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아페나잔(AS로마). AS로마 소셜미디어 캡쳐
펠릭스 아페나잔(AS로마). AS로마 소셜미디어 캡쳐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주제 무리뉴 AS로마 감독이 발렌시아가 운동화를 선물하며 애지중지 육성하는 소년. 프로 데뷔골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18세 공격수 펠릭스 아페나잔이다. 무리뉴 감독이 좋아하는 특징과 로마 공격수들의 결여하고 있던 덕목을 다 갖췄기 때문에 이번 시즌 전망이 밝다.

▲ 환상적인 골의 대가는 발렌시아가 운동화

22일(한국시간) 제노아 원정을 앞둔 무리뉴 감독은 위기였다. 최근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2연패를 당하는 중이었고, 유럽축구연맹(UEFA) 컨퍼런스리그에서도 노르웨이 팀 보데/글림트와 1무 1패에 그치며 조 2위로 밀려 있었다. 게다가 선수들의 줄부상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선발 라인업이 크게 바뀌었다. 제노아전 경기력은 좋았지만 태미 에이브러햄, 엘도르 쇼무로도프 투톱은 언제나처럼 문전에서 허둥거렸다.

무리뉴 감독은 지독하게 결정력이 떨어지는 경기에서 활로를 열기 위해 펠릭스 투입을 결정했다. 펠릭스는 후반 29분 엘도르 쇼무로도프와 교체 투입됐다. 생애 세 번째 프로 경기였다. 8분 뒤, 헨리크 미키타리안이 열어 준 패스를 받아 펠릭스가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날 로마 선수 중 누구도 하지 못했던 간결한 마무리였다. 후반 추가시간에는 중원에 흘러나온 공을 잡자마자 장거리에서 환상적으로 감아 찬 슛을 성공시켰다.

골 장면만 돋보인 게 아니었다. 오른쪽 측면에서 문전까지 파고들어가는 돌파 후 에이브러햄에게 슛 기회를 내주기도 했고, 반칙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활발하게 전방압박을 시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펠릭스는 이날 2골과 함께 슛 3회, 패스 성공률 100%, 키 패스(동료의 슛으로 이어진 패스) 1회, 드리블 성공률 100%로 1회, 공중볼 경합 성공률 100%로 1회, 파울 1회 등 전방위적인 기록을 남겼다.

결정력 난조에 시달려 온 로마는 팀 내 득점순위 상위권을 미드필더 로렌초 펠레그리니(5), 조르당 베레투(4)가 차지하고 있었다. 펠릭스의 2골은 스트라이커 중 에이브러햄(3) 못지않은 수치다. 아직까지 단 1골에 그치고 있는 쇼무로도프보다 많다.

인생 최고 경기를 치른 뒤 펠릭스는 무리뉴 감독, 신, 가나에 있는 어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무리뉴 감독과 유대는 특별하다. 경기 후 무리뉴 감독은 “펠릭스에게 800유로(약 107만 원) 짜리 진짜 비싼 신발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펠릭스가 골 넣고 달려오더니 약속 잊지 말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또한 알베르토 데로시 로마 유소년팀 감독(다니엘레 데로시의 아버지)에게 미안하다며 펠릭스는 1군에서 활용하겠다고 천명했다.

다음날 아침 무리뉴 감독은 펠릭스에게 정말 신발을 선물했다. 발렌시아가의 인기 제품 스피드러너였다. 무리뉴 감독은 “이거 봐, 양쪽 디자인이 다르지? 이거 신상이야”라며 싱글벙글 웃었다.

뜻밖의 논란도 따랐다. 영상 속 목소리가 ‘상자에 들어있는 게 바나나 같은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바나나는 경기장에서 인종차별적 야유에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펠릭스는 재빨리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종차별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확신한다. 우리 팀은 가족이다. 농담을 하는 것도 서로 가족처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바나나를 많이 먹어서 많이 웃곤 했다. 걱정해준 팬들에게 감사드리며 다시 경기에 집중하겠다’는 말로 사태 진화에 나섰다.

▲ 가나에서 자란 소년, 첫 프로팀이 로마?

가나에서 자란 펠릭스는 올해 1월까지 그 어떤 대회에도 참가한 적 없는 선수였다. 선수를 발굴해 유럽으로 진출시키는 것이 전문인 에우르아프리카라는 유소년 클럽에 소속돼 있다가, 갑자기 명문인 로마로 이적했다. 이탈리아 골키퍼 출신인 모르간 데산티스 로마 매니저가 펠릭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재빨리 2년 반 계약을 맺었다. 펠릭스는 15세 때 시청한 로마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바르셀로나전 대역전극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팀으로 한 번에 이적한다는 건 믿기 힘든 기회였다.

특히 이탈리아는 비유럽(non-EU) 선수 영입 한도가 까다롭다. 보유한도는 없지만, 타국 리그에서 비유럽 선수를 데려올 때는 한 시즌 2명이 한도다. 대회 성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관찰한 기량만을 토대로 비유럽 10대 유망주를 영입해 프로 계약을 맺는 건 드문 일이다.

파울루 폰세카 전 감독도 펠릭스의 재능에 주목해 1군에서 훈련할 기회를 주곤 했다. 이번 시즌 부임한 무리뉴 감독은 공격진이 부진에 빠진 10월부터 펠릭스를 아예 1군 경기에 정규적으로 올려보냈고, 핵심 교체 멤버로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이달 초 A매치 기간에 가나 대표팀이 호출했지만 펠릭스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사양했다.

▲ 팀 플레이 능력과 결정력 겸비

펠릭스의 에이전트는 카메룬의 전설적 공격수 사뮈엘 에토에 빗대 소개한 바 있다. 무리뉴 감독은 “펠릭스는 남다른 점이 있는 선수다. 앞선 경기들처럼 에너지, 신체능력으로 상대 수비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일단 투입되면 우리 팀의 역동성이 달라진다. 상대 수비를 압박하면서 실수를 유발할 수 있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반면 안드리 셰브첸코 제노아 감독은 경기 후 “막판 10분 동안은 우리 팀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다”고 분석했는데, 이처럼 후반에 두 팀 선수들이 지쳤다면 펠릭스의 싱싱한 육체가 상대 수비를 부숴버릴 수 있다.

탄력, 전진성, 압박 능력, 결정력 등은 무리뉴의 팀에서 조커 공격수가 갖춰야 할 주요 덕목이다. 펠릭스는 모든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다. 앞으로 최소한 교체 멤버로는 자주 뛸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선발 자리도 노릴 수 있다.

사진= AS로마 소셜미디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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