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곧 2010년대가 끝나고 2020년대가 시작된다. ‘풋볼리스트’는 2019년을 결산하는 대신 지난 10년 동안 한국축구가 걸어온 길을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10년 결산 기획을 마련했다. 각종 베스트 목록은 풋볼리스트 기자들의 논의를 거쳐 선정됐다. <편집자 주>

 

▲ 2010년대 초반은 4-2-3-1의 시대

세계 축구 전술의 역사를 볼 때, 21세기는 보통 4-2-3-1의 시대로 분류된다. 1990년 즈음 아리고 사키 AC밀란 감독으로부터 시작된 현대축구의 ‘기본 포메이션’은 4-4-2였다. 이는 2000년대 들어 4-2-3-1로 바뀌었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 이르면 우승팀 스페인, 준우승팀 네덜란드를 비롯해 많은 국가가 4-2-3-1 포메이션을 썼다.

허정무 감독이 이끈 한국 역시 4-2-3-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수비적인 축구를 하는 팀이었다. 당시 한국축구 전반적으로 퍼져 있던 대세 전술 역시 4-2-3-1 기반이었다. 당시 K리그 최강을 다투던 성남일화, 전북현대, FC서울이 모두 4-2-3-1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나름의 전술을 짰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고 한결같이 좋은 모습을 보였던 고(故) 이광종 감독도 이 포메이션을 애용했다. 4-2-3-1은 조직력을 유지하는 방법이 잘 알려져 있었을 뿐 아니라 스트라이커,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등 각 카테고리의 선수들을 조합하기에도 쉽다.

2006년부터 국내에서 P급 지도자강습회가 열리면서 감독들은 비슷한 전술을 공부하게 됐다. 2008년 교육 동기인 홍명보, 박경훈 두 감독은 각각 대표팀과 K리그에서 4-2-3-1을 구사해 성공한 대표적인 지도자들이다. 홍 감독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 축구의 최대 성과 중 하나인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따냈다. 박 감독은 2010년 제주유나이티드 감독으로서 K리그 준우승 돌풍을 일으켰는데, 이때 지도자강습회 강사 출신의 코치들을 대거 선임했다. 당시 국내에서 선진 축구에 속했던 이들이 공통적으로 ‘표준 포메이션’인 4-2-3-1을 썼다. 이 흐름은 한동안 이어져, 포항스틸러스가 황선홍 감독 아래서 운영비를 뛰어넘는 성과를 낼 때(2014년 K리그 우승)도 주로 쓴 전술은 4-2-3-1 기반의 조직적인 압박과 속공이었다.

‘2009 U20 월드컵’부터 런던올림픽까지 홍명보 감독의 지도를 받은 1989년생 세대들은 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뭉쳐 있었다. 이 신뢰는 그저 홍 감독의 카리스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술에 대한 신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멤버였던 한 선수는 홍 감독의 팀에서 조직적인 압박과 수비 위치에 대한 훈련을 받으며 ‘이런 건 생전 처음 배운다’고 말했고, ‘우리 팀은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해준 바 있다. 이는 세계축구 조류를 따라잡은 4-2-3-1 기반 전술이 2010년 즈음 한국에서 가장 진보된 전술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 유효기간은 짧았다. 대표팀은 전술과 행정 모두 혼란을 겪은 끝에 ‘2014 브라질월드컵’ 사령탑으로 홍 감독을 급히 선임했고, 홍 감독은 4-2-3-1 한 가지 계획으로 브라질에 향했다. 그러나 조직적인 4-2-3-1을 넘어 다양한 응용전략이 나온 대회에서 한국은 전략적으로 경직된 팀에 불과했다. 홍 감독은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던 시절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를 선임하며 코어 트레이닝을 도입했다. 이 점 역시 도입 당시에는 앞선 훈련법이었지만, 2014년에는 차별성이 없었다. 행정과 관리의 실패 때문에 ‘플랜 B’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홍 감독 다음으로 부임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비록 선수 시절 레알마드리드의 레전드 반열에 든 미드필더였지만, 감독이 된 뒤에는 성공한 적이 없는데다 동행한 코치진의 ‘맨 파워’도 빈약했다. 슈틸리케 감독 역시 평범한 4-2-3-1에 천착할 뿐 해법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술을 뛰어넘어 승리를 가져다주던 박지성이 은퇴(2011)한 뒤 대표팀은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상태였으나,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날 때까지 제자리걸음을 했을 뿐이었다.

▲ ‘닥공’과 ‘철퇴축구’가 보여준 롱볼의 위력

주류는 4-2-3-1을 기반으로 한 조직적 수비였지만, 아시아에서 한국 축구의 전통인 격렬한 몸싸움과 전력질주 역시 중요한 부분전술로 남아 있었다. K리그 팀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연속 결승에 올라 3회 우승했다. 2009년 포항스틸러스의 스테보, 2010년 성남의 라돈치치, 2011년 전북의 정성훈, 2012년 울산의 김신욱 등 몸싸움에 능한 장신 공격수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곤 했다.

특히 최강희 전북 감독의 ‘닥공’과 김호곤 울산 감독의 ‘철퇴축구’는 장신 공격수를 활용하는 두 노련한 감독의 요령을 잘 보여줬다. 전북은 기본적으로 기술적인 축구를 구사했지만, 체력이 떨어져 전술이 잘 작동하지 않는 막판 30분 동안에는 특이한 변칙 전략을 썼다. 전북이 앞서고 있든 뒤쳐져 있든, 상대보다 먼저 장신 공격수를 추가 투입해 극단적인 롱볼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전북은 이 전략으로 K리그와 ACL을 모두 지배했다. 세 골 차로 이기고 있는데도 이동국 옆에 장신 정성훈과 준족 김동찬을 추가하는 축구가 ‘닥공’이었다.

철퇴축구는 더 노골적으로 장신 한 명과 여러 발 빠른 선수로 구성된 축구였다. 김신욱은 뜬 패스를 머리로 받을 수도 있고, 낮은 패스를 받은 뒤 쇄도하는 단신 공격수들에게 스루 패스를 할 줄도 아는 선수로서 역습의 완벽한 기점이었다. 그 옆에 이근호, 하피냐, 마라냥 등을 배치한 울산은 효율 측면에서 압도적이었다. 김신욱과 센터백 곽태휘는 세트피스에서도 강력했다. 울산은 2012년 ACL 8강부터 결승까지 5전 전승을 거뒀는데 그중 4골차 승리 1회, 3골차 승리 1회도 포함돼 있었다.

 

▲ 4-2-3-1에 대항하는 스리백의 등장

4-2-3-1 위주 축구의 안티테제로서 등장한 건 스리백이다. 2011년 하반기 안익수 부산아이파크 감독이 먼저 보여준 방식이다. 안 감독은 난해한 4-4-2 포메이션이 잘 작동하지 않자, 재빨리 3-4-3으로 포진을 바꿔 2년 연속 상위권에 드는 성과를 냈다.

당시 유럽에서도 스리백이 막 부각되고 있었다. 2011/2012시즌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쓴 3-5-2 포메이션이 대표적이었다. 최용수 감독은 2011년 감독대행으로서 서울 지휘봉을 잡았다. 처음에는 세뇰 귀네슈 감독 시절부터 이어져 온 공격적인 축구를 했으나 점차 선수단이 약해지자 2014년부터 콘테 스타일의 3-5-2를 적극 도입했다.

최용수의 3-5-2는 4-2-3-1의 대항마였다. 공격 축구를 표방한 최강희 전북 감독을 집요하게 괴롭혔고, 나아가 황선홍 감독의 포항과도 대조를 이뤘다. 최 감독은 이 축구를 바탕으로 2년 연속 K리그 상위권을 유지했고, 2015년 FA컵에서도 우승했다. 그리고 2016년 여름 K리그를 떠났다가 2018년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3-5-2 기반으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

최용수 감독이 썼던 3-5-2 계열 전략은 비교적 빠르고 간단하게 수비를 안정화시키고, 몇몇 공격수들의 속공으로 실리를 챙기기 쉽다. 당시 K리그1 하위권 및 K리그2 구단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스리백 도입이었다. 또한 서정원 수원삼성 감독도 전력 약화에 대처하기 위해 스리백을 도입했는데, 최용수 감독의 방식보다 좀 더 까다로운 3-4-3 계열 운영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 한국 축구 주류와 결합한 포르투갈식 운영, 그리고 아웃사이더들의 부상

최용수, 최강희 등이 차례로 K리그를 떠났고 황선홍, 서정원 등의 전성기가 한 차례 꺾이면서 K리그는 딱히 전술적으로 돋보이는 명장이 없는 리그가 됐다. 남기일 감독이 광주를 이끌고 적극적인 압박을 통해 성과를 냈으며, 고(故) 조진호 감독 등이 지도자로서 가능성을 보여줬으나 리그의 대세라고 할 만큼 화제를 모은 전술적 변화는 없었다. 대략 2016년부터 2017년까지 K리그는 전술적으로 특기할 만한 것이 없었다.

대표팀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급히 선임된 신태용 감독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해법을 모색했다. 그러나 본선 직전 부상자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역량을 검증받을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구사한 수비적인 전술로는 조별리그를 통과하기 힘들었다.

최근 한국축구의 전술적 흐름은 아웃사이더들이 새로 만들어나간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승격과 2018년 K리그1 2위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김종부 전 경남FC 감독, 올해 대구FC의 화려한 속공을 만들어낸 안드레 감독과 조광래 대표이사 겸 기술고문, 아마추어 최고 명장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있다가 올해 마침내 프로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한 김병수 강원FC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한국 축구의 주류 인맥과 거리가 있다.

점유율 유행이 지난 뒤 세계 축구의 화두는 공수 전환 속도를 높이고, 상대 수비가 대응하기 전에 혼란을 주며 공격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독일분데스리가에서 시작된 게겐프레싱 유행이 공격 전환 속도를 세계 전술가들의 화두로 올려놓았다. 2014년부터 유럽을 제패한 레알마드리드, 러시아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벨기에 모두 고속 역습이 가장 큰 무기였다. 현재 대구는 이 흐름 위에 있는 팀이다. 조광래 대구 대표는 벨기에 전술을 참고해 대구의 공격 전환 속도를 높였다고 밝힌 바 있다. 조 대표는 대표팀 감독 시절 윙백의 공격적인 활용과 포어 리베로에 대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는데 실패한 바 있다. 이제야 대구에서 그 해답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축구 조류와 동떨어진 채 위력을 발휘했던 김종부 감독의 축구는 이탈리아세리에A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아탈란타와 비슷한 면이 있는데, 경기 전체에 대한 장악을 포기하고 우리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데 극단적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간단한 선수 교체로 전술 변화를 주는 것도 아탈란타와 경남의 공통점이었다. 전술 운영이 단조로운 K리그 상대팀을 만났을 때 김종부 감독의 경남은 여러 번 허를 찌르며 승리를 챙기곤 했다.

유연한 전술 변화 능력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김학범 감독, ‘2019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우승한 정정용 감독 역시 보여줬다. 지난 2년 동안 K리그는 신예 감독과 ‘돌아온 명장’들의 활약을 통해 전술적으로 다시 풍성해져가고 있다.

2010년대를 마무리하는 지금, 한국 축구의 주류는 포르투갈식 축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은 역대 가장 많은 코칭 스태프를 대동하고 부임했다. 포르투갈 지도자들은 유독 세분화, 전문화된 지도법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끈다. 벤투 감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선수들은 입을 모아 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을 밝힌 바 있다. 동시에 2019년 우승팀 전북현대는 조세 모라이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포르투갈 축구의 특징인 집요한 상대 분석, 체게적인 빌드업을 통한 공격방향 전환 등이 한국축구와 접목되는 중이다. 다만 벤투와 모라이스 모두 자신의 축구를 본격적으로 구현하지 못한 채 2020년을 맞이한다.

글= 김정용 기자

감수= 서형욱 축구해설위원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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