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황인범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지 않고 동료들이 분담하게 만든다면 경기력은 크게 향상될 수 있다.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이 황인범 기용의 원칙을 확인시켰다.

한국은 18일 일본을 꺾으며 홈에서 열린 대회를 무실점 전승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무실점도, 홈에서 거둔 우승도 처음이다. 단 4득점에 그친 공격력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매 경기 한 골 이상을 넣으며 승리의 최소 조건은 충족했다.

황인범은 대회 MVP로 선정됐다. 4경기 풀타임을 소화한 한국 선수 중 하나였고, 한국의 첫 골과 마지막 골을 넣으며 홍콩전과 일본전 승리를 이끌었다. 홍콩전 득점은 앞선 A매치 3경기 무득점을 끊었다는 점에서 벤투 감독에게 준 선물이었다. 일본전 득점은 한일전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의미가 컸다.

황인범을 어떻게 기용해야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확인한 대회이기도 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경기를 치를수록 경기력이 개선됐다. 황인범은 과도한 빌드업 부담을 받지 않고 동료들과 공격, 수비 부담을 나눴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황인범은 첫 경기 홍콩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손준호, 공격형 미드필더 김보경 사이를 잇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기용됐다. 두 번째 중국전에서는 주세종이 뒤를 받치는 가운데 황인범과 이영재가 공수를 오갔다. 일본전은 주세종, 손준호가 모두 출동해 황인범과 함께 중원을 장악했다.

벤투 감독은 올해 전반기 황인범에게 미드필드의 모든 것을 맡기는 실험을 했다. 4-1-3-2 포메이션에서 중원을 정우영과 황인범 두 명으로 구성하되,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은 뒤로 쳐지게 만들고 황인범이 그 앞의 넓은 공간을 모두 책임지게 했다. 황인범은 수비 상황에서 정우영 옆까지 내려가 일자 미드필드 라인을 구축했다가, 공격 상황에서는 전진해 투톱을 지원해야 했다. 그 전환이 매끄럽지 않을 경우에는 임기응변으로 자기 위치에서 최선의 플레이를 해야 하는 고난이도 임무였다. 홈에서 열린 평가전은 어느 정도 작동했지만, 월드컵 예선 원정 경기에서는 상대가 약체일지라도 통하지 않는 축구였다. 황인범 한 명에게 걸리는 부하가 너무 컸다.

벤투 감독은 지난 11월 레바논 원정에서 전략을 조금 바꿔 역삼각형 중원을 구성했지만, 황인범 옆에 배치된 선수는 남태희였다. 사실상 공격수에 가까운데다 당시 컨디션이 떨어져 있던 남태희는 중원 장악에 도움을 주지 못했고, 황인범은 사실상 4-1-3-2 포메이션 시절처럼 혼자 중원 장악을 맡아야 했다. 이날도 한국의 패스 전개는 잘 되지 않았다.

황인범은 E1 챔피언십에서 공격과 수비를 오가며 한결 개선된 경기력을 보였다. 특히 일본 상대로는 한국의 이번 대회 유일한 필드골을 넣었을 뿐 아니라 패스, 압박 등 모든 면에서 수준급이었다. 왼발과 오른발로 모두 패스와 슛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선보였다.

지나친 체력적, 정신적 부담에서 벗어나다 플레이의 질이 향상됐다. 전투적이면서 패스 능력을 갖춘 손준호와 주세종은 황인범의 부담을 크게 덜어줬다. 황인범은 공격 상황에서 섀도 스트라이커처럼 전진해 득점을 지원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황인범은 “과감한 플레이를 해야 내 장점이 나온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이 기존에 요구했던 것처럼 빌드업 기점 역할을 황인범이 도맡았을 경우에는 안정적인 패스가 필수적이다. 황인범이 모험적인 플레이를 해도 문제없는 선수 구성이 됐을 때 역량이 제대로 발휘됐다. E1 챔피언십은 벤투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유닛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확인시켜준 대회였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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