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VAR, 정말 엉망이예요

[풋볼리스트] 루크 부처(컬럼니스트)= 바야흐로, VAR 실험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걸 인정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지난 주말 EPL 10라운드의 주인공은 비디오판독(VAR)이었다. 영국의 축구 미디어 및 축구 전문가 대부분이 프리미어리그에 VAR을 적용하는걸 반대하고 있는데 지난 주말 결과는 나까지도 절망시켰다. 시즌이 개막될 무렵까지만해도 VAR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2019/20 시즌 현재 상황을 놓고 보면 VAR은 심판의 실수를 바로잡은 적도 있지만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급기야 지난 주말에는 영국 언론과 축구 전문가들이 크게 비판한 VAR 판정이 세 번이나 벌어졌다. 나 같은 노리치 팬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국시간 월요일 새벽에 열린 노리치와 맨유의 맞대결에서 VAR을 통해 나온 첫 페널티킥에 크게 실망했다. 맨유의 다니엘 제임스가 노리치 수비수에게 몸을 기울여 넘어졌지만 심판은 당초 페널티킥을 선언하지 않았다. 하지만 3분이나 걸린 VAR 판독 결과 패널티킥이 주어지는 것으로 번복이 되었는데 영국 스카이스포츠의 해설자는 이를 두고 "말도 안돼!"라는 멘트를 남겼다. 노리치 팬들은 다들 여기에 동의했다.

VAR 입장에선 다행스런 일이지만, 이날 노리치 수비는 VAR보다 더 좋지 않았다! 그래서 VAR의 잘못된 결정이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는 심판이 놓쳤던 노리치 선수의 핸드볼이 VAR 판독을 통해 페널티킥 판정으로 이어진 사례가 나왔기 때문에 VAR의 장점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경기에서는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의심스러운 VAR 판정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노리치-맨유전과 동시에 진행된 아스널-팰리스 전에서 비슷한 착오가 나온 것이다. 경기 초반, VAR은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정당하게 페널티킥을 선언했는데 아스널이 후반 37분 2-2 상황에서 넣은 골이 VAR 끝에 취소가 된 것이다. 주심은 VAR을 통해 아스널의 체임버스가 팰리스 수비수에게 반칙을 했다고 판정했지만 이 장면을 수 십 번 돌려 본 나로선 이게 왜 반칙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또 하나는 뉴캐슬과 울버햄턴 경기에서 나왔다. 추가시간, 1-1 상황에서 뉴캐슬 수비수가 명백한 파울을 저질렀지만 VAR은 이걸 놓치고 말았다. 울버햄턴에게 페널티킥이 주어져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두 경기에서, 아스널과 울버햄턴은 VAR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중요한 승점을 날려버렸다고 여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프리미어리그에서의 VAR 사용에 제기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적용 기준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주심은 '명백하고(clear) 분명한(obvious)' 오심일 경우에만 판정을 번복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명백'과 '분명'이 VAR 체크룸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축구에서는 사실 명백한 상황이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VAR은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사용될 수 밖에 없다. VAR은 지금, 주관적인 판단을 객관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에 쓰이고 있는 셈이다. 지난 주말의 판정만 봐도, VAR이 심판의 명백한 오류를 규정하는 데에 일관성이 없어 보였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VAR은 올 시즌에 반칙보다 더 쉽게 판독이 가능한 오프사이드 상황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스털링(1라운드, 웨스트햄-맨시티)과 손흥민(6라운드, 레스터- 토토남)은 VAR 프레임 중 하나에 손톱만큼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잡혀 골이 취소되었다. 축구규칙에는 단순히 “(공격수가) 볼과 최종 두 번째 상대편보다 상대편 골라인에 더 가까이 있을 때"를 "선수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공격수의 눈썹이 수비수보다 더 골라인에 가까웠다면 오프사이드라고 해석해야 할까? 복잡한 문제다. 

원래 오프사이드는 ‘Goal hanger’ 즉, 공의 위치와 상관없이 골대 근처에 계속 머무는 공격수를 없애기 위해 도입한 규정이다. 그런데 이제는 공이 발길질된 정확한 순간과 수비수와 공격수 사이의 간격을 재기 위해 (무려) 3분 동안이나 리플레이를 보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오프사이드 판독은) 보는 각도나 카메라 성능에 따라 달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간단히 말하면, 이건 축구가 아니다. 경기에 중단지점이 많은 야구에서는 이러한 기법의 적용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1루에 공이 먼저 도착했는지, 타자가 먼저 도착했는지 파악하는건 단순한 문제니까. 하지만 축구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축구의 재미를 크게 떨어뜨린다. VAR을 쓰려면 (그게 정말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에 맞게 규칙도 바꿔야 한다. 

물론 VAR이 명백한 실수를 없앨 수 있다면 그건 축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아주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만일 VAR이 두 번에 한 번 꼴로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있으나마나 한 것이다. VAR의 가장 큰 장점은 공정성과 정확성의 향상이지만, 단점은 경기 속도를 늦추고 직관하는 팬들의 긍정적인 경험치를 떨어뜨린다는 데에 있다.  VAR은 심판만큼 정확하지 않다면 존재이유가 없는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VAR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많은 팬들은 VAR 사용을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도입된 VAR을 다시 없애는건 쉽지 않아 보인다. 내 생각엔 VAR를 개선할 방법엔 크게 세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첫째, 경기장에 있는 팬과 심판, 모든 관계자들이 볼 수 있도록 경기장 스크린에서 VAR 리플레이를 보여줘야 한다. 투명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고 심판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한다. 둘째, 경기장에 있는 심판과 VAR 심판 간의 논의 방식을 개선하고 한 심판이 다른 한 심판보다 훨씬 우월한 권한을 갖는 대신, 서로가 대등하게 논의하여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명백한 오류'인지 판단하려 애쓰기 보다는 VAR에 보이는 것 그대로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축구는 언제나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경기 맥락에 따라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

현재 상황에선 VAR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 동의해야 한다. 오히려 VAR로 인해 팬들의 분노만 키우고 있는 셈이다. VAR의 EPL 도입을 열렬히 기대했던 사람이지만, 지금으로선 주심들의 판정에도, 축구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VAR을 개선하거나 아니면 포기하거나, 선택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 컬럼니스트 루크 부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근무하는 영국인이다. 2009년 한국에 처음 도착해 지금은 8년차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30년 넘게 노리치 시티 팬이며, 현재 노리치 팬진에도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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