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케인(잉글랜드 대표팀). 게티이미지코리아
해리 케인(잉글랜드 대표팀).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역대 가장 화끈한 경기가 이어지고 있는 유로2020 대회에서 기대에 못미친 첫 경기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D조 2차전 경기였다. 역사적 라이벌이 유로1996 대회 이후 25년 만에 본선에서 맞붙는다는 스토리로 화제를 모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

잉글랜드는 19일 새벽(한국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스코틀랜드와 득점 없이 비겼다. 크로아티아와 1차전 1-0 승리로 16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으나 사상 첫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라는 기대치에 비해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였다.

잉글랜드는 크로아티아를 꺾은 1차전 선발 명단에서 좌우 풀백을 교체했다. 카일 워커 대신 리스 제임스, 키어런 트리피어 대신 루크 쇼를 배치했다. 둘은 보다 공격적인 성향의 풀백이다. 스코틀랜드가 체코전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5백 수비를 구사하기에 공격 숫자를 많이 두기 위한 포석으로 보였다.

잉글랜드 공격은 해리 케인이 최전방에 서고 필 포든과 라힘 스털링, 메이슨 마운트가 2선에 배치되는 화려한 구성이다. 막상 경기 중에는 마운트가 캘빈 필립스의 옆으로 내려와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처럼 움직였다.

뒤로 내려갔다가 앞으로 침투하면서 스코틀랜드의 압박 라인을 흔들기 위한 전략이었으나 이 과정에서 수비 가담 빈도도 늘어 체력 소모도 커졌다. 수중전이었기 때문에 선수들은 더 지쳤다. 무엇보다 2020-2021시즌 첼시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치르면서 누적된 피로로 활력이 부족하기도 했다. 

유럽 축구 연맹 공식 경기 리포트 중 평균 포지션
유럽 축구 연맹 공식 경기 리포트 중 평균 포지션

좌우 풀백의 전진으로 스털링과 포든, 케인이 근거리에서 공을 주고 받으며 상대 지역을 누빌 것이라는 기대도 적용되지 못했다. 평균 포지션 그래픽에서 확인할 수 있듯 쇼와 제임스의 위치는 오히려 스코틀랜드의 좌우 윙백 앤드류 로버트슨, 스티븐 오도넬 보다 낮았다. 

로버트슨이 줄기차게 크로스 패스를 시도하고 오도넬이 잉글랜드 문전까지 진입해 슈팅할 정도로 공격에 가담했으나 쇼와 제임스는 높이 올라가지 않았다. 수비 안정에 중점을 둔 플레이를 했다.

포든은 몇 차례 번뜩이는 볼 관리 능력을 보였으나 스코틀랜드의 이중 삼중 압박을 결국 뚫지 못했다. 스털링은 무의미한 개인 돌파로 기회를 허비했다. 그러는 사이 케인은 철저히 고립됐다. 케인은 크로아티아와 경기에서 2선으로 빠져 전방 공간을 만들어줘 스털링의 결승골에 간접 기여했으나 두 경기 연속 각각 1회의 슈팅 시도, 유효 슈팅 0개에 그치며 기회를 잡지 못했다.

스털링과 포든, 케인의 공격 삼인조는 유기성을 보이지 못했다. 경기 막판까지 득점을 노린 잉글랜드는 스콧 맥토미니의 육탄 방어에 골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슈팅 숫자는 11대9로 오히려 스코틀랜드가 많았다. 전반 11분 코너킥 상황에서 존 스톤스가 시도한 헤더 슈팅이 골 포스트를 때린 장면 외에 잉글랜드에 확실한 득점 기회는 없었다.

반대로 스코틀랜드는 전반 30분 오도넬의 발리 슈팅이 조던 픽포드의 선방에 막혀 아슬아슬하게 무산됐고, 후반 17분 린든 다이크스의 발리 슈팅을 골 라인 앞에서 제임스가 머리로 걷어내는 등 득점에 근접한 기회를 두 차례나 만들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후반 18분 포든을 빼고 잭 그릴리시, 후반 29분 케인을 빼고 마커스 래시포드를 투입했으나 공격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포든이 빠지자 탈압박이 둔화됐고, 케인이 빠지면서 공간을 만드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벤치에 제이든 산초와 같은 테크니션, 도미닉 칼버트 르윈이라는 타깃형 공격수를 두고도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전술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전 경기장에  입장하는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단. 게티이미지코리아
스코틀랜드전 경기장에 입장하는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단.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마지막에 도박을 걸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순간에 틀이 흐트러지면 질 수도 있다. 공정한 점수로 끝났다"며 보수적이었던 경기 운영에 대해 설명했다. 기세 등등했던 것은 스티브 클라크 스코틀랜드 대표팀 감독이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 우리는 공을 잡을 때마다 기회를 만들었다"고 했다.

등번호 10번을 달고 풀타임을 소화한 스털링은 함량 미달로 보였다. 래시포드는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고 그릴리시는 따로 놀았다.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두고도 잉글랜드 대표팀은 웸블리 경기장에서 대회 최악의 졸전을 펼쳤다. 아직 조별리그에 불과하지만 우승후보로 꼽히는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포르투갈과 비교하면 경기력이 부실하다.

잉글랜드는 23일 새벽 4시에 체코와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 이겨야 1위로 16강에 오를 수 있다. 스코틀랜드도 크로아티아를 꺾으면 3위로 16강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노릴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D조 1위 팀은 죽음의 F조를 2위로 통과한 팀을 만난다. 프랑스, 포르투갈 중 한 팀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잉글랜드는 E조 2위를 만날 수 있는 D조 2위가 되는 것을 선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대회에 임한다면 우승은 요원하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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