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달성 후 팀 동료인 야마네 미키 선수와 함께. 정성룡 제공
더블 달성 후 팀 동료인 야마네 미키 선수와 함께. 정성룡 제공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2020년 정성룡은 또 다시 일본 축구 정상에, 그것도 두 차례 섰다. 그가 몸 담고 있는 가와사키프론탈레는 2위 감바오사카에 무려 승점 18점이나 앞서며 압도적인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새해 첫 날에 열린 일왕배 결승전에서는 또 다시 감바를 누르며 시즌 더블(2관왕)에 성공했다. 

1955년 팀의 전신인 후지쓰축구클럽으로 탄생한 뒤 1부 리그에서 유독 우승과 인연이 없던 가와사키는 2017년 처음 1부 리그 정상을 밟았다. 그 경험을 시작으로 최근 4년 동안 리그 3회 우승, FA컵, 리그컵, 슈퍼컵 각 1회 우승에 성공하며 명실상부 J리그 최고의 팀이 됐다. 

그 시점은 골키퍼 정성룡이 팀 최초의 아시아쿼터(2006년부터 2010년까지 정대세가 뛰었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의무교육을 이수한 선수를 인정하는 쿼터에 해당)로 팀에 합류한 것과 맞물린다. 2016년 정성룡은 브라질 국적 외국인 선수만 영입됐던 가와사키에 최초의 비(非) 브라질 선수로 합류했다. 입단 첫해 가와사키는 J리그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2017년과 2018년 2연속 제패에 성공했다. 정성룡은 부동의 주전 골키퍼로 골문을 지키며 팀이 열망하던 리그 정복을 뒷받침했다. 매년 계약을 갱신한 그는 이번 더블 달성 후에도 기량을 인정받아 재계약에 성공, 2021년에도 가와사키에서 뛰게 된다. 

2018년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한번 리그 베스트11에도 이름을 올렸다. 국내에서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전후로 “기량 부족의 무기력한 선수”라는 이미지가 프레임처럼 박혔지만, 일본에서는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현역 국가대표 골키퍼인 김승규(가시와 레이솔)를 비롯해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권순태(가시마 앤틀러스) 등이 여전히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는 무대라는 걸 감안하면 정성룡의 기량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비교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지난 17일 국내에서 자가격리 중이던 정성룡과 전화 인터뷰를 가질 수 있었다. 인터뷰 진행 과정에서 가와사키 구단, 그리고 일본 현지 매니지먼트사인 JSP의 철저한 관리를 받고 있었다. 정성룡이 현재 J리그에서 어떤 위상을 누리는지 느낄 수 있었다.

- 2020년에도 어김없이 가와사키에서 트로피를 들었습니다. J리그 입성 후 5년 간 6개의 트로피를 들었고, 올해는 더블까지 달성했는데 소감을 부탁합니다. 

리그에서는 2017년과 2018년 2연속 우승 후 2년 만에 다시 우승을 했습니다. 더블은 예상 못했는데 가와사키 역사상 첫 일왕배 우승에 첫 2관왕이라는 점에서 영광이라 느낍니다. 해외 무대에 나와서 트로피를 든다는 경험은 늘 특별하죠. 리그에서는 저희 팀이 독주 분위기였지만 동기부여가 떨어지지 않았어요. 저도, 동료들도 매 경기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일본 현지에서는 기록 얘기도 많았어요. 리그에서 연승 행진이 길었거든요. 10연승을 기록하다 멈췄는데, 우리 스스로 그 기록을 깨보자고 선수들이 다짐했어요. 매번 더 좋은 결과를 내려는 마음가짐으로 임한 게 리그에서의 압도적인 우승, 그 다음에 일왕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가와사키는 리그 10연승 후 2경기에서 1무 1패를 기록했고, 이후 12연승을 달성했다). 우리 스스로를 이겨내야 한다는 목표보다 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올해의 가와사키는 강했습니다. 

- 더블 달성 후에는 가와사키와의 재계약이라는 선물도 있었습니다. J리그에서 6년차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감사하게도 관심을 가져 주신 팀들이 여럿 있었지만, 저와 가와사키 구단 모두 서로를 항상 원했기 때문에 재계약이라는 결과물로 이어졌어요. 저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죠. 처음 일본에 올 때도 손을 내밀어 준 팀이고, 이렇게 매년 저를 믿어주는 것에 큰 감사를 갖고 있습니다. 내년에 더 잘해야죠.

J리그 공식 발표 이미지
J리그 베스트11 공식 발표 이미지

- 2020년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2019년 J리그 입성 후 아라이 쇼타 선수와 가장 치열한 주전 경쟁을 했습니다. 정성룡의 퍼포먼스가 여전하다는 것부터 증명해야 했던 시즌인데, 어떤 각오로 준비했습니까?

코로나라는 긴급 사태로 인해 시즌이 연기되면서 개막전만 치르고 리그가 중단이 됐죠. 선수로서 축구가 정말 간절하다고 느낀 시간이었어요. 팬들이 있는 그라운드에 선다는 게 이렇게 소중한 일인지 다시 생각했고. 리그가 재개된다는 것만으로 감사함을 가졌죠. 올해는 코로나로 인한 우리모두의 위기를 다시 돌아본 시간이었고, 모두가 그걸 극복해 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가와사키에서 계속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위기의식을 갖고 매 경기 정말 최선을 다 했어요. 꾸준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가와사키에 처음 왔을 때보다 더 절실한 마음으로 노력했습니다. 매 시즌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하지만, 올해는 정말 제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그 노력을 유지했습니다. 그 결과 전 경기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었어요. 일본에 온 뒤 처음이었어요. 골키퍼 포지션이라고 해도 작은 부상이나 경고 누적 때문에 어려울 수 있는데 2020년에는 그걸 해냈다는 데 대한 자부심과 보람도 컸습니다. 

- 코로나로 인한 변수를 얘기했는데, 선수로서 운동하는 것도 어려웠겠지만 해외에서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도 신경이 쓰였겠습니다. 

일부러 가족들을 한국에 돌려보냈어요. 넷째 아민이가 너무 어리니까 아무래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모님도 일본에 와서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봐 주셨는데, 코로나로 인한 특수 상황이다 보니 비자 발급도 예전보다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아내와 장모님, 아이들은 다 한국으로 갔고요. 가족이 함께 있는 게 저에게는 힘이 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들이 많았던 작년입니다. 그런 부분을 이겨내는 것도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었죠. 아이들과 매일 영상 통화하는 게 낙이더라고요. 그 또한 코로나 시대가 만든 일상의 소중함이라고 생각합니다. 

- 올 시즌에도 특유의 미사일 킥으로 고바야시 유 선수의 득점을 도와 화제가 됐습니다. 30대 중반이 돼도 킥력이 여전한데 비결이 뭔가요?

공식적으로 어시스트가 기록됐는지는 모르겠어요(공식 기록상 어시스트는 아니었다). 골키퍼라면 좋은 킥을 지닌 선수들이 많죠. 저희 팀에서는 저의 그런 킥을 공격을 푸는 옵션으로 생각해준다는 게 비결인 거 같아요. 공격수들과 미리 호흡도 맞아야 가능한 거니까요. 유 선수의 득점은 연습 때 준비한 것이 시합 때 나온 케이스에요. 저희 팀 윙어인 카오루 미토마 선수 같은 경우는 발이 빠르니까 세트피스 수비 때나 상대 크로스 상황에서 제가 빠르게 나와서 캐칭하면 바로 킥을 때려 상대 수비와의 1대1 경합 상황을 붙이거든요. 팀 차원에서도 그런 장면이 하나 잘 걸리면 승부를 결정 짓는 중요한 득점이 되니까 저도 그런 부분까지 집중을 합니다. 

- 자신의 커리어 두번째 J리그 시즌 베스트11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최고의 골키퍼에 대한 인정인데 이 상에 어떤 의미를 개인적으로 부여하고 있습니까?

외국인 선수로서 개인상을 받는 것이 쉽지는 않죠. J리그의 경우 베스트 11 선정에서 선수들이 직접 투표하는 게 큰 영향을 미치는 걸로 아는데, 그런 부분에서 함께 하는 선수들이 인정해줘서 더 영광이고요. 과거 홍명보, 황선홍 감독님 같은 분들이 받았던 상이니까 더 값지더라고요. 그 시즌에 우승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베스트11까지 받을 줄은 몰랐어요. 

- 최근 일본에서 활약하던 한국 골키퍼들이 군입대 등의 문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예전만큼 한국인 골키퍼가 많지 않은데 여전히 선수들(김진현, 김승규, 권순태 등)의 경쟁력은 높다고 생각하나요? 

다른 국적의 선수들도 있지만, 역시 한국인 선수들의 존재감이 돋보여요. 외국인 선수라고 뛴다는 보장도 없고, 일본 선수들의 기술도 상당한데 팀 내 경쟁에서부터 이겨서 나가겠다는 한국인 특유의 강한 의지가 있다고 느껴요. J리그도 냉정한 곳이에요. 경쟁에서 못 이기면 도태되고, 혹독한 평가를 받으니까요. 작년에도 다들 최선을 다했다고 봐요.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후 많은 비판도 받았고, 대표팀과는 5년째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대표급 골키퍼들이 대거 건너와 있는 해외 무대에서는 최고의 골키퍼로 인정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네요. 

제가 일본에서 어떻게 경기하고 있는지 한국에 계신 분들이 보기 힘든 상황이죠. 대표팀에 가지 않으면 현재의 제 기량에 대한 평가는 진행되기 어렵습니다. 대표팀의 선택 부분은 현재 코칭스태프에서 바라보는 기준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항상 대표팀에 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고, 지금도 불러 주신다면 큰 영광과 책임감을 느낄 거예요. 그러나 가고 싶다고 갈 수 없는 자리라는 걸 너무 잘 알아요. 지금은 제가 속한 팀과 서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을 뿐이에요. 제 가족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 하고 있고요. 지금은 그것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운명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겠죠. 

- 과거 수원 삼성에서 함께 한 장호익 선수가 2019년 말 무릎 수술 후 재활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왔을 때 많은 도움과 조언을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도 부탁합니다. 

크게 해준 게 없어요. (웃음) 제가 어렸을 때 어깨 탈구로 인해 수술하고 재활을 한 적이 있어요. 재활의 과정이 힘들다는 걸 알지만, 그걸 잘 이겨내면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이 단단해진다고 생각해요. 호익이도 그랬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이겨내고 다시 운동장에 서면 더 강한 선수가 돼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어요. 힘들 때 쥐고 있던 고난을 힘을 줘 터트리고 나가야만 한다고 했어요. 저는 호익이가 이겨낼 줄 알았죠. 수원 시절 같이 팀에 있었던 선수는 아니었는데, 저하고 친한 친구(이강선 씨)가 연결을 해 줬고, 마침 또 수원 삼성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어서 도움을 줬을 뿐이에요. 무엇보다 축구계 후배니까 돕는 게 당연하죠.

- 일본에서 모든 트로피를 들었습니다. 가와사키는 지금 최고의 시대를 맞았고요. 남은 과제와 도전은 AFC 챔피언스리그일 것 같습니다. 2021년 챔피언스리그에서 어떤 결과를 기대합니까?

가와사키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죠. 쉽지 않은 무대라는 걸 잘 알고요. 저희가 노력을 더 해야 합니다. 챔피언스리그는 국제전이라 해외 원정을 치러야 하니까 변수가 많아요. 많은 경기를 소화하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하고요. 토너먼트 정상에 서는 건 때로는 운도 필요합니다. 올해는 잘 해 보고 싶습니다. 

정성룡(가와사키프론탈레). 게티이미지코리아
정성룡(가와사키프론탈레). 게티이미지코리아

 

- 2010년 성남일화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습니다. 선수 생활 중 다시 한번 아시아 정상을 밟고 싶을 텐데요?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클럽월드컵 출전의 경험은 정말 컸던 것 같아요. 다시 한번 그 경험을 해 보고 싶어요. 아시아 최고의 선수들, 그리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한번 더 겨뤄본다는 건 저도 그렇지만, 저희 가와사키 선수들 모두가 한번 경험하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일왕배 결승전을 끝으로 은퇴한 팀의 레전드 나카무라 겐고 선수를 보며 자신도 선수 생활의 멋진 피날레를 상상했을 것 같습니다. 가와사키의 레전드로 은퇴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마무리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하고 싶습니까?

‘당연히’라고 말할 수 있는 결론은 정해지지 않은 것 같아요. 미래는 모르는 문제입니다. 올 시즌이 끝나고 부상 등으로 갑자기 은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저를 대단한 선수로 포장하고 싶진 않아요. 저를 필요로 하는 팀에서 항상 최선을 다할 거고요. 거기서 선수 경력의 마지막을 맞는다면 그게 제 운명이 아닐까요? 저는 가와사키가 믿음을 주는 동안 계속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저희 가족과 함께 5년을 살았고, 이제 가와사키 시의 웬만한 곳은 네비게이션 도움 없이 운전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애착이 큰 곳입니다. 물론, 수원에 대한 애착은 좀 특별해요. 제가 있는 동안 우승을 못하고 왔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수원의 우승을 돕고 싶다는 꿈은 품고 있습니다. 일단 2021년부터 잘해야죠. 그러면 다음 스텝에서 또 좋은 선택과 도전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정성룡 제공, J리그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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