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곧 2010년대가 끝나고 2020년대가 시작된다. ‘풋볼리스트’는 2019년을 결산하는 대신 지난 10년 동안 한국축구가 걸어온 길을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10년 결산 기획을 마련했다. 각종 베스트 목록은 풋볼리스트 기자들의 논의를 거쳐 선정됐다. <편집자 주>

2010년대는 한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가속화된 시대였다. 박지성 전성기의 마지막 불꽃과 손흥민의 급부상이 맞물리면서 유럽파의 자연스런 세대교체가 일어났고, 대표팀 중심이었던 기성용, 구자철 등 ‘런던 세대’ 역시 세계 축구 한복판에서 경쟁력을 증명했다. 그래서 ‘지난 10년의 한국축구 베스트일레븐’은 절반 이상이 유럽파다. 동시에 이동국과 염기훈 등 K리그에서 전설을 써내려간 인물들도 있었다.

 

▲ 골키퍼

정성룡 : 선배 김병지의 1990년대, 이운재의 2000년대와 달리, 지난 10년 동안 한국 축구를 대표한 골키퍼 한 명을 꼽긴 어렵다. 그중 대표팀 출장 횟수와 성과를 아울러 감안할 때 가장 존재감이 컸던 선수는 정성룡이다. 정성룡은 한국 축구의 지난 10년간 최대 성과인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과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다. A매치 67경기 중 25경기에서 무실점울 기록했다. 2016년 9월 중국전을 마지막으로 대표팀 출장은 끊겨 있다. 이후 김진현, 조현우, 김승규 순서로 대표팀 주전 골키퍼가 바뀌어 왔다.

 

▲ 수비수

김진수 : 레프트백도 한 명을 꼽기 어렵다는 건 골키퍼와 비슷하다. ‘이영표의 시대’가 끝난 2010년 이후 ‘절대 1위’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럽 빅 리그에서 한때나마 주전으로 활약했던 김진수와 박주호, K리그 시즌 베스트일레븐에 4회나 선정된 홍철이 그중 돋보이는 선수들이다. 김진수는 세 선수 중 가장 어림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출장 횟수가 가장 많다는 점(46경기 1골)에서 보듯 레프트백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2013년 이영표의 후게자로 주목받으며 A매치에 데뷔했으나 타이밍 나쁜 부상으로 두 차례 월드컵을 모두 걸렀다. 대신 ‘2015 호주아시안컵’에서 주전으로 뛰며 강력한 공격력으로 준우승에 일조했다. 한때 호펜하임에 진출해 독일분데스리가 통산 34경기 출장을 기록했고, 현재 K리그 최강자 전북현대에서 활약 중인 동시에 대표팀 주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영권 : 2010년대 한국 대표팀의 추락과 부활을 한가운데서 겪은 ‘산증인’이다. 청소년 대표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런던올림픽 동메달, 2015 아시안컵 준우승에 기여했다. 반면 ‘2014 브라질월드컵’ 부진의 원흉 중 하나로 지목됐고, 일찌감치 중국 광저우헝다에 진출(2012~2018)하며 센터백들이 ‘중국화’됐다는 폄하를 정면으로 받는 등 고생도 많았다. 2017년부터 경기력을 빠르게 회복한 김영권은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영웅적인 수비력을 보였고, 독일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는 맹활약을 통해 명예를 완전히 회복했다. 이후 현재까지 주축 수비수로 활약 중이다.

차두리 : 공격수 원석으로서 먼저 주목받았으나, 2006년부터 오른쪽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꾸기 시작해 2010년 즈음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라이트백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대표 76경기 중 2001~2009년 동안 41경기를, 이미 30대였던 2010~2015년에 35경기를 소화했다는 점을 봐도 풀백으로 변신한 30대 차두리가 더 큰 족적을 남긴 선수였다. 라이트백 차두리는 두 차례 월드컵, 두 차례 아시안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특히 35세였던 2015년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탁월한 공격력은 차두리를 끝까지 주인공으로 기억하게 했다. 풀백 전환 후 프로 선수로서도 성공을 거뒀다. 셀틱 시절(2010~2012), 그리고 K리그에 뒤늦게 데뷔해 치른 3시즌(FC서울, 2013~2015) 모두 지켜본 이들에게 시원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은퇴 직전 2시즌 동안 K리그 시즌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 미드필더

박지성 : 대표팀 경력은 2011년 마쳤고, 프로 선수로서 2014년 은퇴했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 보인 족적만으로도 201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부족하지 않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한국을 16강에 올려놓았다. ‘2011 카타르아시안컵’에서도 여전히 뛰어난 모습으로 은퇴 직전까지 활약했으며, 돌이켜보면 전설로 남은 ‘산책 세리머니’ 역시 2010년의 일이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선수로서 2010/2011시즌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우승,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준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2012년 맨유를 떠나 퀸스파크레인저스, PSV에인트호번에서 한 시즌씩 활약한 뒤 은퇴했다. 2014년 K리그 올스타전이 ‘팀 K리그 대 팀 박지성’이었다는 점에서 위상이 한 번 더 드러났다.

기성용 : 지난 10년 동안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중요했던 선수다. 남아공월드컵 대표팀은 겨우 21세였던 기성용의 컨디션에 따라 전술이 바뀌었고, 홍명보 감독의 애제자로 구성돼 있던 런던올림픽 대표팀은 뒤늦게 합류한 기성용을 통해 비로소 완성됐다. 이후 대표팀 불화 등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리더의 면모를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러시아월드컵을 명예롭게 마쳤다. 셀틱, 스완지시티, 선덜랜드, 뉴캐슬을 거치며 영국 무대에서 줄곧 활약하고 있다. 특히 스완지 소속일 때 활약이 뛰어났는데 2012/2013시즌 리그컵 우승 주역이었고, 2014/2015시즌 EPL 8골을 넣는 등 중하위권팀 미드필더 중 돋보이는 역량을 발휘했다.

구자철 : 2010년 제주유나이티드 돌풍을 이끌며 화려하게 한국 축구 주류에 등장했다. 이듬해 유럽 진출을 단행할 시절만 해도 독일분데스리가를 통틀어 돋보이는 볼 키핑 능력을 가진 특급 기대주였다. 여러 차례 부상에 시달리며 기량에 비해 대성하지는 못했지만 분데스리가 3팀을 거치며 꾸준히 활약했다. 특히 1부에서 보낸 시간이 짧은 아우크스부르크는 구자철이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득점 3위(22골)다. 아우크스부르크 구단 역사를 통틀어 최고 선스로 거론될 만한 활약이었다. 대표팀에서는 호주아시안컵 득점왕 등 76경기 19골을 남겼고, 런던올림픽 동메달 당시 한일전 쐐기골을 터뜨렸다. 성실한 자세로 동료들의 귀감이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청용 :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뒤 고작 반년 만에 ‘포스트 박지성’ 이청용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는 건 대표팀 전력에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쳤다. 전성기가 일찍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동안 좋은 활약을 해 왔다. 2009/2010시즌 유럽 진출 이후 EPL에서 6시즌 반, 잉글랜드와 독일 2부에서 4시즌 반에 걸쳐 끈질기게 유럽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장기부상 여파를 털고 독일 보훔으로 팀을 옮긴 2018년 여름부터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대표팀에서는 남아공월드컵에서 2골을 넣고 이후 월드컵 예선에서 2골을 넣는 등 A매치 9골을 기록했다. 올해 3월 평가전에서 득점했다는 점에서 보듯 아직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할 시간이 남은 선수다.

 

▲ 공격수

손흥민 : 세계인이 주목하는 유럽 빅 리그에서 한국 선수 역사상 가장 큰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역대급’ 선수. 손흥민의 활약은 2010년대를 완전히 관통한다. 2010년 10월 독일분데스리가 데뷔골을 넣었고, 2019년이 되자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를 통틀어 가장 파괴력 있는 득점원 중 한 명으로 거듭났다. 특히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지난 시즌 4골과 이번 시즌 5골을 넣었는데, 기존 한국인 중 ‘통산’ 최다골이 박지성의 3골이었음을 감안하면 독보적인 성적이다. 아직 대표팀을 성공으로 이끈 적은 없지만 201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일조했고, 월드컵에 두 번 참가해 총 3골을 기록하며 박지성, 안정환과 함께 한국인 최다득점 타이 기록을 갖고 있다.

이동국 : 2000년대 각급 대표팀에서 활약했고, 2010년대에는 K리그에서 전설이 됐다. 이론의 여지없는 K리그 사상 가장 거대한 선수다. K리그 신인상, 득점왕, 도움왕, MVP(4회), ACL MVP와 득점왕, K리그 통산 득점 1위, 도움 2위, ACL 통산 득점 1위 등 K리거로서 모든 영광을 누렸다. 최강희 전 전북 감독의 페르소나였고, 전북 전성기 그 자체다. 전북에 합류했던 2009년 이미 30세였기에 이토록 긴 전성기는 초인적인 수준이다. 한편 현역 엘리트 스포츠 스타로서 방송국 예능 신인상을 수상하는 사례를 만들어내며 달라진 미디어 환경을 잘 이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박주영 : 박주영의 2010년대는 다사다난했다. 2011년 합류한 아스널에서 주로 벤치 신세를 졌고, 유럽 무대를 떠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샤밥으로 이적(2014~2015)했을 때는 임금 체불도 겪었다. 2015년 친정팀 FC서울로 복귀한 뒤 지난 5년간 39골 12도움을 기록했고, 특히 34세 노장이 된 올해 10골 7도움을 기록했다. 올해 기록은 한국 축구를 넘어 한국을 흔들었던 2005년 신인 시절(18골 4도움) 이후 최고였다. 대표팀에서는 논란의 대상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2010년대 초반에는 중요한 성과를 낸 공격수다. 남아공월드컵에서 프리킥 득점으로 16강에 기여했고, 와일드카드로 참가한 런던올림픽에서는 동메달 획득을 이끌어낸 한일전 단독드리블 득점을 비롯해 2골을 터뜨렸다. 2011년에만 A매치 8골을 몰아칠 정도로 압도적인 공격수였던 시절이 있었으나 2014년 이후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고 있다.

 

▲ 끝까지 경합한 3명

염기훈 : K리그에서 이동국 다음으로 역사적인 기록을 쌓아가는 어시스트의 제왕. 2010년대에는 수원삼성에서만 활약(군복무 제외)하며 K리그1 도움왕 2회를 기록했다. K리그1 통산 최다 도움(59) 기록 보유자다. 젊은 시절에는 왼발 킥을 제외한 경기력에 기복이 있었지만, 노장이 된 2015년 오히려 축구도사의 모습을 보이며 무려 8골 17도움을 기록했다.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활약했다는 점에서는 박지성, 이청용 대신 베스트일레븐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있다.

곽태휘 : 김영권, 홍정호 등이 엘리트 코스를 걸어 온 반면 곽태휘는 차근차근 평가를 끌어올려 대표팀 주전까지 따낸 선수다. 그것도 중요한 고비마다 덮친 부상을 극복하며 일군 성과다. 2010년 이미 K리그 최고 수준 센터백이었지만 월드컵 경기 출전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대신 울산의 ACL 제패를 이끌며 2011, 2012년 K리그 최고 수비수로 선정됐고,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34세에 참가한 호주아시안컵에서 마침내 주전 자리를 차지했는데, 반년 전 브라질월드컵에서 벤치에 앉아있었던 것과 달리 후배들에게 기합을 불어넣는 투지와 리더십으로 호평 받았다.

김민재 : 프로 및 국가대표 선수로서 고작 3년차에 불과하지만, 경기력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확고한 후보가 없는 센터백 포지션 선정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센터백을 한 명 줄이고 다른 포지션을 늘리기로 하면서 곽태휘와 김민재 모두 누락됐다. 데뷔 후 2년 연속 K리그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됐고, 첫해 영플레이어상도 가져갔다. 수비수가 영플레이어상을 탄 건 역대 3번째다. 대표팀 데뷔 이후 부상만 없으면 확고한 주전으로 활약 중이며, 올해 A매치 3골을 터뜨리며 압도적인 세트피스 공격 능력도 발휘하고 있다.

글 및 정리= 김정용, 유지선 기자

그래픽= 양예솔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