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축구 감독의 세계에도 무협지처럼 문파가 있다면, 요즘 잘 나가는 문파는 ‘클롭파’다. 리버풀을 지난 시즌 유럽 정상으로 이끈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감독으로 꼽힌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동료들까지 속속 독립해 성과를 내는 것이 요즘 흐름이다.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에도 클롭 감독의 동료가 합류했다. 클롭과 무려 25년 알고 지내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콜린 벨 신임 감독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최초 외국인 사령탑인 벨 감독이 17년 전 거스 히딩크가 남자대표팀에 해 준 것처럼 전환점을 만들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2019년 히딩크의 조건은 ‘클롭 스타일’일지도 모른다.

 

'세계 1등 명장' 클롭과 25년 인연

벨 감독은 친근한 태도로 먼저 한국 축구계에 다가갔다. 자신을 처음 알리는 22일 기자회견장에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저는 콜린 벨입니다”라고 인사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회견 마지막에 “감사합니다”라는 한국어 인사를 한 뒤에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과 악수하겠다고 자청해 일일이 눈을 맞추고 나갔다.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벨 감독의 장점으로 ‘친화력’을 거론할 만했다.

벨 감독은 친화력을 강조하는 축구 철학을 갖고 있다며, 이를 클롭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2001년부터 4년 동안 마인츠05 2군을 맡았던 벨 감독은 당시 1군 감독이었던 클롭과 동료였다. 벨 감독은 클롭과의 인연이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클롭과 25년 동안 알고 지냈다. 2001년에 마인츠 2군 감독으로 부임해 매년 두세 명은 1군에 올려 보냈다. 클롭과 축구 철학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 벨 감독은 “가장 중요한 건 선수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야 선수의 역량과 전술을 논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클롭 감독은 세계 최고다. 선수들의 마음을 얻어야 팀 컬러에 녹아들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클롭 감독은 높은 템포와 에너지를 원했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여자대표팀도 그런 역량과 재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이야기했다.

 

클롭의 코치 출신들이 주목받는 유럽축구 흐름

클롭 감독의 ‘문하’에서 파생된 아류 감독들은 최근 빅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다비드 바그너 샬케04 감독은 선수 시절 클롭의 동료였고, 지도자 전업 후 보루시아도르트문트 2군에서 클롭을 보좌했던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잉글랜드의 허더스필드타운(2015~2019)을 이끌며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달성했다. 지난 시즌 막판부터 독일 명문 샬케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한네스 볼프 전 함부르크 감독 역시 도르트문트 시절 클롭을 보좌하는 유소년팀 감독으로 활약했으며, 이 경험을 밑천 삼아 프로 감독으로 독립했다.

클롭 감독에게 전술 철학이 아니라 선수에게 다가가는 법을 먼저 배웠다고 하는 건 볼프, 바그너, 벨의 공통점이다. 클롭 감독은 선수뿐 아니라 모든 관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리버풀 훈련장을 찾은 한국인 팬들에게 먼저 “오, 코리아? 차범근? 차두리?”라고 말해 감동시킨 일화가 있을 정도다. 벨 감독이 취재진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 역시 일종의 ‘클롭 스타일’이었다.

클롭과 인연이 있는 감독들은 모두 한국 선수와 한 번 이상 인연을 맺었다는 점도 묘하게 닮아 있다. 클롭은 차두리, 이영표, 지동원을 영입한 바 있다. 바그너 감독은 지동원이 도르트문트 2군으로 내려갔을 때 감독으로서 지도했다. 볼프 감독은 지난 시즌 중간에 함부르크에 부임해 황희찬과 인연을 맺었다. 벨 감독은 차두리가 코블렌츠에서 뛰던 시절(2007~2009) 코치였고, 이번에 아예 한국 땅을 밟았다.

 

“2002년처럼” 여자 대표선수들이 외국인 감독을 원했다

김 위원장은 여자대표팀 최초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이유를 밝히며 “2002년”을 거론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을 지휘하며 한국 축구계에 충격을 준 것처럼, 벨 감독이 한국 여자축구계를 업그레이드시켜줄 거란 기대가 있다.

“여자축구 현장에서 만난 분들은 다들 한국축구를 잘 아는 국내 지도자가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딱 한 분께서, 2002년의 예를 들면서, 한 번쯤 외국인 감독이 와서 발전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한국에서 길을 걸어오신 분들을 격려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이젠 외국 감독님을 모셔서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다른 축구 수준을 접목할 기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장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벨 감독이 3년 정도 길게 보고 한국을 더 발전시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자 대표 선수들도 외국인 감독을 원했다. “선수들의 어필도 있었다. 좋은 서비스(감독의 지도)를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 여자축구계가 ‘우물 안’처럼 굳어지는 것을 우려해 세계수준을 접목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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