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지난 9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은 홈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2연전에서 새로운 변수를 마주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여전한 상황에서 진행된 A대표팀 소집을 위해 해외에서 날아온 선수들이 컨디션 관리에 더욱 애를 먹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자가격리 된 정우영은 손쓸 수 없는 사안이었지만, 유달리 부상과 컨디션 난조가 일정을 치르는 중 많이 발생했다. 

결국 레바논과의 두번째 경기를 앞두고는 남태희, 그리고 경기 당일 손흥민이 부상으로 명단에서 제외됐다. 황의조도 편도선이 부어 후반에야 투입됐다. 손흥민과 황의조는 김민재, 황희찬과 함께 첫 경기였던 이라크전 이틀 전에야 대표팀에 합류했고 지난달 소집에서 유달리 고생한 케이스였다.

경기력 측면에서도 김민재를 제외한 손흥민, 황의조는 이라크를 상대로 상당히 고전했다. 특히 황의조는 볼을 받는 움직임에서 조금씩 미스가 나는 상황이 반복됐다. 긴 이동 시간의 피로와 시차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인상이었다. 손흥민도 상대 수비의 집중 견제에 애를 먹었고, 결국 훈련 중 종아리 근육 부상을 입어 레바논전에 뛰지 못했다. 반면 이라크전에 후반 12분 투입됐던 황희찬은 레바논전에서 더 활기찬 모습으로 권창훈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풀타임을 소화했다. 

시리아를 홈에서, 이란을 원정에서 상대하는 이번 10월 소집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3일 소속팀 경기를 치른 손흥민, 황의조, 김민재는 시리아전 이틀 전인 5일 오후 파주NFC에 도착했다. 6일 한 차례 훈련으로 컨디션을 겨우 조절한 뒤 시리아전에 나서야 한다. 

손흥민이나 황의조, 김민재의 투입 방식으로 ‘일단 선발’이 아닌 후반 이른 시점의 투입 같은 형태로 바꾸는 것을 고민할 이유가 충분한 상황이다. 김민재도 지난 9월 2연전은 잘 이겨냈지만, 이번에는 소속팀 페네르바체에서 7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하고 온 상태다. 몸이 받는 부하가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이번 10월에는 시리아전을 치른 뒤 이란으로 장거리 원정까지 가야 한다. 대한축구협회가 전세기를 동원하기로 결정하며 이동 시간은 상당히 줄었지만, 그래도 9월보다 난이도가 더 높은 일정이다. 

벤투 감독은 10월 소집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장거리 이동을 하는 유럽파의 컨디션 관리에 대해 “선수와 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함께 성취해야 할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고의 선수들과 최선으로 경기에 임할 것이다”라는 원칙적인 내용의 답변을 했다. 선수의 활용 방식을 미리 얘기하는 것은 전력 노출이 될 수 있으니 디테일한 내용은 굳이 외부에 공유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벤투 감독과 팀 스태프가 최선의 활용 방식과 회복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리아전을 하루 앞두고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손흥민 선발 출전을 단호하게 예고했다. 평소의 벤투 감독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가 부임한 뒤 손흥민은 소집되면 거의 다 선발 출전이었으니 그 방식이 크게 놀랄 점은 아니었다. 오히려 언론과 팬, 상대에게 보란 듯이 언급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벤투 감독의 화법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벤투 감독 선임 후 손흥민의 기용 방식을 보면 저 발언이 차라리 연막이길 기대해 보고 싶을 정도다. 벤투호에서 손흥민은 24경기에 소집됐고, 그 중 18경기를 풀타임 소화했다. 풀타임이 아닌 6경기 중 2018년의 코스타리카전과 2019년 아시안컵 중국전은 각각 83분과 89분을 소화, 풀타임에 준했다. 2019년 조지아와의 평가전 때 61분을 뛰고, 스리랑카과의 월드컵 2차 예선은 6-0으로 앞선 62분 시점에 나왔다. 

교체 투입 형태는 없었다. 6명의 선수를 교체할 수 있는 친선전조차 교체카드를 다 활용하지 않고 손흥민이 풀타임으로 뛴 경우도 다수였다. 손흥민이 완전히 휴식을 취한 것은 4일 간격으로 3연전을 치렀던 지난 5월 월드컵 2차 예선 일정 중 스리랑카전이 유일했다. 나머지 1경기는 앞선 언급한 부상으로 명단에서 아예 제외된 9월 레바논전이다. 

코로나 변수로 인한 이동의 피로 누적이 커지고, 소속팀 토트넘에서의 의존도 역시 높아진 최근에 와서야 손흥민은 A대표팀 경기에서 이탈했다. 손흥민의 결장은 좋은 신호가 아니다. 그래서 아시아 최고의 선수, 월드클래스에 도달한 선수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더 잘 활용할 것인가의 고민도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어떤 경기에서는 손흥민이 선발이 아닌 슈퍼 서브로도 가동돼야 한다. 

가깝게는 지난 9월 우리의 상대였던 이라크는 그런 방식을 택했다. 손흥민과 같은 날 입국한 모하나드 알리와 저스틴 메람을 후반 막판에 투입해 마지막 카운터에 활용했다. 그 방식이 결과를 낸 것은 아니었지만 움츠렸다가 후반 중반부터 빠른 공격 전환을 시도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계산에 부합하는 기용 형태였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손흥민 없이 치렀던 레바논전의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황희찬, 이동경, 권창훈 등이 충분히 각자의 방식으로 손흥민 없이도 최종예선 레벨에서 공격적으로 경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동준, 나상호, 송민규, 정우영 등도 마찬가지다. 시리아를 쉽게 보는 것이 아닌, 우리가 더 전력을 기울어야 하는 이란 원정에 손실이 발생하지 않게끔 대비하는 차원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손흥민을 1차전으로 봉쇄하는데 수비 전술을 집중하는 상대팀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 게다가 손흥민은 후반 45분 가량 뛰어도 충분히 차이를 보여줄 능력도 지녔다.

손흥민의 출전 시간을 위한 고민은 소속팀 토트넘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 우리의 국가대표 손흥민을 더 오랜 시간 잘 활용하기 위한 시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장 최종예선 한 경기가 살얼음판이 벤투 감독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대표팀의 근시일과 먼 미래, 모두를 위한 전략적 선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대표팀과 선수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교집합 지점을 찾어야 한다. 이것은 같은 일정으로 이번 소집에 임하는 황의조와 김민재, 그리고 향후 대표팀의 주축이 될 다른 유럽파나 해외파도 마찬가지다. 

사진=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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