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 울산현대 제공
홍명보 감독. 울산현대 제공
김상식 감독. 전북현대 제공
김상식 감독. 전북현대 제공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경쟁은 스포츠의 근간이다. 나 자신과의 절대적 경쟁에서 승리하고, 상대와의 경쟁에서 앞서가면 정상에 오른다. 그 한 자리를 놓고 펼치는 치열한 경쟁에 팬들은 상호 작용하며 흥행이라는 것이 벌어진다.

지난 2년 간 K리그에서 가장 뜨거웠던 경쟁 관계는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다. 전북의 독주 분위기였던 K리그1에서 울산은 우승 도전을 천명하며 스쿼드를 대폭 강화했다. 실제로 울산이 전북을 제치며 우승 가능성을 높인 때도 있었다. 그러나 2019년에는 최종전에서, 2020시즌에서는 2경기를 남겨 놓고 치른 맞대결에서 둘의 순위가 뒤바뀌며 트로피는 모두 전북의 차지가 됐다.

현대가라는 공통 분모로 엮이기도 하는 두 구단은 2021시즌을 앞두고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치열한 경쟁을 2년 간 주도한 모라이스 감독과 김도훈 감독이 나란히 물러나며 사령탑이 교체됐다. 전북은 김상식 수석코치의 내부 승진을 택했다. 울산은 행정가 생활을 하고 있던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2021년에도 가장 치열한 경쟁을 펼칠 예정이지만, 두 감독은 어떤 축구계 선후배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다. 홍명보 감독은 김상식 감독 특유의 사교성과 인간미를 늘 아낀다. 홍명보 감독을 ‘홍쌤’이라고 부르는 김상식 감독은 지인들에게 “홍쌤이 감독이라면 그 밑에서 계속 코치를 할 생각도 있을 정도로 존경하는 분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경쟁의 최전선에 선 감독이라는 위치에서 좋았던 관계와 교분이 깨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도 과거 축구인들이 보여주던 모습이다. 우승을 놓고 전면전을 펼쳐야 하는 두 팀 수장들의 생각은 어떨까? 취임식과 동계훈련 시작을 앞두고 홍명보와 김상식 감독이 만남을 갖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았다. 시작은 두 사람의 첫 인연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홍명보 감독(이하 홍): 시드니 올림픽 와일드카드로 언급될 때 대표팀에 합류했는데 그때 김상식 감독을 처음 만났던 것 같다. 나는 결국 부상으로 올림픽에는 못 갔는데, 그 때를 기점으로 우리 김 감독이 대표팀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지. 

김상식 감독(이하 김): 99년에 성남에 입단하고 프로에서 정신을 못 차리다가 시즌 말미에 부상자들이 계속 나와 故 차경복 감독님과 김학범 당시 수석코치님 눈에 들었죠. 그때는 FA컵을 시즌 말미에 몰아서 했는데 수비수로 계속 출전해서 성남 우승에 공헌했거든요. 그러면서 허정무 감독님이 주목하시고 대표팀에 불러주셨어요. 

홍: 그때 프로 신인이라 대표팀에 와서 어리버리하던 김 감독 모습이 기억나네. 약간 촌티도 나고 했는데 워낙 성실하고, 영리하니까 금방 꿰차더라. 일본에서 뛰던 때라 잘 몰랐는데 대표팀 생활하면서 좋은 선수고, 재미난 후배라는 걸 알게 됐지. 

김: 그 당시 홍쌤 카리스마는 더 대단했죠. 대표팀에 가서 처음 인사하고 몇달 지나서야 처음으로 말을 걸었어요. 미국에서 열린 북중미 골드컵 대회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 유니폼 갖고 선배님 방에 가서 부끄럽게 사인을 받았는데 요즘 표현으로 치면 스타들의 스타였던 거죠.

홍: 2002년 한일월드컵 후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2005년에 코치로 돌아와 보니 역시 예상대로 상식이가 주축이 돼 있었지. 

김: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어요. 2000년 12월에 도쿄국립경기장에서 한일전이 열렸고 그때 히딩크 감독님이 선임됐는데, 벤치에서 지휘는 박항서 당시 코치님이 하시고 히딩크 감독님은 관중석에서 관찰했습니다. 사실 그 날 저는 몸이 안 좋고, 배탈 증상이 있었는데 (김)태영이 형이 아프다고 해서 갑자기 선발로 들어가게 됐어요. 홍쌤이랑 같이 수비에 뛰었는데 15분 만에 제가 퇴장을 당했다죠.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하더니 2002년에 월드컵에 못 갔어요.

홍: 나도 그때 일본 선수한테 통짜(몸 전체가 깊숙하게 들어가는) 태클을 해서 퇴장 당할 뻔 했지. 

김: 딱딱한 선후배 사이를 완전히 턴 건 2006년 9월 이란전인데, 그때 백패스 실수로 실점을 허용하고 졌어요. 제 이름이 검색어 1위 찍고, 미니홈피 테러당하고 그랬습니다. 당시 홍쌤이 수석코치로 故 핌 베어벡 감독님을 보좌할 때인데 파주NFC로 돌아가니까 코치님이 방으로 따로 불렀어요. 캔맥주를 2개 꺼내시고는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고 위로해주시면서 긴 대화를 가졌어요. 많이 위축됐는데 큰 힘이 됐어요. 

홍: 대표팀 감독이 되고 2013년 10월에 FA컵 결승전을 보러 전주에 갔는데 전북이 승부차기에서 포항에 져서 준우승을 했거든요? 그날 군산 쪽에서 1박을 하고 올라가기로 했는데, 상식이가 동국이를 데리고 호텔로 오더라고. 우승을 놓쳐 기분이 안 좋았을 텐데 인사한다고 온 거였지. 당시 대표팀을 맡고, 흐트러진 팀 분위기를 잡아야 했던 상황이었는데 베테랑인 상식이가 선수 입장에서 이야기 많이 해 줘 도움이 됐죠. 그때 은퇴를 고민하던 것 같아 나도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줬고. 

■ K리그는 처음이라서, 감독은 처음이라서
홍명보 감독은 2016년 6월 중국의 항저우 뤼청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4년 만에 지도자로서 현장에 복귀했다. 각급 대표팀 감독과 해외(러시아 안지 마하치칼라 코치)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지만 정작 K리그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축구의 속성은 잘 알지만 K리그의 흐름, 그리고 선수 개개인의 특징 등에 대한 파악은 공백기만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김상식 감독은 99년 이후 줄곧 K리그 현장에 있었다. 은퇴 후 2014년 상반기에 유럽에 연수를 다녀온 것 외에는 선수와 코치로 K리그 흐름을 20년 넘게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처음 팀을 완전히 책임지는 초보 감독의 입장이다. 코치에서 감독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진입해야 한다. 그 부분에서 두 감독은 다르지만, 닮은 고민을 나눴다. 

홍: 요즘 선수들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니?

김: 감독과 선수의 관계를 사제 관계로 표현하는 건 옛말 같아요. 훈련 내용부터 선수들을 납득시키지 않으면 감독이 존중받거나, 장악력을 펼치기 어렵습니다. 이미 선수들 눈빛에서 느껴져요. 새로운 훈련을 하면 ‘음, 어디서 좀 보고 준비해서 왔네’ 하는 눈빛이에요. 저희가 선수 생활하던 때와는 다르게 유럽 축구도 수월하게 보고, 대표팀에 가서 동료들이 해외에서 어떤 훈련을 받는지 다 듣잖아요. 선수들이 기대하는 수준을 쫓아가지 못하면 곧바로 냉정한 평가를 받는 게 지금 감독들의 현실이에요. 

홍: 나도 2009년에 처음 감독을 맡으면서 90년생 선수들을 처음 만났는데 정말 세대 차이가 컸어. 그런데 이제 그 선수들이 다 중고참이고, 대표팀에서 은퇴하거나 베테랑이야. 울산도 선수단을 파악해 보니까 어린 선수들이 많던데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 경기장은 물론이고 훈련장이나, 생활에서의 언어 사용도 신중해야 하겠더라고. 미팅도 길게 가지 말고 짧고 명확하게, 선수들이 집중하고 코칭스태프를 존중할 수 있게 유도해야지. 전술적으로도 선수들의 눈높이를 맞춰줘야 해. 이번에 우리가 스페인에서 전술 코치를 데려오는 것도 내용과 트렌드를 최대한 잡기 위한 결정이거든. 내가 한참 각급 대표팀에서 쓰던 레퍼런스는 이미 과거완료형이니까 새롭게 준비하려고.

김: 코치를 오래 하다가 감독의 입장이 되면 어떤 부분이 가장 적응하기 힘들까요?

홍: 코치의 시야하고 감독의 시야는 확실히 다르지. 코치들은 자신의 영역이라는 게 있고 그 안에서 자기 몫을 완수하면 되는데 감독은 팀 전체를 넓게 봐야 하잖아. 결국 팀이라는 게 무수한 사람들의 상호 작용이 벌어지는데 작은 거 하나가 조직 전체를 흔든다고. 내가 김 감독한테 해 줄 조언은 하나야. 팀 내부의 불만과 안 좋은 점을 감독이 빨리 캐치해야 해. 팀 분위기가 경직되면 조직 안에서는 곪아 가는데 정작 감독만 그걸 못 보는 경우가 있다고. 코치도 그렇고 선수들도 그렇고 그런 부분에 문제 인식을 하면 적극적으로 감독에게 의견 개진을 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야지. 문제는 점점 확대 돼 가는데 감독이 안 좋은 얘기 듣기 싫다고 외면하고, 말 못하게 하면 나중에는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니까. 그런데 김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보면 눈치가 빠르고, 돌아가는 상황을 잘 파악하더라고. 문제가 없을 거 같아. 

김: 그래도 저희 팀은 다행인 게 최강희 감독님 시절부터 그런 문화가 잘 다져줘 있어요. 많이들 하는 얘기지만 경기 못 뛰는 선수들이 팀 분위기를 좌우한다고 하잖아요. 특히 베테랑들이 경기를 못 뛰는 상황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팀이 흔들리는데 작년 같은 경우도 동국이, 그리고 (최)철순이가 중심을 잡아줬어요.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철순이가 진짜 숨은 MVP였어요. 경기를 못 뛰는데도 항상 밝고, 진지한 모습으로 훈련에 임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경기에 나서도 자기 몫을 다 해줬거든요. 감독이 되면 저런 선수가 정말 고맙겠더라고요. 

홍: 철순이가 전북에서 뛴 지 몇 년이나 됐지? 10년 넘지 않았나?

김: 상무 다녀온 것 제외하면 13년이라더라고요. 저나 동국이보다 전북에 더 오래 있었어요. 

홍: 그렇지. 대표팀 감독 시절에 철순이를 볼 때는 기술이나 기량만 주목하고 보지만, 클럽팀 감독이라면 저런 선수를 가장 먼저 옆에 두고 싶을 거야. 전북의 히스토리를 알고, 어떤 방향으로 팀 문화를 이끌어 가야 하는 지 아는 선수. 울산 감독직을 수락하고 팀을 보니까 그런 선수가 없더라고. 베테랑은 많은데 팀에 5년 넘게 머문 선수가 없어. 코칭스태프 구성 때도 울산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지도자를 알아봤는데 거의 없거나, 이미 다른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어서 결국 이호한테 플레잉코치를 제안했지. 울산이 지난 2년간 과감하게 투자하며 전북과 경쟁하는 수준까지 올라온 건 박수를 쳐야 하는데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는 차이가 팀 문화나 분위기니까. 내가 있는 동안에는 그런 부분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숙제도 있어. 

■ 트로피 빼고는 의논하고 타협하며 K리그를 발전시키자
이 날 만남을 앞두고 두 감독은 많은 통화를 했다고 한다. 홍명보 감독은 코칭스태프를 채울 마지막 인물로 김상록 전북 스카우트 담당을 찜 했다. 김상식 감독에게 전화를 해서 김상록 스카우트를 데려오고 싶다고 솔직하게 요청했다. 새로운 코치진 구성을 이미 완료한 김상식 감독은 새 시즌에도 김상록 스카우트와 함께 갈 계획이었지만, 홍명보 감독의 연락을 받은 뒤 구단과 상의해 울산으로 보내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코칭스태프 1명이 오고 가는 문제에서도 신경전과 뒷말이 무수한 프로의 세계에서 두 감독은 적절한 타협을 택한 것이다. 앞으로 두 감독과 양 팀의 경쟁도 트로피를 들기 위해 펼치는 승부는 치열하겠지만, 리그와 그 구성원의 발전을 고민하는 일에서는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게 아니었을까?

홍: 김상록 코치 보내줘서 고맙다. 

김: 아시겠지만 상록이는 인품도 좋고, 열심히 일하는 타입이잖아요. 전북에서도 일 열심히 하고 좋은 평가가 있어서 계속 스카우트 영역에서 키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솔직히 지도자로 현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매력이 적다는 걸 알아요. 본인도 현장 코치에 더 애착이 있었고, 홍쌤이 오해 없게 직접 연락해서 요청하셨으니까 구단과 논의해서 보냈죠. 그래도 가기 전에 이번 겨울 저희 영입 리스트에 대한 보고는 다 하고 갔어요. 갈 때 울산 가서 홍쌤한테 그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웃음)

홍: 우리 선배님들 보면 안타까운 점이 그런 거지. 선수, 코치에 대한 욕심이나 경쟁 의식, 승부욕이 과해서 관계가 깨지는 일이 많아. 우리가 이겨야 하는 승부의 세계에서 계속 대결을 펼치지만 끝났으면 승복하고 다시 같은 축구인으로, 선후배의 관계로 돌아가 공존해야 하는 거지. 트로피를 가져오는 걸 양보할 생각은 없지만, 그런 과정의 끝에는 다 축구 발전을 고민해야 한다고 봐. 우리가 이 자리에 평생 있겠어? 이 위치에 있는 동안 축구를 최대한 발전시키고 성장시키고 후배들에게 넘겨줘야지. 

김: 저는 솔직히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전북이 탈락한 뒤에는 울산의 우승을 응원했어요. 같은 한국 팀이기도 하지만, 선배인 김도훈 감독님이 꼭 트로피를 들길 바랬죠. 작년에 도훈이 형도 정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시즌을 치렀지만, 저는 제가 몸 담은 팀이 성공할 수 있도록 경쟁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미안한 감정도 들더라고요. 울산과 도훈이 형이 좋은 마무리와 작별을 하는 걸 보며 저도 기분이 좋았어요. 

홍: 작년에 프로야구를 보니까 기아에 새로 온 외국인 감독(맷 윌리엄스)이 상대팀 홈을 처음 방문하면 그 팀 감독에게 와인을 선물하는 게 인상적이더라고. 경쟁하고, 이기는 건 중요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공존하는 다른 구성원을 존중한다는 표현이잖아. 거기에 또 상대팀 감독은 답례품을 준비하는 것도 보기 좋았어. 

김: 과거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주제 무리뉴 감독도 경기 때는 그렇게 으르렁거리며 싸워도 경기 후에는 퍼거슨 감독이 경기장에 있는 자기 집무실로 초대해서 와인 한잔 하며 축구 얘기했다고 하잖아요. K리그 22개 팀에 한 자리 밖에 없는 감독직인데 우리가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도 멋진 협력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홍쌤 오셨으니까 K리그가 더 멋진 모습으로 팬들에게 흥미를 줬으면 해요. 개막전 일정이 어떻게 나올 지는 모르는데, 전북으로 원정 오시면 제가 선물 준비하겠습니다. 고창에 복분자주가 유명한데 그걸로 할까요?

홍: 그러면 나는 김 감독 울산 오면 뭐 준비해야해?

김: 저희 가족은 부산 해운대에 살고 있거든요. 울산하고 가까우니까 휴가 때 해운대 한번 오시면 제가 맛있는 거 준비하겠습니다. 

홍: 그래, 올해 치열하게 멋지게 승부하자고. 울산 팬들이 리그 우승이 너무 간절하니까 트로피는 양보 못하지만 경기 후에는 내가 먼저 연락할게.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전북현대, 울산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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