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2021시즌, 이청용은 울산 현대의 주장으로 선임됐다. 새롭게 부임한 홍명보 감독은 부드러운 리더십과 풍부한 경험을 갖춘 이청용이 팀을 잘 이끌어 주리라 믿었다.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프런트 사이의 소통을 책임지며 가교 역할을 매끄럽게 해 내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청용의 경기력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3월 중순 훈련 중 입은 늑골 부상이 변수가 됐다. 회복되던 찰나에 2차 부상으로 결국 이청용은 4월을 통째로 날리며 2개월을 결장했다. 경기 감각을 찾는 데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사이 울산의 2선과 측면 경쟁 구도는 크게 변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시즌부터 아시아 최고 레벨의 2선 공격진 갖췄지만 올해는 새로 가세한 이동준과 바코가 시즌 초반부터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 거기에 주전으로 손색없는 22세 이하 카드 김민준은 착실히 공격포인트를 쌓는 중이다. 중앙에는 이동경, 윤빛가람, 고명진의 경쟁이 치열했다. 부상에서 돌아온 이청용의 자리가 명확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선발 출전보다 교체로 나서는 빈도가 늘었다. 25라운드까지 이청용이 선발로 나선 리그 경기는 포항 원정(3월 13일)과 서울 원정(7월 31일) 두 경기에 불과했다. 12경기는 교체 출전이었다. 컨디션과 경기 감각이 돌아왔음에도 주장을 선발로 내세울 수 없는 상황에 홍명보 감독의 고민도 컸지만, 22세 이하 카드를 위한 현실적 전략도 외면할 수 없었다. 리그 최고의 윙어라는 평을 받는 이동준도 선발을 장담하지 못하는 팀 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청용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팀을 이끌었다. 교체 투입 시에도 경기 상황에 따른 자신의 역할에 100% 집중했다. 홍명보 감독은 “올림픽 멤버들이 복귀한 뒤 무한 경쟁 체제를 선언했다. 선수 개개인의 경기 출전에 대한 갈망이나 스트레스가 클 것이다”라고 말한 뒤 “감독으로서 이청용이 가장 걸렸다. 주장은 그라운드 밖에서의 역할도 있지만, 안에서 보여주는 게 제일 크다는 걸 안다. 여러 상황을 보며 타이밍을 기다리는 동안 이청용이 차분하게 다른 선수들을 다독였다”며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역할을 칭찬했다. 

최근에는 이청용이 홍명보 감독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수원FC와의 홈 경기에서 2-5로 충격패를 당한 뒤, 그리고 제주 원정에서 2-2로 비긴 뒤였다. 울산은 후반기 시작 후 5경기에서 2승 2무 1패에 그치며 전북에게 맹추격 당했다. 홍명보 감독은 “올 시즌 경기 후에 간단한 메시지를 꾸준히 주고받고 있었다. 최근 팀이 맞이한 상황에 이청용 스스로가 느낀 바가 컸는지 긴 메시지가 왔다. 의미도 컸고, 본인이 생각하는 문제점을 공유해줘서 감독 입장에선 고마움이 컸다”고 말했다. 

이청용은 베테랑들이 더 역할을 해줄 시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라운드 위에서 상대보다 더 간절하게 한발 더 뛸 수 있도록 선수들을 이끌어 보겠다고 홍명보 감독에게 다짐했다. 그 다짐에는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이 가장 컸다. 

홍명보 감독은 제주전이 끝난 뒤 선수단에 이틀 휴가를 줬다. 바로 울산에 돌아오지 말고 휴식을 취하며 이어지는 격전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라 앉히라는 의미였다. 홍명보 감독 본인도 제주전 무승부 후 냉정하게 상황을 돌아봤다. 2경기를 덜 치른 전북이 승점 2점 차로 추격해 오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이청용 선발 카드를 반전을 위해 다시 꺼내 들었다. 

수원과의 26라운드 홈 경기는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때마침 전북이 성남 원정에서 비기며 추격에 제동이 걸렸다. 다시 도망갈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후반기 심각한 부진에 빠진 원정팀 수원도 간절했다. 전반 14분 터진 선제골은 페널티킥 기회를 얻은 수원의 차지였다. 

전반 38분 울산의 동점골이 터졌다. 빠른 좌우 연속 공격 후 설영우가 뒤로 내 준 공을 이청용이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실점 후 곧바로 맞은 절호의 찬스는 놓쳤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만회한 득점이었다.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후반 37분 이청용이 클래스를 보여줬다. 바코를 거쳐 넘어 온 공을 페널티박스 안 밀집 상황에서 완벽한 터치를 통한 트래핑 한번으로 수원 수비진을 벗겨냈다. 이어진 왼발 발리로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프리미어리그 볼튼 시절 곧잘 보여주던 환상적인 플레이였다. 울산은 기세를 업고 이동준의 쐐기골까지 더해 3-1 역전승을 거뒀다. 

올 시즌 리그에서의 1호 골에 이어 멀티골까지 기록한 이청용은 중요한 순간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동시에 홍명보 감독에게 보낸 메시지에 담았던 약속도 그라운드 위에서 솔선수범하며 지켰다. 

경기 후 이청용은 “밖에서는 멋진 골이라고 하지만 내겐 간절한 마음이 담긴 골이었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그 간절함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홍명보 감독은 “역시 우리의 강력한 리더다”라며 경기 중 찾아온 개인과 팀의 위기를 극복해 준 선수에게 찬사를 보냈다. 

지난 2년 연속 우승을 눈 앞에서 놓친 울산은 위닝 멘탈리티 부족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했다. 정상에 서기 위한 간절함, 그리고 경쟁에서 밀려도 팀의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 선수단 전체의 태도가 전북보다 아쉽다는 지적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취임 후 일성에서 “울산만의 끈끈하고 강력한 팀 문화를 완성시키는 게 먼저다. 그래야 팀의 염원인 리그 우승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과정을 주장 이청용이 선봉에서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