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부천FC와 제주유나이티드의 역사적인 ‘연고이전 더비’가 끝난 뒤, 가장 화제를 모은 건 경기내용이 아닌 중계 캐스터의 발언이었다.

26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하나원큐 K리그2 2020’ 4라운드를 가진 제주가 부천에 1-0으로 승리했다. 제주는 과거 부천SK였다가 제주도로 연고지를 옮긴 뒤 부천 지역 축구팬들의 ‘공적’으로 인식돼 왔다. 부천 축구팬들이 적극 참여해 아마추어팀을 만든 뒤 어렵게 프로까지 입성한 것이 현재의 부천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현장에서 제주에 야유를 퍼붓지 못하자, 부천 팬들은 ‘온라인 선전포고’로 적개심을 대신 드러내기도 했다.

이 경기 중계를 맡은 송재익 캐스터는 후반전 도중 “SK가 제주도로 내려가고 부천은 FC로 바뀌었다. 프로축구에서 그런 환경이 바뀌는 것에 연연해선 안 된다. 변화를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경기 막판 주민규가 선제결승골을 넣자 “제주가 옛 홈 구장에서 득점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기장에 갈 수 없으니 중계에 의존해야 했던 부천 팬뿐 아니라, 이 경기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기대하며 시청하던 일반 축구팬들에게도 충격적인 멘트였다. 부천 팬들은 이 경기를 앞두고 제주를 직접 공격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걸개를 만들어 구단에 미리 전달했다. 그 중에는 5,228일 동안 부천 축구를 지켜왔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이 경기의 핵심 시청자들의 정서를 직접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프로 스포츠의 일반적인 상식에서도 벗어난 발언을 베테랑 캐스터가 했다는 점에서 더 아쉬웠다. 프로 스포츠는 우리 팀에 대한 응원 못지않게 라이벌팀에 대한 적개심이 팬 정서의 핵심이다. 연고이전보다 훨씬 사소한 일로도 적개심이 생기고, 그걸 바탕으로 스토리가 쌓인다. 설령 개인적으로 연고지 중심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라 해도 10년 넘게 쌓여 온 정서와 스토리를 무시하는 발언을 정면으로 하는 건 문제가 있었다. 송 캐스터는 과거 한국 선수와 외국 선수의 복싱 경기,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통해 맹활약했던 베테랑이지만 정작 프로 스포츠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부터 K리그2 중계를 자체제작하면서 송 캐스터를 다시 현장으로 끌어냈다. 인터넷 방송에 익숙한 중계진으로 젊은 층을 잡고, 송 캐스터로 중장년층을 잡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는 차원이었다. 지난해 초반 통계에서는 송 캐스터의 중계가 많은 시청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젊은 축구팬들도 송 캐스터의 구식 중계에 색다른 재미를 느끼며 컬트 요소로 자리잡아가던 중이었다.

이번 발언은 송 캐스터의 주장과 달리 라이벌 의식을 더 부추기고, 리그 전체가 이들을 더 주목하게 만들었다. 두 팀의 올해 맞대결은 두 번 더 남아있다. 7월 20일 제주 홈에서, 9월 19일 부천 홈에서 다시 경기가 열린다. 특히 9월 경기 즈음 관중 입장이 허용된다면 부천 팬들은 연고이전의 아픔에 중계에 대한 불만까지 더해져 더 이를 갈고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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