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강릉] 유현태 기자= 2020시즌을 시작할 때 '병수볼'에 대한 기대는 최고로 치솟은 상태였다.

김병수 강원FC 감독은 2019년 세밀하고 빠른 패스를 중심에 둔 축구로 K리그 팬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임채민, 김승대, 고무열, 신세계, 김영빈 등 스타급 선수들이 대거 합류했다. 김 감독의 축구가 업그레이드될 것처럼 보였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확보를 다툴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강원이 받아든 결과는 시즌 초반 예상과 사뭇 다르다. 7위로 안정적으로 생존엔 성공했지만, 파이널B로 내려왔다. 내용에도 의문이 있다. 특유의 효율적인 패스워크가 잘 되지 않았다. '보기에 좋을 뿐 결과는 나쁘다'는 오래된 회의론도 여전했다.

지난 16일 ‘풋볼리스트’와 만난 김 감독은 이번 시즌을 냉정히 되짚었다. 지난해 보여줬던 축구를 기반으로 하지만, 조금 더 속도감 있고 공격적인 축구를 펼치려고 했다. 하지만 구상과 다르게 흘러가면서 어려운 시즌을 치렀다고 돌아봤다.

“작년, 재작년과 올해는 콘셉트가 달랐다. 예전엔 공을 갖고 수비를 펼친다는 생각이었다. 굉장히 대담한 방식이다. 공을 점유함으로써 상대에게 기회를 적게 주겠다는 의미였다. 올해는 공격을 좀 해보려고 했다. 헌데 돌파구를 찾는 게 좀 어려웠다. 어려운 점은 인지하고 있다. 무엇을 바꿔가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공격에 무게를 두기 위해 시즌 초반 포백을 썼다. 김 감독은 포메이션을 경기 콘셉트를 정하는 ‘축구의 기본’이라고 설명한다. 포백은 수비 숫자를 하나 덜 두는 대신 중원에 힘을 싣기 좋다. 공을 점유할 때 좌우 풀백이 전진과 동시에 중앙 쪽으로 좁혀서 서서 수비형 미드필더 한국영과 함께 뒤를 지켰다. 그리고 나머지 공격진에 배치된 5명은 좌우로 넓게 벌려 섰다. 선수 배치로 공간을 더 넓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쓰고자 하는 의도였다.

“올해도 포백을 시도했다. 스리백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스리백은 사실상 파이브백이다. 4명과 5명의 차이는 분명하다. 좌우로 책임질 수 있는 거리를 맡으니까 안정적이다. 수비할 때는 측면 공간을 적절하게 커버할 수 있으니 파이브백이 더 쉽다. 하지만 중원에선 밀릴 수밖에 없다. (포백이) 위험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꼭 위험에 처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할 뿐이다. 포백을 쓰고 싶은 이유는 공격의 대형이 좋기 때문이다. 좌우가 넓어지기 때문에 조금 더 여유 있게 공격할 수 있다. 스리백을 쓰면 직선적으로 하게 된다. 압박을 받으면 공을 잡고 있을 여유가 없다. 빌드업의 일정 정도를 포기해야 해서 강원과 어울리진 않는다.”

하지만 김 감독의 구상은 잘 구현되지 않았다. 수비 숫자가 줄자 뒤가 흔들렸다. 새로운 전술에 선수들이 적응하는 데에 시간도 필요했다.

“구성원이 일단 중요하다. (전술이 있어도) 실행을 못하면 곤란하다. 억지로 시킬 순 없다. 그래서 좀 어려웠다. 그렇다고 선수 탓을 하고 싶진 않다. 10라운드 이전에 우리 축구를 바꿨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도 좋은 공부였다.”

뚝심 있게 김 감독의 축구를 유지했다면 시즌 중반에는 완성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 감독은 그답지 않게 전술을 수정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리그가 단축된 상황에서 조급해졌다. 점유하고 패스로 풀어간다는 스타일은 유지했지만 포메이션은 상대에 맞춰 변화를 줬다. 주로 스리백을 활용했다. 완고하게 자신만의 축구를 고집하는 것처럼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김 감독 자신의 관점에서는 변화를 시도한 시즌이었다.

“상대가 우리를 잡기 위한 맞춤 전술로 나오면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작년같은 축구는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리가 정말 하려고 했던 축구는 시즌 초반에 하다가 바꿨다. 선수들이 또 힘들어 했고, 성적이 나지 않았다. (파이널라운드 전까지)33라운드를 했다면 밀고 나갔을 것이다. 근데 2번씩만(22라운드) 붙으니까 위험하더라.”

김 감독은 전술 완성도를 높이지 못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ACL 출전권을 노려볼 만하다는 주변의 기대가 김 감독을 조급하게 했다. 성적에 욕심을 내다가 결과도 놓치고, 과정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올해는 원했던 포메이션을 제대로 못했다. 이번 시즌엔 메인 전술이 없었다. 상대에 맞춰서 경기하느라고 바빴다. 그에 대해서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욕심이 과했다. 어떻게든 결과를 내서 ACL에 나가려고 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내 생각과 다른 쪽으로 흘러간 시즌이다. 선수들은 어찌 됐든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공격적으로 준비했던 것이 풀리지 않으면서 강원도 위기에 빠졌다. 선수단도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다. 자연스레 팀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공격은 잘 풀리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어긋났다. 새로운 선수들이 자꾸 부담을 느끼더라.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혹시 내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더라. 그러다 보니 몸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은 전력에 비해 기대치가 높았다고 평가했다. 공격적인 투자를 펼친 것은 사실이지만 비교적 적은 예산을 쓰는 강원이 단번에 우승권에서 경쟁하긴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유스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기업 구단과 달리 22세 이하 선수 등 새로운 피 수혈에도 한계를 느꼈다.

“선수 보강이 많았다고 하지만 이제 비로소 다른 팀 정도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도 싸울 만한 구도가 됐다. ‘무조건 ACL에 나가야 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이제 비로소 기업 구단하고 싸울 스쿼드는 됐다고 본다. 외국 선수들 보강하고, 몇 자리 더 채우면 싸울 만한 수준이 될 것이다.”

올해 결과만 보면 실패지만, 성장의 과정으로 보면 실패가 아닐 수도 있다. 김 감독은 “축구는 우리 팀의 수준을 정확히 알고, 전략을 수립하고, 조금 더 나아갈 여지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국내 선수들을 여럿 수급하면서 팀의 수준이 올라간 상황. 이제 약간의 보강만 더 있다면 강원다운 축구를 구사하는 동시에, 성적까지 노려볼 수 있다고 말한다.

“외국인 선수 3명을 뽑았다면 임채민, 고무열처럼 지금 주축이 된 국내 선수들을 뽑지 못했을 것이다. 성적이 안 나오니까 답답할 수 있다. ‘강원은 외국인 공격수가 없어서 안된다’는 말,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먼저 이렇게 탄탄하게 (기반을) 만들어놔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강원도 국내 선수로는 탄탄해졌다. 이제 외국인 선수를 뽑아도 된다. 그럼 더 좋아질 것이다. 내가 팀을 떠나고 어떤 감독이 오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이제 2020시즌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맘에 들지 않지만 실망하진 않는다. 결과를 내기 위해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선수단이 성장하고, 하나로 뭉치는 결과도 냈다. 시즌 초반 ‘불화설’이 돌았지만 김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말도 되지 않는다며 웃어넘겼다.

“항상 훈련 분위기는 세상없이 좋다. 그게 정말 중요하다.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도 주지 않는다. 패배한 뒤 정신 차리라며 운동을 더 시킨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 좋은 분위기를 계속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해나갈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진심을 다하지 않고 축구를 잘할 수 없다. 진심을 다하면 조금 못해도 괜찮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

“위기라고 느꼈을 때 선수단이 딱 뭉치는 걸 보면서 감동적이었다. 위기가 오면 자기만 생각하기도 하지 않나. 그런데 선수들이 뭉쳐서 나를 지켜주려고 하는 게 느꼈다.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부여하는 건 내 몫이고, 그걸 따라오는 건 선수들의 자유다. 남에게 위로를 받은 적이 많지 않은데, 선수들에게 올해는 위로를 받았다. 잘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과정만 밟겠다는 건 아니다. 강원을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으로 키우겠다는 야망이 있다. 그 첫 단계는 파이널A에 꾸준히 들 수 있는 전력을 다지는 것이다.

“강원이 항상 상위 스플릿에 갈 정도만 만들어놓으면 챔피언이 못 되란 법도 없다. 상위 스플릿에만 올라가면 기회는 있을 것이다. 당장 어떻게 우승하겠나. 각 개인의 희생도 필요하고, 서로 같은 목표를 두고 노력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아니라도 다음 감독이 우승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틀을 만들고 싶다.”

전술적 도전도 계속된다. 김 감독은 포백을 쓸지, 기존의 틀을 유지해 스리백을 쓸지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 김 감독은 풀백 보강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후방에 숫자가 적은 포백에선 수비수 각각의 개인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포백도 10명이 다 수비 진영으로 내려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전방 압박을 하고, 서로 빼앗기고 빼앗으면서 문제가 생긴다. 나가야 하는지, 나가야 말아야 하는지 판단을 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상황은 시시각각 변한다. 어떤 순간에 ‘아 그땐 나가지 말아’라고 지시하면 그때부턴 계속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그러다가 ‘아 지금은 나갔어야지’라고 말하면 그땐 끝나는 것이다. 선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현재 한국엔 능력이 뛰어난 측면 수비수가 부족하고, (포백 개념에 대한) 교육이 잘 되지 않은 상태다. 어린 선수들은 습득이 빠른 반면, 프로 선수들은 습관이 들어서 더 어렵다.”

포백을 쓴다면 역시 공격에 무게를 두려고 한다. 개개인 능력이 갖춰질수록 더 과감한 시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역습에 노출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위험 요소를 감수하지 않고선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강조한다. 이번 시즌에 좌절된 강원의 '공격형 축구'를 다시 한번 시도할 수도 있다.

“스리백과 포백의 차이는 중원에서 싸움이 되는지 여부다. 포백을 쓰고 싶다는 것은 중원에서 싸움을 하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상대에도 위험 요소를 조금 노출해도, 그래야 우리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게 두려우니까 파이브백을 쓰는 것이다. 위험 요소를 줄이더라도 공격이 잘되지 않으면 결국 지는 것 똑같다. 올해도 포백을 시도했고, 스리백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더 개인 능력이 좋은 풀백과 센터백이 필요하다. 그러면 스리백을 쓸 필요가 없다.”

김 감독은 분명히 우승의 꿈을 밝히며, 그 꿈을 강원에서 이루고 싶어 했다. 선수들과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을 대학 무대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강원FC가 버리지 않는 한 여기서 끝장을 보고 싶다. 이왕이면 여기서 하고 싶다. 꼭 우승은 아니더라도 항상 근접한 팀을 만들고 싶다. 영남대학교를 처음 맡았을 때 한 이야기는 ‘항상 8강에 드는 팀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 언제든지 우승할 수 있다고.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런데 8강에 들다 보니까 항상 우승을 노릴 수가 있더라. 그래서 우승도 많이 하게 됐다.”

강원의 성적에 대한 평가는 갈리더라도, 김 감독이 K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불고 왔다는 건 누구나 인정한다. 그가 지향하는 축구는 무엇인지, 유망주를 잘 배출하는 비결은 뭔지 묻기로 했다. (②편에서 계속)

사진= 강원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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