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최준은 “U20 월드컵의 최대 발견”(동료 정호진)이라 불리는 선수다. 측면 수비수로 전향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연세대에서 뛰어왔기 때문에 그리 주목받지 못했지만 ‘2019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보여준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공격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이태원에서 다시 만난 최준과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최준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 최준의 가족이 축구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중학생 때 당한 큰 부상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롤모델은 누구인지, U20 월드컵 동료 이규혁과 어떻게 서로를 보듬어줬는지, 그리고 이강인에게 어떤 ‘만행’을 당했는지 이야기하며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최준과 나눈 이야기를 간추렸다.

 

폴란드에서 운동복 입은 모습만 보다가 처음 사복 입고 만났네요. 튀는 스타일은 아니시군요.

전 그냥 편하게 입는 게 좋아요. 튀는 옷 좋아하는 선수는 강인이? 걔는 좀 이상한 패션이에요. 파주에 처음 소집될 때 보셨죠? 청바지에 자켓을 입고 모자를 썼는데 그게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었어요. 다들 보자마자 첫 마디가 ‘옷 뭐냐?’였어요. 잘 챙겨 입는 애라면 (이)재익이와 (이)지솔이. 걔네들은 키도 크고, 아시죠? 생긴 것만 봐도 신경 좀 쓰게 생겼잖아요.

 

준우승 직후엔 분위기가 안 좋았죠. 가장 주목 받는 경기에서 패배한 거니까, 모든 준우승팀은 다 그렇더라고요. 그 뒤로 수많은 축하를 받았으니 이젠 기분이 나아졌을 것 같아요.

딱 2등을 하고 나서, 애들과 ‘아 이런 기분일 줄 알았으면 차라리 3위가 낫겠다. 3위는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마치는 거잖아’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다들 가라앉아있었죠. 그런데 한국 와서 생각해보니까 아닌 것 같아요. 대통령님이나 유명하신 분들이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시는 걸 들으면서 역사에 남을 경기를 한 게 맞구나 싶어요. 이제야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제대로 들어요.

 

대회 이후 단톡방은 활성화되어 있나요, 아니면 말을 안 하나요?

단톡방이 없어지면 대회가 완전히 끝나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아무도 안 나가고 자주 이야기 해요. 강인이가 글을 많이 올리고, 지솔이도 많이 하고요. 이젠 축구팀이 아니라 친구들 단톡방 같은 게 됐죠. 사소한 것 가져와서 서로 놀리는 곳이요. 지솔이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굳이 안 올려도 되는 걸 많이 올리거든요. 주로 (조)영욱이 형이 지솔이 인스타를 캡쳐해 와서 ‘그만 좀 해라’라고 놀리죠. 얼마 전 영욱이 형이 햄스터 인형을 올리며 슈팅햄스터라고 그랬는데, 지솔이가 바로 그걸 캡쳐해 와서 반격했어요. 여러분, 지솔이는 전형적인 관심이 필요한 친구입니다. 관심 좀.

 

앞으로 황태현 선수 주도로 ‘정모’도 한다고 들었어요. 황태현 선수는 정말 매사 진지하기만 한 주장이었나요?

그래서 장난 칠 땐 태현이 형에게 안 가요. ‘형 아~’ 이러면서 엄살을 떨면, 태현이 형은 ‘왜? 힘든 일 있니? 괜찮니?’ 이러니까 못 가죠. 그래서 저는 지솔이에게 주로 갔어요. 제가 ‘어~’ 하면 지솔이는 ‘어어어~’ 하면서 바보 같은 소리를 함께 내다가 갑자기 몸싸움도 하고. 그래야 장난이니까요.

 

이강인 선수가 이번 인터뷰에서도 계속 소환되고 있는데, 정말 비정상인가요?

제일 비정상인 게 강인이일 거예요. 자신은 모르죠. 강인이가 한국말을 어눌하게 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래서 어려운 단어의 뜻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갑자기 맥을 끊고 다른 이야기로 넘겨 버려요. 축구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데 강인이가 배구 이야기를 한다거나. 맥을 뚝뚝 끊어요.

 

이강인 선수에게 당한 일화가 하나씩 있던데요.

저도 당했죠. 멍하니 서있는 저에게 와서 뒷목을 손바닥으로 따악! 때려요. 자주. 회복운동 하고 나서 다른 선수들 훈련을 보고 있으면, 절 때린 다음에 제 어깨에 팔을 걸치면서 ‘왜 혼자 서 있어?’ 이래요. 처음엔 영욱이 형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면 키도 작은 게 팔을 억지로 올려서 제 목에 걸치고 있더라고요. 황당했는데 모든 선수에게 다 그러니까 익숙해져서 그땐 다들 괜찮았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모교 방문을 하다 보니까 ‘내가 현대고 3학년일 때 1학년이 내 뒤통수를 때린 것과 마찬가지잖아? 말도 안 되는 짓이었네’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U20 월드컵에서 출장하지 못한 걸로 화제가 된 이규혁 선수가 ‘최준이 날 응원해준다’고 한 적 있어요. 이규혁 선수에게 ‘언제든 내가 빠질 수 있으니 잘 준비해둬라’라고 말해줬다면서요? 정말로 결승전에 이규혁 선수가 투입됐죠.

사실 제가 이 팀에 처음 선발됐을 때 주전은 규혁이였죠. 규혁이가 먼저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제가 뒤늦게 합류한 팀이에요. 그때 저는 사이드백으로 전향한지 얼마 안 됐을 때라서 규혁이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어요. 규혁이가 계속 가르쳐줬고, 제게 말해줬어요. ‘자신감을 가져. 언제든 네가 날 밀어내고 들어올 수 있으니 준비해 둬.’ 전 이번에 그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뿐이에요. 저에게는 힘이 되는 친구죠. 규혁이는 원래 멘탈이 약해요. 이번 대회에 탈락할 뻔하다가 극적으로 합류하면서 많이 강해진 것 같아요. 규혁이가 먼저 ‘못 뛰는 사람들 기분 나빠하지 말자’는 말을 해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경기 뛰는 선수가 그런 말 하면 이상해졌을 텐데.

축구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첫 경기에서 주로 상대한 선수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소속인 디오구 달로트였죠. 맨유 대 연세대라는 대비 때문에 주목 받았는데, 최준 선수가 생각보다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처음엔 세계적인 선수들 앞에서 볼 터치도 제대로 못할까봐 걱정이 많았죠. 포르투갈전에서 달로트와 정면으로 맞닥뜨린 적이 한 번 있어요. 그런데 한국 선수들과 똑같이 서서 수비하덜고요. 제가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크로스 올릴 타이밍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큰 격차가 없구나, 이번 대회에서 할만 하겠구나’ 싶었죠.

 

본인 골과 어시스트 장면은 몇 번 봤어요?

골 장면을 보려고 할 때마다 골보다 많이 나오는 게 있어요. 강인이의 그 연기 있잖아요. 제 골을 보려면 강인이가 얼굴에 손 대고 있는 그 연기를 비롯해서 사전 과정을 1분 정도 봐야 돼요. 그래야 제 골이 5초 나와요. 그러면 리플레이에서 연기가 또 나와요. 아, 이건 강인이 패스 스페셜이구나, 깨달았죠. 그리고 (16강 일본전 어시스트) 크로스 장면은 사실 제 의도대로 된 게 아니에요. 공이 일자로 날아가더라고요. 어떻게 된 건지 저도 궁금해서 많이 돌려봤어요. 사실 (오)세훈이 키를 살리기 위해 띄워서 주려고 했는데, 찰 때 잔디와 함께 찼거든요. 방향은 맞았지만 높이가 안 맞아서 아차 싶었는데 세훈이가 잘 넣어 줬어요.

 

울산에 우선지명 돼 있고, 내년부터 프로에서 뛸 거라는 전망이 있어요. 이번 대회를 통해 프로 무대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을 것 같아요.

프로는 다른 곳이잖아요. 배운다고 생각해야지, 너무 자신감이 넘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다 경기 못 뛰면 슬럼프가 올 수 있으니까. 프로 가면 무조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가야죠. (하긴 선수도 프로 데뷔전에서 4실점하며 고생했죠) 폴란드였다면 한두 개는 막을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뒤로 ‘강연아 방송 그만해라. TV 그만 나올 때 됐다’ 이런 장난으로 마무리해 줬어요. 이제 라디오스타 녹화할 때 할 말도 정해져 있죠. ‘4골 먹혔는데 여기 있어도 되냐?’ (최준은 인터뷰 다음날 MBC ‘라디오스타’를 위한 녹화를 진행했다)

 

세계 무대에서 부족하다고 느낀 점도 있나요?

제 크로스가 아시아에서는 정확했는데, 월드컵에서는 상대 선수들의 크로스를 보니까 ‘내 크로스는 장점이라기엔 멀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우리 팀에 크로스가 장점이라는 선수가 많거든요. 특히 사이드백 4명(이규혁, 황태현, 이상준) 다 그랬는데 유럽과 부딪쳐 본 뒤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걸 다들 느꼈어요. 그리고 수비는 늘 발전시켜야 하고. 대학교 코치님께서 측면수비 출신이셔서 U20 대회 중에도 계속 조언을 들었어요.

 

그게 많은 축구팬들이 궁금해 하는 점인데요. 최준 선수뿐 아니라 한국 선수들은 대표팀만 가면 크로스가 부정확해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압박감 같아요. 아시아에서는 약하게 올려도 된다고 생각해서 상황에 맞춘 자연스런 동작이 나와요. 그런데 세계대회에서는 상대 센터백들이 크니까 더 강하게, 더 정확하게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해져요. 세훈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몸에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발에 공이 한 번 맞을 때마다 ‘아, 이렇게 맞으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바로바로 들었죠. 속으로 화가 올라와요. 원하는 킥이 안 되면 경기 중에 짜증이 나요. 앞으로 크로스 연습을 더 해야죠. 압박감 속에서도 정확하게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을 올려야죠.

 

대회 중 최준 선수 가족 인터뷰가 화제였어요. 할아버지, 아버지, 형 모두 축구선수 출신이시라고.

신문에 부모님이 나오시는 줄도 몰랐어요. 형이 저에게 가족사진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자기 인스타그램에 올리려는 줄 알았어요. ‘보통 누나가 찍으니까 누나에게 물어봐’라고 했는데. 이틀 뒤에 네이버를 보니까 기사가 나왔더라고요? 신문도 나왔고 울산 방송도 나왔고요. ‘왜 나한테는 기사 나온다고 말을 안 해줘?’라고 물어봤더니 ‘어차피 네이버 보잖아’라더라고요.

 

경상도 남자들답네요. 축구를 시작한 것이 형의 영향이라면서요.

제가 축구를 시작한 뒤 형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대요. ‘동생이 늦게 시작했는데 축구 더 잘 하네’라는 말을 많이 들었으니까. 형은 학성고에 다녔고 저는 현대고 갔거든요. 학성고도 좋은 학교인데, 주위 사람들이 울산 유스인 저와 자꾸 비교하게 되잖아요. 형이 축구 그만둔 뒤에 아버지가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힘들어했다고. 저는 형이 축구 잘 하니까 따라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그런데 형은 축구를 관두고 난 뒤에도 아무런 원망을 안 하고, 오히려 ‘내가 못 한 걸 이뤄줘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해요. 축구 이야기는 주로 형과 해요. 제가 축구를 그만두고 싶어 할 때도 형이 ‘넌 나와 똑같은 사람이 되면 안 돼’라고 해 줬어요. 형이 힘을 북돋워 줬어요. 월드컵 끝난 뒤에도 형이 ‘넌 정말 자랑스러운 동생이다. 형이 해 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해 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형은 엄청나게 고맙고 미안한 존재죠.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다는 건 중학교 3학년 때 당한 부상 이야기인가요?

중학교 춘계 대회 때 두 명이 동시에 태클을 했어요. 제가 치고 가는 순간에 앞에서 한 명, 뒤에서 한 명이 동시에 태클을 하니까 그 사이에 낀 발목뼈가 부러졌죠. 물어물어 알아보니 저를 ‘담가버리려고’ 했다더라고요. 잠깐 쉬게 만들고 싶었겠죠. 앞쪽 뼈가 부러져서 가라앉았고, 다른 뼈도 다 부러졌어요. 깁스를 3개월 정도 했고, 완치에 6개월 정도 걸렸어요. 뭐, 좋게 생각하면 그때 운동을 안 한 덕분에 10cm 컸어요.

부상 후유증이 한동안 심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닿을 리 없는 태클을 만나도 무조건 공을 버리고 점프를 해 버리니까 코치님께 혼나기도 했죠. 원래 저학년은 경기 뛰기 힘든 법인데 저는 트라우마 때문에 더했죠. 그때 형이 ‘트라우마가 있으면 강하게 한 번 부딪치는 것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하더라고요. 태클 들어올 때 마음먹고 한 번 부딪쳐봤는데 오히려 안 아프더라고요. 그렇게 극복했어요. 그것도 형 덕분이었죠.

 

정말 이번 대회가 할아버지, 아버지, 형의 한풀이가 됐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선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전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더 오랜 기간 동안 축구선수로 살 수 있어야 돼요. 은퇴할 때가 됐어야 가족의 한을 풀었다고 느낄 것 같아요. 최대한 오래 선수 생활을 하고, 그 경력이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좋아야만.

 

스스로 만족할 정도라는 건 어느 정도 경력인가요?

이용 선수처럼 K리그 사이드백 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돼야 부모님의 한을 푸는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백’이에요. 제가 울산 유스일 때 볼보이 하면서 자주 봤는데, 그때 전 공격수였으니까 롤모델이 아니었어요. 잘하는 선수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포지션을 사이드백으로 바꾸고 나서 선배들 영상을 찾아보다보니까 자주 보게 됐어요. 한국에서 사이드백 하면 떠오르는 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사진= 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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