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인종차별이 축구계로 유입되고 있다

[풋볼리스트] 루크 부처(칼럼니스트)= ‘2019/2020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16라운드에서 또 인종차별 사건이 발생했다. 8일 새벽 2시 30분(한국시간) 맨체스터 더비에서 맨체스터시티 팬이 프레드를 향해 원숭이 흉내를 내며 조롱했다. 또한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에서 13세 번리 팬은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제스처를 했다. 이번 시즌에는 이미 이런 수치스러운 행위가 많았다. 영국축구의 인종차별이 증가하고 있는 건 더 큰 사회문제의 증상이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레전드’ 게리 네빌은 맨체스터 더비에서의 사건에 대한 발언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네빌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축구계의 인종차별을 부추겼다고 했다. 해설가로서는 이례적인 정치적 발언이었다. 네빌은 ‘스카이스포츠’ 방송에서 “총리 토론에 나온 총리가 '이 나라에 이민 오는 사람들은 일정한 수준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으며 이런 것이 인종차별에 기름을 붓고 있다"고 말했다. 인종차별이 사회로부터 축구로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네빌의 말은 물론 영국에서 매우 논란이 됐으나, 또한 많은 지지를 받았다. 영국 내무부에 따르면 인종차별은 최근 몇 년 동안 상승 추세에 있으며, 경찰이 기록한 증오 범죄는 2012/2013 이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영국 이민을 반대하는 정치 환경이 조성된 뒤 인종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축구 선수들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제스처와 발언을 해대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점점 더 자신감을 갖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킥 잇 아웃(Kick it Out, 영국 축구 반인종주의 단체)’에 따르면 2018/2019시즌 프로 축구와 아마추어 축구의 차별은 32% 증가했으며, 인종차별 사건이 7년 연속 증가했다. FA컵 4차 예선전에서 준프로팀이 거듭된 인종 차별적 행위를 당한 끝에 두 팀 모두 선수들을 철수시키는 등 세간의 이목을 끄는 사건도 있었다.

이번 시즌 손흥민을 향한 인종차별은 처음이 아니었다. 11월 4일 구디슨 파크에서 손흥민이 퇴장당했을 때 한 에버턴 팬이 인종차별의 의미를 담아 눈을 찢는 ‘아시안 제스처’를 했다. ‘더 선’을 포함한 영국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뒤, 에버턴 구단은 팬을 비난하며 인종차별에 대해 "우리 경기장과 우리 클럽, 우리 지역사회, 축구에서 설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냉엄한 현실은 인종차별이 다시 한 번 영국 축구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에도 손흥민에 관한 사건이 있었다. 2018년 10월 웨스트햄과 경기를 마친 뒤 한 팬은 손흥민에게 “DVD를 구해줄 수 있느냐”고 발언했다. 영국에서 아시아 이민자들이 DVD를 불법으로 판매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이 팬이 184 파운드(약 28만 원) 벌금을 물었고 웨스트햄은 무기한으로 경기에 입장을 금지했는데 반복되는 사건에도 웨스트햄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10월 불가리아 소피아의 스타디온 바실레브스키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불가리아의 유로 2020예선 경기에서 불가리아 팬들이 인종차별 행위를 저질렀다. 잉글랜드의 흑인 선수들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경기가 두 번이나 중단됐다. 영국 선수들과 언론의 분노는 컸고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유럽축구연맹(UEFA)에 불가리아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그런데 위선적인 건, 인종차별주의는 영국 내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 FA가 충분히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잉글랜드 감독 개러스 사우스게이트가 한 말이 눈에 띄었다. “슬프게도, 우리나라에서 경험해 왔기 때문에 우리 흑인선수들은 인종 차별에 대해 익숙해졌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잉글랜드가 다른 나라들을 비판하려면 스스로 가진 문제도 해결해야 할 것 같다. 1970, 1980년대에 영국 축구에 널리 퍼졌던 인종차별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EPL은 더 빨리 행동해야 한다. 젊은 팬들과 선수들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 인종차별 행위를 하는 선수들과 팬들에 대한 더 강력한 금지, 그리고 무관중 경기를 포함해 팀에 대한 더 가혹한 처벌이 필요하다.

영국과 같은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그리고 EPL처럼 다양성이 높은 리그에서 인종차별이 다시 증가하고 있는 것은 당혹스럽다. 인종차별이 사회로부터 축구로 들어오고 있으나 축구 공동체가 저항하여 인종차별이 축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빌이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인종차별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기 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폭넓은 대화가 필요하다.

* 컬럼니스트 루크 부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근무하는 영국인이다. 2009년 한국에 처음 도착해 지금은 8년차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30년 넘게 노리치 시티 팬이며, 현재 노리치 팬진에도 글을 쓰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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