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포항스틸러스). 풋볼리스트
김준호(포항스틸러스). 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포항] 허인회 기자= “축구인 2세라면 다들 공감할 거예요. 아빠의 아들로 불리기보다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게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빠는 철인으로 불렸어요. 저는 그라운드 위의 마에스트로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아들을 투입했다. 지난달 28일 김기동 포항스틸러스 감독은 인천유나이티드전에 아들 김준호를 교체 출전시켰다. 한 팀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데뷔시킨 건 K리그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치르고 온 주전 선수들이 대거 휴식을 받은 가운데 2002년생 김준호, 2003년생 조재훈, 2000년생 노경호 등 어린 자원들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초중고를 모두 포항 유스팀에서 나온 김준호는 적극적으로 뛰며 유효슈팅 2회를 기록했다. 경기장을 밟는 순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는데 금방 적응을 완료했다. 장점을 다 보여준 건 아니지만 팬들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김준호는 지난 2일 ‘풋볼리스트’와 인터뷰를 통해 “당일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는데 잘 안 들어갈 정도로 부담이 됐어요. 워밍업 나갈 때는 너무 긴장되더라고요. 경기장에 투입되고 나서도 초반에는 당연히 긴장됐죠. 근데 걱정과 달리 점점 편안해지더라고요”라며 프로 데뷔전을 치른 소감을 밝혔다.

아버지 김기동 감독은 K리그의 명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축구인 2세가 늘 그렇듯 ‘김기동 아들’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김준호는 ‘김기동 아들’이 아닌 ‘김준호’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준호의 바람대로 유명한 축구인 2세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선수들도 있다. 차두리 역시 프로 데뷔 당시에는 ‘차범근 아들’로 불렸지만 결국 아버지 이름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고 극복했다. 다음은 김준호 인터뷰 전문

- 데뷔전이었는데 긴장한 모습이 별로 안 보이더라고요. 안 떨렸어요?

“처음에는 당일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는데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경기 나간다는 것을 미리 알았거든요. 워밍업 나갈 때부터 엄청나게 부담이 됐어요. 최고 긴장 상태였는데 막상 경기장에 들어가니 점점 편해지더라고요. 다행이었죠.”

- 집에서는 김기동 감독의 선수가 아닌 아들이잖아요. 아버지로서 따로 해주신 말이 있었나요?

“문자로 ‘오늘 잘했다’ 정도 이야기 해주시더라고요. (원래 대화가 많이 없어요?) 말을 많이 못 하겠어요. 팀에 같이 있다 보면 서로 말을 잘 안 하게 돼요. 이게 집에서도 이어지더라고요. (만약 말 할 기회가 생기면 어떤 대화가 오가나요?) 일단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있으면 축구 얘기는 절대 안 해요. 엄마가 너무 싫어하시거든요. 아빠도 축구를 했고, 저도 하고 있기 때문에 노이로제를 느끼시는 것 같아요. (일상적인 대화가 주를 이루겠군요) 네. 여자친구 언제 사귈거냐고 물어봐요. 누구 좀 만나래요. 스무살인데 왜 맨날 집에만 있냐고. 나가서 좀 놀다 오래요. (집돌이예요?) 집에서 쉬는 게 편해요. 피곤함을 잘 느껴요. 원래 소심한 편이기도 하고요. (MBTI 해봤어요?) ISFJ. 어떤 성격인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소심한 사람들의 유형이래요. 새로운 도전을 꺼려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 근데 아버지와 외모적으로 별로 안 닮은 것 같아요. 키도 크고. 어머니 유전자라고 볼 수 있나요?

“키는 182cm예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한번에 확 크더라고요. 엄마도 작은 편이에요. 우리 집안에서 큰 사람이 삼촌이 있는데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어린 친구들을 위해 유전자 상관없이 키 큰 이유를 공개해주세요) 고기를 많이 먹고 줄넘기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빨리 자고, 많이 잤어요. 스트레칭 같은 건 따로 안 했고, 우유도 안 좋아해요.”

- 항상 ‘김기동 아들’로 불렸잖아요. 하지만 ‘김준호’로 기억되고 싶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축구인 2세라면 다들 공감할 거 같아요. 누군가의 아들로 불리기보다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게 선수로서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빠는 ‘철인’으로 불렸잖아요. 저는 철인도 좋지만 ‘그라운드 위의 마에스트로’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왼쪽부터 조재훈, 노경호, 김준호(이상 포항스틸러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왼쪽부터 조재훈, 노경호, 김준호(이상 포항스틸러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초중고 모두 포항 유스팀을 나왔어요. 최근에는 포항 프로팀 1군에서 데뷔를 했고요. 포항에 대한 감정이 각별할 것 같아요.

“포항은 편하고 살기 좋은 도시예요. 포항 말고 다른 팀을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다른 팀을 가게 돼도 적응을 잘 못할 것 같아요. 그만큼 여기가 편하다는 뜻이에요. 어릴 때부터 알던 분들에게 연락도 많이 왔어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분들도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아요. 감사하죠. (포항은 어떤 팀이에요?) 초중고에 이어 프로까지 철학이 똑같아요. 배우는 단계부터 패스 축구를 지향해요. (스틸타카?) 네. 공을 소유하며 빠르게 공격으로 전환하는 스타일을 추구해요. 그래서 프로에 올라온 뒤에도 적응이 편했어요. 처음에는 형들 레벨이 다르더라고요. 형들에 비해 힘이 부족해서 힘들었죠. 지난 동계 훈련 때 힘을 키우는데 집중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적응이 됐어요. 형들과 부딪혀보면 아직 부족한데 처음보단 나아요.”

- 데뷔전 출전시간이 많지는 않았어요. 아쉬웠을 것 같은데 장점을 어필해볼까요?

“이번에는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뛰었어요. 이전까지 주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였어요. 프로 와서 처음으로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소화했는데 제 스타일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초중고 때는 키패스, 슈팅이 좋았어요. 그땐 체력이 부족해서 쉽게 풀어가는 방식으로 경기하고 싶었어요. 여기서 체력이 많이 좋아졌거든요. 이제 활동량을 많이 가져가고 수비도 적극적으로 해요. 패스와 슈팅은 여전히 장점이고요. 공격형 미드필더든, 수비형 미드필더든 다 자신이 있다고 해야하나?”

- 장점 어필을 생각보다 더 열심히 하네요. 롤모델은요?

“아빠 포함하면 아빠죠. 0순위예요. 아빠 빼면 차비 에르난데스. 속도가 느린데 공을 굉장히 영리하게 차더라고요. 저랑 비슷한 면이 있는 거 같아요. 이 선수 영상을 많이 찾아봤어요. 좌우 확인하면서 한 번에 공을 돌려놓는 플레이나 키패스 각을 잘 보더라고요. 슈팅도 엄청 좋아요. 발밑이 좋고 영리한 선수였던 것 같아요.”

- 이제 프로 축구선수로서 첫발을 내디뎠어요. 내년으로 넘어가기 직전 데뷔에 성공했는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데뷔해서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올해 데뷔를 못할 뻔했죠. 시즌 마지막에 한 경기라도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준비했어요. 짧은 시간이지만 경기를 뛰는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어요.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쉬웠던 느낌.”

- 기회가 아주 많이 남았는데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해요.

“선수이기 때문에 경기에 많이 나서고 싶어요. 얼마나 뛰고 싶냐면 내년에도 경기에 많이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임대 이적을 하고 싶을 정도로요. 선수라면 당연한 생각일 거예요. 지금은 피지컬적으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발전해야 할 부분이죠. 다음 동계훈련 때는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려고요. 내년에는 선발로 10경기 뛰어보고 싶어요. 공격포인트는 5개 정도? 어시스트를 더 좋아하니 1골 4도움이면 좋을 것 같아요.”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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