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국인 유럽파 선수들의 역사적인 경기와 시즌을 돌아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이들이 있었기에 한국에서 ‘유럽 축구’가 해외 야구, 해외 농구를 뛰어넘는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자리잡을 수 있었다. 유럽파의 한 시즌을 골라 가장 중요한 경기 리뷰, 시즌 소개, 그 시즌의 파급효과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2004/2005시즌은 PSV의 21세기 가장 화려했던 시즌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 아래 에리디비지와 암스텔컵(네덜란드 FA컵)을 석권했고,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4강에 올랐다. 자국 2관왕과 UCL 4강 모두 이 시즌을 끝으로 아직까지 재현하지 못한 업적이다.

그러나 시즌을 준비하던 당시에는 전망이 그리 밝지 못했다. 앞선 2003/2004시즌 정규리그 준우승 주역들이 대거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리그 31골을 몰아쳤던 마테야 케즈만, 특급 윙어 콤비인 아르연 로번(이상 첼시)과 데니스 롬메달(찰턴)이 모두 이탈했다. 공격진을 통째로 다시 짜야 했다.

PSV가 리빌딩 주역으로 삼은 선수들이 박지성과 이영표였다. 케즈만과 출장시간을 나눠 가졌던 장신 공격수 헤슬링크를 주전으로 낙점했고, 박지성의 팀 내 비중을 늘렸다. 그리고 페루 출신 헤페르손 파르판과 미국 출신 다마커스 비즐리를 영입해 공격을 보완했다. 베테랑 미드필더 필립 코쿠, 첼시에서 임대해 온 센터백 알렉스, 브라질의 유망주 공격수였던 에우렐류 고메스 등이 합류해 전력이 오히려 탄탄해진 측면도 있다. 수비진은 이영표를 주전 레프트백으로 완전히 신임하고, 측면 수비를 겸해 온 조프리 보우마를 센터백으로 배치하며 얼개를 짰다.

2003/2004시즌 리그 6골을 넣었던 박지성은 2004/2005시즌 리그 7골, 총 11골을 넣으며 득점력을 더 끌어올렸다.

한국인 듀오는 특히 큰 경기에 강했다. 암스텔컵 결승전에서 두 선수 모두 풀타임을 소화했고, 박지성은 골까지 기록했다. 최고 명승부로 남은 UCL 4강 2차전에서 AC밀란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뒀을 때는 박지성이 득점, 이영표가 도움을 올렸다. 비록 2차전 0-2 패배를 뒤집지 못하고 탈락했지만 역사적인 명경기로 남았다.

이영표는 전반기 아약스전에서 골과 도움을 모두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네덜란드 최고 빅 매치를 혼자 지배한 경기였다. 이 골은 에레디비지에서 2시즌 반 동안 활약하며 넣은 유일한 득점이었다. 그밖에 AZ알크마르, 페예노르트, 트벤테 상대로도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강팀과 경기할 때 특히 더 강해졌다.

박지성은 아직 24세였다. 역동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탁월한 공간지능과 판단력을 활용, 상대 수비 빈틈을 파고드는 드리블을 구사했다. 파르판 역시 PSV 이후 샬케04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나가게 되는 뛰어난 유망주지만 당시에는 플레이가 다소 설익은 면이 있었다. 미드필더 중 판보멀의 득점 가담 능력은 출중했지만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발재간을 부릴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래서 PSV 공격은 박지성을 연결고리 삼아 돌아갔다.

이 시즌에 박지성이 한국인 UCL 본선 첫 골과 첫 도움을 모두 기록했다. 또한 두 선수가 PSV 돌풍의 주역으로 활약하면서 유럽 전역의 주목을 받았고, 곧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토트넘홋스퍼로 이적해 한국인의 잉글랜드 무대 도전사를 쓰기 시작했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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