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곧 2010년대가 끝나고 2020년대가 시작된다. ‘풋볼리스트’는 2019년을 결산하는 대신 지난 10년 동안 한국축구가 걸어온 길을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10년 결산 기획을 마련했다. 각종 베스트 목록은 풋볼리스트 기자들의 논의를 거쳐 선정됐다. <편집자 주>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지난 10년 동안 한국 축구에서 벌어진 사건 TOP 10을 정리했다. 말 그대로 축구계를 발칵 뒤집었던 사건부터, 대회 성적이나 수상(시리즈 1번 참고)을 제외한 대형 기록 수립까지 두루 정리했다. 지난 10년간의 ‘베스트’와 ‘워스트’가 모두 담긴 리스트다.

 

2010년 : 박지성의 사이타마 산책

한일전은 언제나 뜨겁다. 가위 바위 보를 하더라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 한일전이다. 2010년 5월 24일 일본 사이타마에 위치한 사이타마스타디움2002에서 한국과 일본이 맞붙었다. 월드컵을 앞둔 국민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박지성은 한국의 에이스였다. 경기 전 박지성의 이름이 호명되자 6만여 관중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홈팀 일본의 기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전반 6분, 김정우의 패스를 받은 박지성은 상대 수비수들을 뚫고 질주했다. 페널티 박스 오른쪽 외곽에서 박지성의 발을 떠난 공은 일본의 골망을 경쾌하게 흔들었다. 박지성은 골을 넣고 자신을 향해 야유하던 일본 팬들을 향해 가볍게 뛰며 조용히 그들을 응시했다. 경기장에는 침묵이 이어졌다. 박지성은 훗날 인터뷰에서 "너희가 그렇게 야유하던 내가 골을 넣었다"라는 의미로 일본 관중석을 응시한 세리머니를 펼쳤다고 밝혔다. 이후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팀들이 J리그 팀들을 만나 골을 넣으면 같은 세레머니를 종종 졸 수 있다. 물론 각급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책 세레머니는 한일전의 상징이 됐다.

 

2011년 : 이영표, 박지성의 은퇴

한국 축구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박지성과 이영표가 나란히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2011년 1월 카타르에서 개최된 아시안컵은 한국 축구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두 인물과의 이별의식이었다. 먼저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힌 것은 박지성이었다. 대회와 함께 명예롭게 주장 완장을 반납하겠다고 했다. 현역으로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지만 국가대표로서 자신의 임무는 다 했다는 판단이었다. 이영표 역시 마찬가지다. 카타르 현지에서 아시안컵의 태극마크가 자신의 마지막 무대일 것이라고 했다.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국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 이들의 은퇴는 당장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지만, 이후 대표팀의 세대교체로 이어졌다. 이영표는 1999년부터 13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127경기에 출전해 5득점을 기록했다. 2000년 태극마크를 처음 단 박지성은 100경기에 출전해 13득점을 기록했다. 이들은 은퇴 후에도 한국축구 안팎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2011년 : K리그 승부조작

한국 축구사 최악의 스캔들이 발생했다. 근본이 흔들렸다. 풍문으로나 돌던 K리그의 승부조작이 사실로 밝혀졌다. 국가대표 출신 선수 일부를 비롯해 많은 프로 선수들이 국내 조직폭력배와 연계되어 승부조작을 벌여 큰 충격이 발생했다. 대부분 선수들은 조직폭력배의 강압에 못 이겨 승부조작에 가담했지만 일부는 직접 브로커와 승부조작을 모의해 더욱 큰 파장이 일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사법당국과 공조해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수사 대상에 올랐던 일부 인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후폭풍이 심했다. 수십여 명의 전현직 프로선수들과 브로커, 조직폭력배의 구속으로 사태가 마무리됐다. 프로연맹과 대한축구협회는 사건을 계기로 관련 종사자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과 단속을 강화했다.

 

2013년 : K리그 승강제 시행

K리그에 승강제가 최초로 도입됐다. 이에 앞서 K리그는 2부 리그를 탄생시켰고, 2012년 최하위 광주FC와 군팀 상주상무의 강등이 결정됐다.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 14팀,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 8팀으로 승강제가 출범했다. 리그 종료 후에는 클래식 13위와 14위가 챌린지로 강등되고, 클래식 12위는 K리그 챌린지 챔피언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K리그는 우승권에 있는 상위권 일부 팀을 제외하고는 시즌 막판 동기부여가 부족했다. 하지만 잔류라는 생존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며 시즌 막판까지 흥행 요소를 이어갔다. 동시에 챌린지 팀들은 승격을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펼쳤다. 당시 K리그에서는 마지막 경기에서 포항스틸러스가 우승에 성공했고, 상주상무는 K리그 역사상 최초의 승격팀이 됐다.

 

2016년 : 뒤늦게 밝혀진 전북의 심판 매수

K리그에 다시 한 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당시 K리그 최다 승점으로 우승이 확정적이었던 전북현대는 심판 매수 사건으로 스스로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 소속 스카우트가 지난 2013년 돈을 건네는 방식으로 심판을 매수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전북은 승점 9점 감점과 벌금 1억 원의 징계를 받았다. 징계 수위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시즌 최종전에서 공교롭게 전북과 서울이 맞붙었는데, 전북이 패하며 승점 3점차로 서울이 우승, 전북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7년 : 충주험멜, 고양자이크로 해체

K리그에 팀이 생기는 사례는 꾸준히 있었지만, 단순 경영난에 의해 팀이 사라지는 건 201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현상이다. K리그가 지난 10년 동안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부실한 부분이 많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했다. 2013년 챌린지 출범 당시 원년 멤버로 참가한 충주험멜과 고양자이크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7년 1월 16일 프로연맹 이사회에서 충주와 고양의 탈퇴가 승인됐다. 태생부터 프로구단으로서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출범했고, 경영도 부실했다. 충주는 모기업인 험멜의 경영난이 겹쳤고, 고양은 지원금이 줄어들었다. 팀 성적의 추락은 자연스러웠다. 두 팀은 고심 끝에 해체를 선택했다. 문제는 대부분 선수들이 계약 종료 후 갈 곳을 잃었다는 부분이다. FA로 풀린 후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서류 작업을 할 구단 직원들도 없었다. 험멜은 일부 직원들이 해고 통보를 받은 후에도 선수들을 위해 봉사했다. 고양은 선수단의 오랜 체불도 겹쳤다.

 

2016, 2017년 : 너무 일찍 떠난 이광종 감독과 조진호 감독

2016년 9월 26일, 한국 축구의 숱한 스타들을 길러낸 이광종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세상과 이별했다.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지도자로 출발해 올림픽대표팀을 이끌기까지 손흥민, 지동원, 장현수, 권창훈 등 스타를 길러낸 이광종 감독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28년만에 한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하지만 2015년 급성 백혈병이 발발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제자들과 함께 메달을 따겠다는 그의 꿈을 앗아갔다. 투병생활 끝에 52세의 일기로 하늘로 떠났다. 2017년 10월 10일에는 부산아이파크를 이끌던 조진호 감독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앞서 10월 8일 부산은 경남FC와의 경기에서 0-2로 패했다. 승격을 목표로 싸워 온 가운데 자력 승격의 기회가 날아간 상황. 평소 감독으로서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렸던 그는 부산의 숙소에서 나오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일어나지 못했다. 부산은 2019년 승격을 확정했다. 이정협, 호물로 등 여전한 선수들과 현재 지휘봉을 잡고 있는 조덕제 감독은 승격의 영광을 조진호 감독에게 바쳤다.

 

2017년 : FIFA U20 월드컵 개최

2017년 5월 20일부터 6월 11일까지 총 23일간 수원, 전주, 인천, 대전, 천안, 제주 등 총 6개 도시에서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이 개최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7년 U17 월드컵에 이어 세 번째 FIFA 월드컵 개최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을 포함하면 네 번째 FIFA 주관대회다. 세계 최고의 재능을 가진 축구 꿈나무들이 출전하는 대회인 만큼 국내외 관심도 뜨거웠다. 잉글랜드가 결승에서 베네수엘라를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개최국인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기니와 한 조에 편성됐다. 한국의 초반 기세는 돌풍이라 할 만했다. 첫 경기인 기니전에서 3-0 승리,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16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포르투갈과의 16강에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1-3 패배했다. 한국은 4강 신화 재현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이승우, 백승호, 조영욱, 정태욱 등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선수들을 확인했다.

 

2019년 : K리그 흥행, 역대급 순위 경쟁이 한 몫

2019년 K리그는 2013년 승강제 도입 이후 최초로 1, 2부 리그 합계 총 관중 230만 명을 돌파했다. 흥행에 한몫 한 건 시즌 막판까지 이어진 순위 경쟁구도였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들이 나왔다. 전북과 울산은 38라운드까지 무려 여섯 차례나 1위 자리를 맞바꾸었다. 우승 트로피의 향방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결정됐다. 초유의 사태에 프로연맹은 우승 트로피와 시상식 준비를 울산과 전주에서 각각 마련했다. 전북이 강원을 1-0으로 꺾고, 울산이 포항에 1-4로 패하며 결국 우승 트로피는 전북이 차지했다. 울산은 지난 2013년에도 포항과 시즌 마지막 경기에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 울산은 당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 가능했지만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내주며 좌절했다. 동시에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 경쟁도 치열했다. 서울이 38라운드까지 3위를 유지했지만, 34라운드부터 대구가 무섭게 추격했다. 마지막 38라운드에서는 양팀의 승점차가 1점에 불과했다. 결국 최종전 맞대결에서 무승부를 거두며 서울이 3위를 지켰다.

 

2019년 : 손흥민, 차범근의 기록을 뛰어넘다

2019년 한국 축구팬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선사한 것은 단연 손흥민이다. ‘2018/2019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결승 진출로 밤잠을 잊게 한 그는 지난 11월 7일 세르비아의 강호 즈베즈다와의 2019/2020 UCL 조별리그 4차전에서 2골을 기록했다. 유럽 무대 122, 123호 득점이었다. 이 기록은 차범근 전 감독이 보유했던 한국인 유럽무대 최다 득점(121골) 기록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정표였다. 1989년까지 활약한 차 전 감독의 기록이 깨진 것은 무려 30년 만의 일이다. 손흥민은 이후에도 골 폭풍을 몰아쳤다. 매 경기 득점포를 가동할 때 마다 역사가 새롭게 쓰이고 있다. 만 27세에 불과한 만큼 향후 기량 유지를 통해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역사가 더해지게 된다. 한편 손흥민은 발롱도르 후보에 올라 최종 순위 22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다만 퇴장의 역사도 새롭게 썼다. 손흥민은 23일 첼시와의 경기에서 퇴장을 받았다. 1년간 3퇴장 기록이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 300경기 넘게 출전하며 단 한 장의 경고만 받았다. 박지성 역시 프리미어리그에서 단 한 장의 레드카드도 받지 않았다.

글, 정리= 김동환, 허인회 기자

그래픽= 양예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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