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귀포] 김정용 기자= 정운과 축구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눈 뒤 마무리하려다가 그 이야기가 나오고 말았다. 별 생각 없이 정운에게 공익근무요원 아니었냐고 하자, 정운은 순식간에 반박했다. “공익 아니에요. 전 상근 예비역이었어요. 뭔지 아시죠? 선배님 안녕하세요 XXXXX 예비군 중대입니다. 이번에 훈련 나오셔야 됩니다. 안 나오시면 고발되십니다. 저 그거 했어요.”

19일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제주유나이티드 클럽하우스에서 훈련 사이 휴식 중이던 정운을 만났다. 상근 예비역 시절의 이야기뿐 아니라 다가오는 시즌 스리백의 스토퍼로서 보여줄 기량에 대한 자신감까지, 축구에 대한 진지한 대화도 담겨 있다.

예비군 선배님들을 상대했던 설움

예비군 나오라는 전화를 하루 종일 돌려요. 받을 때까지 돌리고, 끝까지 안 받으면 통지서를 우편으로 보내고, 수령 안 하시면 직접 가요. 직접 가서 띵동 하고 드려야 하거든요.

상근 하면서 형들과 되게 많이 통화했어요. 한번은 누구한테 전화가 왔는데 이름을 물어보니까 김형일이라는 거에요. ‘여보세요? 훈련 통지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형 저 정운이에요.’ ‘? 니가 거기 왜 있냐? 운아 나 예비군 어떻게 해야 되니.’ 이거 실화예요. 그럴 때 사람 됨됨이가 보여요. 친절하게 받는 선배님도 있고 무시하는 선배님도 있거든요. 형일이 형은 확실히 친절했어요. 그리고 ()동현이 형, ()상운이 형 등에게 예비군 통지를 해 드렸죠.

야구선수도 많고 농구선수도 계셨어요. 그리고 코미디언 XXX 씨의 아내분을 늘 봤죠. 통지서 주러 가면 그 분은 안 계시고 아내분만 늘 계셨으니까. ‘띵동. 안녕하세요 XX 씨 댁이죠? 통지서에 사인 좀 해 주세요.’

맨날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방탄헬멧 나눠주고, 비 오면 우비 나눠주고, 민증 받아서 적고, 선배님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낮에 그 근무 하고 저녁에 훈련하고 일주일에 한 게임 뛰고. 그렇게 군 생활 했죠. 절 알아보는 분들은 많았죠. 다 남자니까 축구 좋아하는 분들은 이름표 보고 어? 정운? 혹시? 이러면서 종종 물어보죠. 축구 선수들은 잘 안 와요. 선수들은 원래 경기일정표를 내면 공식 연기가 가능해요.

돌아보면 어떻게 했나 싶어요. 어후. 사람 상대하는 것 말고도 여러 경험을 했죠. 제가 타자 쳐 볼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근데 거기서는 전용 사이트로 행정처리 다 하고, 엑셀도 한 번씩 만지고. 은퇴 후에 창업을 생각 중인데, 좋게 생각하면 상근 시절 사회생활을 많이 배웠죠.”

중앙수비수 변신을 위한 노력

원래 풀백이었고, 상근 가기 전에는 더 공격적인 윙백으로 변신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제대하고 돌아오니까 센터백이 됐어요. 작년 첫 경기만 윙백을 맡았고 두 번째 경기부터 줄곧 왼쪽 스토퍼를 봤죠. 처음 해 본 포지션이에요. 아무래도 우리 팀은 공격적이어야 하니까 남기일 감독님이 구상하신 것 같아요.

센터백 변신을 위해서 많이 노력했죠. 팀 훈련이 끝난 뒤 매번 30분 정도 추가 훈련을 했어요. 다음 경기 상대 팀 공격수 스타일에 맞게 훈련을 짜요. 그 공격수와 비슷한 우리 팀 후배가 저를 뚫고, 저는 막는 거죠. 만약 다음 경기에서 헤딩이 좋은 공격수를 막아야 한다면 크로스 해 주는 후배, 스트라이커 후배가 있고 제가 그걸 막는 훈련을 했어요? ? 후배들 괴롭힌 것 아니냐고요? 아니죠. 후배들도 훈련한 거잖아요. 어차피 후배들도 추가 훈련을 자주 해요.

시즌 막판 수원FC와 가진 경기가 대표적이죠. 작년 K리그2 최고 공격수였던 안병준 선수는 등진 뒤 돌아서는 플레이가 뛰어나요. 안병준과 라스에 대한 분석과 예비 훈련을 미리 해 뒀고, 홈에서 2-0 무실점 승리를 거뒀어요.”

한국에 없던 스타일의 스리백

윙백보다 스토퍼가 재미있어요. 오히려 공을 더 오래 다루거든요. 그리고 지금도 활동량이 많아요. 나름대로 전진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지표겠죠. 윙백으로 주로 나온 정우재 선수의 장점을 살려줬다고 생각하고요.

예전에 제 위치를 맡던 선수는 오반석(현 인천) 형이었는데 그 형은 전문 센터백, 저는 측면 수비수 출신이니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죠. 그만큼 조성환 감독님(현 인천) 시절과 남 감독님의 스리백도 달라요. 남 감독님은 뒤에서 공 돌리는 것과 미드필더에게 쉬운 패스 주는 걸 싫어하세요. 몰고 올라가라고 하시죠. 요즘 트렌드 스리백이라고 할 수 있죠. 한국에 이런 팀은 없었던 것 같아요. 소화해내기 위해서 라이프치히, 인테르밀란 같은 유럽 팀 경기를 주로 봤어요. 작년 동계훈련 때 기존 센터백들이 생소한 축구를 익히느라 애 많이 먹었죠.

저도 더 발전해야죠. 저도 이탈리아나 독일에서 스리백 소화하는 스토퍼들만큼 잘 하고 싶어요. 저도 과감한 전진 드리블이나 패스를 시도해 왔지만 어쨌든 작년에 어시스트는 하나도 없었어요. 이제 동료들도 제 스타일을 알고 발이 맞으니까, 어시스트 상황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동료에게 잔류를 권할 정도의 애사심

애정이요? 아유, 많이 생겼죠. 이제 여기가 너무 좋아요. 가족들도 이 도시와 팀을 좋아하고. 저는 항상 선수들에게 이만한 팀이 없다고 해요. 매년 연말마다 거취를 고민하는 선수가 생기잖아요. 저는 보통 남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요. 이번에도 서너 명 정도에게 말해준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제주도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사실 제주가 외딴 섬이라는 이미지가 있고 선수들이 꺼리기도 하는데, 그건 단점만 본 거고 장점도 많거든요. 군복무하면서 김포에 살아보니까 제주처럼 자연친화적인 생활과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운동환경이 없었어요. 몇몇 구단은 외부 간섭도 있는데 우리 팀은 그것도 없고요. 도시의 삶보다 스트레스도 적고요.”

백투백우승이 목표

감독님이 우승권을 목표로 잡으셨는데, 저도 가능할 것 같아요. 다른 K리그1 팀들 입장에서는 작년에 저희가 없었잖아요. 저희는 좀 다른 축구를 구사하니까 상대팀 입장에서는 까다롭지 않을까요. 영입은 잘 안 되고 있어서 많이들 걱정하지만 사실 우리 축구를 유지할 수 있다면 경쟁력은 충분해요. K리그2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제주 상대로는 안 돼 안 돼즉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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