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2021시즌 K리그1의 판도가 흥미롭다. 전반기에 ‘양강’ 울산현대와 전북현대를 위협하던 수원삼성과 대구FC가 후반기 부진에 빠졌지만, 그로 인해 파이널A 경쟁이 치열해졌다. 최근 기업구단 중심의 리그 판세를 경쟁력 있는 시민구단들이 무너트리고 있는데 올 시즌 후반기에는 수원FC와 인천유나이티드가 그 주인공으로 올라섰다. 

수원FC와 인천은 25일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1 27라운드에서 나란히 승리를 거뒀다. 수원FC는 수원더비에서 잭슨, 이영재, 양동현의 연속 골로 3-0 완승을 거뒀다. 인천도 홈에서 송시우, 아길라르의 골로 대구를 2-0으로 제압했다. 이 승리로 수원FC(37점)는 3위, 인천(36점)은 4위로 올라섰다. 전반기에 양강 구도를 위협하던 두 팀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최근 간판 골잡이인 라스와 무고사의 득점 기세가 꺾였는데도 그걸 극복하며 ‘원맨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승리였다. 

시즌 시작할 때만 해도 수원FC와 인천은 광주FC, 성남FC와 함께 강등권에 가장 많이 언급된 팀들이었다. 먼저 치고 나간 쪽은 인천이었다. 생존왕 타이틀이 지긋지긋하다던 인천은 지난해 또 한번의 극적인 잔류를 만든 조성환 감독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며 차곡차곡 승점을 쌓아갔다. 수비 불안으로 전반기에 헤매던 수원FC는 5월(3승 2무 2패)을 기점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후반기 최고의 기세는 두 팀의 차지다. 나란히 5승 1무 1패를 기록 중이다. 울산(4승 2무 1패), 전북(4승 1무 1패)보다 더 많은 승점을 쌓았다. 수원과 대구가 후반기 무승에 그치며 급격한 추락을 시작하고, 제주유나이티드와 FC서울 등이 장기 부진의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 순위표에서 급격히 치고 올라왔다. 지난 8월 8일 23라운드에서는 인천과 수원FC가 맞대결을 펼쳤는데 90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의 수준 높은 경기 끝에 0-0으로 비겼다. 

지난 4월 초 수원시축구협회가 수원FC를 둘러싼 잇단 오심에 항의하며 사용한 ‘잠재적 강등 라이벌’이라는 표현은 최근 들어 180도 다른 방향으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수원시축구협회는 성남, 인천, 광주 등과의 경기에서 잇달아 오심 논란이 벌어진 데 항의하며 그런 표현을 썼고,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잠강라’라는 약자로 조롱이 됐다. 그런데 수원FC와 인천이 후반기 놀라운 상승세로 리그 판도를 흔들면서 이제 ‘잠강라’는 '잠재적 강호 라이벌'로 의미가 바뀌고 있다. 

수원FC와 인천의 상승세에는 공통 분모가 많다. 일단은 베테랑 중심의 영입으로 스쿼드를 재건한 점이다. 승격한 수원FC는 안병준, 마사, 이한샘 등 승격 주역들과 대거 작별했다. 그 자리를 양동현, 박주호, 김상원 등으로 메웠는데 결과적으로 팀의 레벨이 더 올라갔다. 인천은 김광석, 오반석, 오재석 등 수비라인에 베테랑을 집중시켰는데, 조성환 감독이 원한 후방 안정성이 올라가며 꾸준한 승점을 쌓았다. 최근 베테랑들과 작별하는 K리그의 분위기와 역행하는 선택이 오히려 대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두 팀이 전반기, 혹은 5월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여름이적시장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건강한 내부 경쟁과 긴장감을 조성한 것은 후반기 성공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인천은 겨울이적시장의 기조를 이어가며 정혁, 김창수, 강민수를 데려와 주요 포지션을 더 두텁게 만들었다. 수원FC는 잭슨, 타르델리, 김수범, 김동우 등을 영입했는데 잭슨은 적응기간도 필요 없이 수비의 기둥이 됐다. 

감독의 역할도 눈에 띈다. 김도균 수원FC 감독은 젊은 감독답지 않은 결단력을 중요한 순간마다 발휘했다. 라스를 무결점 공격수로 변신시킨 부분도 눈에 띈다. 전반기에 은근한 자극과 칭찬을 번갈아 가며 투쟁심을 끌어냈다. 전술적으로도 후반기 들어 수비형 미드필더 김건웅을 내려서 중심에 세운 3백으로 전환하며 전반기의 문제점이었던 수비 밸런스를 해소했다. 

조성환 감독은 제주 시절 강등의 아픔을 딛고 완벽히 일어섰다. 제주 감독 시절부터 유명했던 냉철한 지적과 따뜻한 스킨십을 고루 섞은 리더십은 인천의 슬로우 스타터 기질 뒤에 가려져 있던 패배주의를 완벽히 날렸다. 새 시즌을 준비하며 스쿼드 구성 못지 않게 의무팀을 비롯한 선수 지원 시스템을 확 바꾼 선택은 팀 관리 면에서 빛났다. 신인 박창환과 2년차 구본철을 뚝심 있게 기용하며 약점이었던 U22룰도 해결했다. 터지지 않던 만년 유망주 김현의 사용법까지 제시하며 큰 그림 그리기와 디테일에 모두 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수뇌부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지도자와 행정가를 두루 거친 김호곤 수원FC 단장은 승격에 이어 파이널A 진출 가능성까지 높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시대를 열고 있다. 축구와 전혀 연관 없던 사업가 출신인 전달수 인천 대표이사는 전문성은 조성환 감독과 임중용 전력강화실장에게 넘기면서 대외적인 업무와 지원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강등권으로 꼽히던 두 팀은 이젠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 가능성을 넘보는 위치까지 왔다. 리그 3위까지 내년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얻지만, 선두 울산이 FA컵 4강에 진출해 있어서 우승 시에는 4위까지 챔피언스리그에 나설 수 있다. 역대 시민구단이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것은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 2002년), 성남FC(2015년), 경남FC(2019년), 대구FC(2019년) 네팀뿐이다. 시민구단 2개 팀이 동시에 챔피언스리그에 나선 경우는 2019년 경남, 대구가 유일하다. 

주말 열리는 28라운드는 또 한번의 중요한 도전이다. 주말에 나란히 양강에 도전한다. 수원FC는 2위 전북과의 원정 경기를, 인천은 1위 울산과의 원정 경기를 앞두고 있다. 후반기 기세를 본다면 홈팀들의 우세를 쉽게 점칠 수 없다. 수원FC는 자가격리 여파에 시달렸다고 해도 이미 전북을 홈에서 1-0으로 꺾은 바 있다. 인천도 울산과의 가장 최근 맞대결에서는 0-0으로 비겼다. 울산과 전북의 스쿼드가 리그 내에서 넘기 힘든 수준이지만 수원FC와 인천 모두 이제 스스로가 잠재적 강팀이 아닌, 당당한 강팀임을 인식하고 자신감 있게 덤빈다면 결과는 예측 불가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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