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류청 기자= 최인철 여자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임기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자진 사퇴한 것은 단순히 인사 실패가 아니라 한국 여자축구 전체 문제의 결과물로 봐야 한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지난 3일 최인철 전 현대제철 감독을 신임 여자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최 감독은 이미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었고 현대제철에서 WK리그 6연패를 달성했기에 능력과 의지 면에서 모두 다른 후보자들보다 월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최 감독은 폭행과 폭언을 이유로 일주일 만에 사임했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은 “최 감독이 준비해 온 프레젠테이션을 보면 현재 국가대표를 (정확히) 평가하고 미래 목표 지점까지 잘 설정을 했었고, 현재 세계 축구 트렌드도 어떤지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기술적인 역량 면에서는 월등했었다”면서도 “강성이미지가 약점이라는 것도 알았다”라며 선임 과정에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게 있었다고 인정했다.  

김 위원장은 최 감독이 과거 실수를 털어놨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면서 이 부분을 세심하게 들춰보지 않았다. 현대제철 선수들을 불러서 의견을 듣는데 그쳤다. 최 감독이 지휘하는 팀 선수들을 불러 감독이 지닌 단점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 여자축구와 WK리그 현실을 봤을 때, 현재 함께 생활하는 감독이 지닌 단점, 그것도 예전 일을 선수들이 말하기는 어렵다.

이번 인사 실패를 인정하는 선에서 일을 매듭 지으려 한다면 나아질 것이 없다. 이번 일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한국 여자축구 현실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지난 2010년, 한국 여자 U17팀은 남자팀도 못한 FIFA 주관대회 우승을 차지했었고, 같은 해 지소연이 주축이 된 U20팀은 U20 월드컵에서 3위에 올랐다. 성적이 좋으니 문화체육관광부는 '여자축구 활성화 지원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2013년까지 총 49억 8천만 원을 지원해 당시 57개였던 여자축구팀을 2013년까지 102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이었다. 계획은 원대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시에도 고압적인 지도 방식과 폭언 그리고 폭행을 고치지 않고는 여자축구 저변을 넓힐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문체부와 대한축구협회는 숫자에만 신경을 썼다.

한국 여자축구 하부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대표팀도 바꿀 수 없다.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한 여자축구 관계자는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학교 팀을 맡은 지도자들이 폭언을 넘어선 발언을 하는 일이 잦다”라고 말했다. 불만이 바깥으로 나오기도 어렵다. 학교는 축구팀을 맡아주고 있는 객체에 불과하다. 추문이 나오면 학교는 손쉽게 해체를 선택할 수 있다. 지도자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에 대해 항의하기 힘들다. 감독은 사실상 선수의 생사여탈권을 지닌다.

더 문제인 것은 폭력과 폭언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선수들은 나중에 이런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가능성도 크다. 최 감독 자진사임을 두고 여자축구계 의견이 양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 감독에 대한 처사가) 너무하다. 그 정도도 안 하면 어떻게 지도하느냐’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 자신을 포함해 (지도자) 모두가 10년, 20년 전 일을 들춘다면 (그 부분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나?”라는 김 위원장의 말은 현실적이다. 하지만, 폭언과 폭력은 10년 혹은 20년 전 일이 아니라 현실이다. 최 감독의 폭언과 폭력에 관한 기사에 반복적으로 달린 댓글은 의미심장하다. ‘경기장에 한 번만 가도 알 수 있는 것을 협회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내용이다.

이번 일은 여자축구 전체를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학교 중심의 시스템을 클럽으로바꾸고, 지도자 수준을 개선하고, 저변을 확대하는 일은 모두 시작점이 같다. 구멍 난 인사 시스템이 아닌 전반적인 여자축구 구조를 살펴볼 때다. 최 감독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여자축구 전체의 문제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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