리아 팬들은 "마약 밀수범이 하는 말은 뻔하다"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모레노 심판은 인터뷰에서 마약 밀수에 대해 "당시 가족이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20년 전 월드컵에서 맞붙은 한국과 이탈리아는 오는 11월 개최되는 카타르월드컵에서 만남이 무산됐다. 한국은 본선에 진출한 반면, 이탈리아는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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