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대구FC 주전 수비수 조진우는 동료 사이에서 ‘콥,’ 즉 라버풀 팬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지금은 리버풀을 떠난 데얀 로브렌의 팬이다. 로브렌의 실력이 떨어진다고 동료 형들이 놀릴 때도 조진우는 꿋꿋했다.

K리그 상위권 팀 주전 선수의 ‘팬질’은 어떤 모습일까. 4일 ‘풋볼리스트’와 전화로 인터뷰한 조진우는 로브렌 이야기를 하자고 하자 갑자기 말이 빨라졌다. “제가 콥이고 66번이라서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번호라고 생각하시던데, 사실은 로브렌을 좋아해서 단 번호예요. 로브렌이 리버풀에서도 6번이었고 지금 제니트에서도 6번이거든요. 일단 66번 달고 나중에 축구 더 잘 하면 6번으로 바꾸려고요.”

로브렌은 리버풀에서 6시즌 동안 활약한 크로아티아 대표 스타지만 실력을 인정받는 쪽은 아니었다. 특히 리버풀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9/2020시즌은 후보로 밀려 있었다. 조진우에게 왜 하필 로브렌이냐고 물었다. 조진우는 “로브렌 형”이라는 표현을 쓰는, 어쩌면 전세계에 몇 되지 않는 사람 중 하나다.

“로브렌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특이하대요. 이유는, 뭐랄까, 태클도 잘 하고 롱킥도 좋은데, 제일 중요한 건 자신감. 로브렌 형은 실수를 해도 기죽지 않아요. 자기가 최고라는 마인드가 있거든요. 계속 실수를 해도 아예 신경을 안 써요. 마이웨이 마인드 있잖아요.”

조진우의 리버풀 ‘입덕’ 시기는 중학교 때다. 스티븐 제라드의 킥 모션을 따라하려고 영상을 본 것이 계기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 포지션을 센터백으로 바꿨는데, 리버풀 수비수 중 로브렌에게 빠졌다. 일본 마츠모토야마가에서 위축돼 있던 시절에는 로브렌의 ‘마이웨이’ 표정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당시 팀 동료였던 고동민과 더불어 타향살이를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다.

이제 로브렌 영상을 보는 건 조진우에게 경기 전 루틴이 됐다. “경기장 가기 전에 무조건 로브렌 스페셜 영상을 봐요. 킥이 장점인 선수라서 계속 보면 무의식적으로 제게 도움이 되죠.” 조진우에게 ‘로브렌도 스페셜이 있느냐, 굉장히 짧은 것 아니냐’고 묻자 발끈하며 “에이 무슨 소리십니까? 저희 유로파리그(2014/2015) 8강전에서 극적인 헤딩골 넣은 게 로브렌 형이에요. 형은 세리머니도 슬라이딩 태클이에요. 무릎 슬라이딩도 아니고 그냥 슬라이딩. 그게 남자죠”라고 받았다.

동료들도 지독한 로브렌 사랑을 안다. 심지어 로브렌 생일에 조진우의 인스타그램에 축하 메시지가 올라오면, 동료들이 몰려들어 ‘이거 어디 선수냐’ 등 놀리는 말을 줄줄이 이어 붙인다. 조진우는 ‘대구와 리버풀 모두 저에게는 제2의 고향입니다’라는 말을 뻔뻔하게 잘도 했다.

이번 시즌은 조진우에게 프로 첫 주전 시즌이자, 리버풀이 우승한 해다. 리버풀의 매력을 묻자 조진우가 갑자기 말투를 바꿨다. “에이, 아시다시피 세계 최고라는 거죠.” 기자가 어이없는 기분에 ‘잘난 척이 지나친 것 아니냐’고 물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힘든 시기에 제라드 형이 지켜주셨고 지금은 세계 최고라는 게 매력이죠. 감스트 님께서 하신 그것 있죠? 리중, 그거.” 기자가 ‘리중딱(리버풀은 중위권이 딱이야)’이라는 줄임말이냐고 확인하자 듣기만 해도 답답하다는 듯 “그런 표현,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못 쓰죠?”라고 했다.

대구의 로브렌이 누구냐고 묻자 “제가 하고 싶은데요? 판다이크는 (정)태욱이 형에게 줘도 로브렌은 제가 할게요”라고 답했다. 재차 ‘정태욱도 로브렌을 빼앗고 싶진 않을 텐데’라고 묻자 또 발끈했다. “네? 로브렌 되게 잘해요! 저 섭섭합니다 진짜.”

로브렌의 길을 가려면 리버풀 진출이 ‘최종 테크트리’다. 혹시 리버풀에 진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냐는 질문에 “에이, 아직은 그냥 팬이죠. 리버풀은 거리가 너무 멀잖아요. 네? 실력이 먼 것 아니냐고요? 음, 일단 거리라고 해 둡시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조진우는 그리 패기 넘치는 선수는 아니다. 이번 시즌 목표가 소박했고, 이미 이뤘다. 일본에서 2년 동안 프로 경기를 하나도 뛰지 못하고 때론 숙소 TV로 동료들의 모습을 봤다. ‘2019 U20 월드컵’을 함께 준비하던 친구들이 준우승하는 모습도, 자신의 처지와 너무 대조적이라 조금 씁쓸했다. 올해 대구에 입단하면서 세운 목표는 ‘한 경기라도 뛰게 되면 잘 준비해두기’였다. 그런데 홍정운의 부상 공백을 메울 선수로 낙점되면서 갑자기 주전이 됐다.

“뛸 기회는 얼떨결에 왔어요. 첫 경기는 너무 무서웠어요. 정식 경기가 고등학교 축구부 이후 3년 만에 처음이었거든요. 처음엔 패스 한 번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어요. 옆에서 형들이 잘 도와줘서 점점 시야가 열렸어요. 초반에는 마구 걷어냈는데, 막판에는 에드가 형을 보면서 그쪽으로 걷어낼 수 있게 됐죠.”

그래서 축구인생의 목표도 ‘프로 100경기 출장’으로 정했다. 역시 소박하다. “딱 10경기 뛰었어요. 100경기가 되면 인정을 받잖아요. 그게 멋있어 보여요. 제 데뷔전 상대 성남FC에서 김영광 선수가 500경기 출장 기념식을 하셨는데, 진심으로 존경하는 박수가 나왔어요. 저도 팬들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뛰고 싶어요.”

조진우는 아직 매 경기를 즐기는 중이다. 지금 쯤이면 올림픽대표팀 발탁을 욕심낼 법도 한데 "태욱이 형과 (정)승원이 형과 같이 뛰고 싶긴 하다"고 말할 뿐,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리버풀 머플러와 로브렌 유니폼이 맞아준다. 조진우는 이 인터뷰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했다. “저처럼 인터뷰에서 로브렌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전 성덕이죠.” 카메라 앞에서 긴 인터뷰를 할 날이 오면, 로브렌 유니폼을 입고 만나기로 했다.

 

▲ 보너스 질문 - 대구 선수 중 매력 1등은?

“태욱이 형이요. 그 키와 그 몸(194cm)에도 깜찍한 면이 있거든요. 제가 이런 말 했다는 걸 알면 3대 정도 더 때리겠지만 괜찮아요. 이번 수원 원정에서 라커룸이 좁더라고요. 제가 ‘아, 좁네’라며 태욱이 형 무릎에 앉았어요. 형이 ‘네가 진짜 미쳤구나’라고 했지만 잘 받아줬어요. 승원이 형이 너무 잘 생기긴 했지만 태욱이 형만의 매력이 더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사진= 대구FC 제공, 조진우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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