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과의 계약 연장을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발표한 한국영. 한국프로축구연맹
강원과의 계약 연장을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발표한 한국영. 한국프로축구연맹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내 재능을 사우스비치로 가져간다.” 

2010년 NBA의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생방송 중인 TV쇼에서 고향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떠나 마이애미 히트로의 이적을 공식 선언했다. ‘디시전 쇼(The Decision Show)’로 불리운 이 방송은 좋든, 나쁘든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최고의 선수가 자신의 행선지를 두고 미국 전역의 눈길을 모은 장면은 스포츠 콘텐츠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계약이라는 민감할 수 있는 영역까지 콘텐츠라는 사고로 전환시키는 것이 미국 스포츠가 지닌 탁월한 상업적 감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유럽에서도 앙투안 그리즈만이 2018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최근 K리그에서도 ‘디시전 쇼’가 벌어졌다. 한국영은 지난 22일 소속팀인 강원FC의 전지훈련지인 부산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구단 공식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자신의 재능을 강원을 위해 계속 바칠 것이라고 선언했다. 2021년을 끝으로 강원과의 기존 계약이 끝나는 한국영은 3년을 연장하며 2024년까지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음을 알렸다. 방송으로 발표한 뒤 강원 구단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계약 연장을 알렸다. 기존의 구단->미디어->팬 순으로 알려지던 계약 발표의 흐름을 뒤집은 시도기도 했다. 

팀 동료이자 각급 대표팀에서부터 함께 한 윤석영이 진행을 맡은 방송에서 한국영은 계약과 관련한 발표뿐만 아니라 팬들의 다양한 질문에도 답했다. 방송 중에는 미국식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에 누구보다 깊은 인식을 갖고 있는 이영표 대표이사가 전화 통화로 합세해 재계약 배경을 소개했다. 그는 “한국영은 강원의 레전드가 되어야 하고, 팀의 뿌리가 될 수 있는 선수다”라고 말했다. 

한국영의 디시전 쇼는 강원이 핵심 선수를 지킬 수 있다는 대외적 선언이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한국영의 디시전 쇼는 강원이 핵심 선수를 지킬 수 있다는 대외적 선언이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이번 한국영의 디시전 쇼는 강원이 ‘우리도 핵심 선수를 지킬 수 있다’는 대외적 선언과 같았다. 강원은 선수 인건비에서 지난 시즌 K리그1 9위를 기록했다. 실제 시도민구단은 대부분 자금력이 우위에 있는 국내외의 팀들이 오퍼를 보내면 핵심 선수를 지키기 어려웠다. 강원 역시 작년 여름 팀의 프랜차이즈였던 김오규를 제주로, 이번 겨울 팬들이 강원의 미래로 여기던 김지현, 이현식을 각각 울산과 대전으로 보내며 시도민구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김대원의 깜짝 영입으로 흐름을 바꿨고, 한국영의 재계약으로 팀의 핵심 선수를 지키고 더 나아가 미래가 될 수 있는 선수도 영입할 수 있음을 홍보했다. 이번 겨울 한국영은 이적 시장의 주요 타깃이었다. 제주 유나이티드는 실질적인 이적료까지 제시하며 강력한 러브콜을 보냈다. 울산과 전북도 중원 보강을 위한 우선 리스트에 올려 놓은 선수였다. 일본과 중동에서도 영입 의사를 타진했다. 

그런 도전을 차단하고 강원이 장기 계약으로 잡은 것은 기량과 가치를 증명하면 함께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영표 대표이사 부임 후 한층 속도전을 내고 있는 축구전용구장 건립은 강원이라는 팀의 전반적 수준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모멘텀으로 여겨진다. 구단의 수익 상승을 통한 예산 확대가 가능해지는데, 그에 앞서 한국영과의 재계약은 좋은 인프라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스쿼드를 위한 방어 전략을 확실히 대외적으로 홍보했다. 한국영을 대체 불가한 절대적 가치의 선수로 규정했던 김병수 감독 역시 구단에 한층 신뢰를 갖게 됐다.

전용경기장을 통해 구단 운영의 큰 모멘텀을 준비하는 강원은 스쿼드 방어전을 보여줬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전용경기장을 통해 구단 운영의 큰 모멘텀을 준비하는 강원은 스쿼드 방어전을 보여줬다. 한국프로축구연맹

팬, 선수에게 준 심리적 안정 효과도 크다. 핵심 선수를 팔아서 구단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팬들의 불안 심리도 상당 부분 해소됐다. 겨울을 나기 위한 기둥을 세운다고 주춧돌을 빼던 시도민구단의 아이러니를 탈피했다. 이영표 대표이사가 취임 후 강조한, 강원FC라는 이름에 아이덴티티가 돼 줄 선수를 확보하며 시즌을 앞두고 팬심을 결집시키고 자부심을 높여줬다. 

선수들도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을 이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재계약을 통해서도 받을 수 있다는 데 인식 변화를 가질 만하다. 큰 팀으로 가기 위한 개인의 퍼포먼스 증명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팀에 대한 애착과 헌신이 시도민구단에서도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걸 한국영의 디시전 쇼가 알렸다.

한국영 개인의 스토리텔링도 한층 풍부해졌다. 특정 프로팀 유스 출신이 아니고, 해외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다 보니 K리그 내에서 확고한 뿌리를 내렸다는 이미지가 없었지만, 이번 재계약으로 강원을 상징하는 선수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부상으로 축구 인생의 위기를 맞았을 때 믿음을 준 강원과의 신뢰를 이어가면서 선수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팀과 함께 하는 발전을 택했다는 로맨스도 쓰게 됐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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