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인천] 김정용 기자= 유럽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보낸 뒤 K리그에서도 전성기 기량을 유지한 선수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기성용은 그 선구자가 되고싶었다고 했다.

21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기성용이 출국 인터뷰를 가졌다. 기성용은 지난 1월 뉴캐슬과 계약을 해지한 뒤 K리그의 FC서울과 전북현대 입단을 차례로 추진했으나, 모두 무산되자 다시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행선지는 스페인라리가 구단 마요르카로 알려졌다.

기성용은 자신의 K리그 복귀가 무산된 배경을 밝히며 서울의 협상 자세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 번 털어놓았다. 서울은 기성용의 기량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으며, 협상이 결렬된 뒤 전북 입단을 추진할 때도 협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앗다는 것이다.

기성용은 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냈다. 기성용은 성공한 유럽파 출신이자 아직 31세에 불과한 선수로서 처음 K리그로 복귀하는 선례를 만들고 싶었다는 뜻을 밝혔다. 설기현, 박지성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유럽 진출 흐름 속에서 아직 서른 언저리 선수가 K리그로 복귀한 선례는 없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해외에서 경력을 마쳤다. 박지성은 K리그에서 뛴 적 없는 선수로서 ‘제2의 친정’인 PSV에인트호번을 마지막 무대로 택했다. K리그 출신 이영표는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등 다양한 리그를 경험하는 걸 경력의 마무리로 삼았다.

기성용, 구자철, 이청용 등이 30대에 접어들며 다음 단계를 고민해야 할 나이가 됐다. 기성용의 인터뷰 맥락을 보면, 절친한 세 해외파는 모두 K리그 출신으로서 언제 국내로 복귀해야 할지 대화를 주고받곤 했다. 그중 기성용이 가장 먼저 용기를 냈다는 것이다.

“제가 K리그에서 많은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해외에 나간 선수들이 한국으로 다시 오는게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의 기대치가 큰 상황에서 그에 따른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으면 비교대상이 될 수도 있고, 당연히 금전적 부분도 있고.”

그동안 유럽파들이 K리그를 찾기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두려움이다. 유럽파는 한국 축구 최고 스타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선수들이 늙은 몸으로 K리그에 돌아온다면 기대에 못미치는 경기력 때문에 불명예스런 마지막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황선홍 대전하나시티즌 감독은 과거 박지성이 이야기한 내용이라며 “유럽에서 뛰다 한국에 들어오면, 유럽의 수준 높은 축구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 팬들도 ‘저 선수가 한 단계 높은 축구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마련이다. 선수 입장에서는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키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기성용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구자철이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야기한 내용도 비슷하다. 구자철은 기성용 복귀 무산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K리그로 들어가면 대충 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죽어라 노력할 거다”라고 말한 바 있다. 구자철은 누가 질문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이 발언을 했다.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이 K리그 복귀에 대해 같은 두려움을 안고 있다는 걸 스스로 고백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유럽파들이 K리그 복귀를 추진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고향과 같은 익숙한 환경에서 편안한 마무리를 하고 자연스럽게 이후 경력으로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명예를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기성용이 “서울과의 소송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라고 말한 것 역시 명예롭지 못한 K리그 복귀는 무의미하다는 생각 때문으로 풀이된다.

“은퇴하기 직전이 아닌 지금 오고 싶었던 이유는 그런 것을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은퇴하기 직전에 한국에 와서 은퇴하는 것보다 조금 더 젊을 때, 내가 뭔가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돌아와서 구단과 함께 목표를 이루는 것이 저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선수가 아니라, 구단과 함께 리더십을 발휘해가며 무형적인 도움까지 주는 스타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그런 기성용에게 서울의 미온적인 협상 태도는 더 뜻밖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보통은 K리그에서 뛰는 것보다 유럽 진출이 더 어려운 일이다. 반면 이미 유럽에서 자리잡은 선수들은 K리그 복귀를 더 어려워한다. 선배 박지성부터 기성용까지 그랬다. 기성용은 K리그 복귀가 무산되자 다수의 유럽 팀과 협상한 뒤 그중 한 팀을 정해 금방 유럽으로 돌아갔다. 그의 입장에서 K리그 복귀 시도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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