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유지선 기자= U20 월드컵을 마친 뒤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던 캡틴 황태현(20, 안산그리너스)이 ‘2019 폴란드 U20 월드컵’ 뒷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의 황태현은 U20 대표팀 선수들 사이에서 ‘재미없는 애’로 통한다. 그러나 주장으로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하고, 뒤에서 선수들을 두루 살피는 황태현 덕분에 U20 대표팀은 진짜 원 팀이 될 수 있었다. 정정용 감독도 그런 황태현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마음속의 MVP”로 꼽았다.

‘2019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폴란드에 머물며 취재진 중 가장 오래 U20 대표팀을 취재한 풋볼리스트는 아직 풀리지 않은 궁금증들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일 주장 황태현을 만났다. 황태현은 공개석상에서 정석에 가까운 답변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주장으로 어떤 선수보다 팀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우리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시켜줄 선수로 제격이다.

황태현은 박수 속에서도 홀로 비난을 받으며 마음껏 웃지 못했던 선수들을 바라보던 심경부터 이강인과의 에피소드, 세네갈전 승부차기 뒷이야기 등 U20 대표팀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명승부로 남을 세네갈과의 8강전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혈투가 펼쳐졌지만, 황태현은 승리를 일찌감치 직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팀 아닌 개인 향한 화살, 누구보다 마음 아팠던 주장 황태현

황태현은 U20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온 뒤 “비난도 칭찬도 개개인이 아닌 팀을 향해 해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정용호가 U20 월드컵 준우승이란 값진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선수들에게는 비난의 화살이 향했다. 비난에 고개를 떨구는 동료 선수들을 곁에서 지켜보던 황태현은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함께 고생해온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전세진, 김정민 등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선수들이 있다. 현장에서도 훈련할 때 가장 힘들어보였다고 하던데 주장으로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둘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 입장에서는 너무 가슴 아팠고 힘들었다. 내색은 못했지만 말이다. (전)세진이와 (김)정민이도 팀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경기에 뛰든 안 뛰든 경기장 밖에서도 작용하는 부분들이 많다. 힘든데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희생해줬다. 너무 고맙다.

선수로서 팬들의 비난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가족들도 보기 때문에 예민하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루는 (김)정민이가 자신의 SNS 계정에서 팬들끼리 댓글로 싸운다고 하더라. 나도 놀라서 들어가 봤다. 정민이를 비난하는 분들과 옹호하는 분들이 싸우고 있더라. 우리는 U20 팀으로 대회를 나간 것이다. 특정 인물보단 비난을 하더라도, 격려를 하더라도 개인이 아니라 U20 팀을 향해 해주셨으면 좋겠다.

- 특히 전세진은 ‘내가 못해서’라는 말을 자주 하더라.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세진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월드컵이라는 무대를 밟지도 못했을 것이다. 챔피언십(월드컵 예선) 때 5골을 넣으면서 가장 활약하지 않았는가. 그 덕분에 우리가 U20 월드컵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다. ‘내가 못했다’고 생각하기보다 이번 대회에서 컨디션이 좀 안 좋았다 정도로 정리하면 될 것 같다.

- 주장답게 경기 도중에도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더라. 결승전 실점 장면에서도 실망한 선수들을 다독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휘슬이 끝날 때까지는 실점 장면이나 특정 상황을 생각하면서 힘들어하지 말고, 경기를 마친 뒤 웃을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선수들에게 항상 말했었다. 결승전 당시에도 골을 내주긴 했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까지 주저앉아 버리면 안 되지 않는가. 또 한국 팬들만큼 열심히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없더라. 거기서 힘을 많이 받았다.

# 명승부로 남은 세네갈전, 황태현이 승리를 확신한 이유

U20 대표팀이 치른 경기들 중 가장 극적이었던 경기는 바로 세네갈전이다. 8강에서 세네갈과 만난 한국은 1-2로 끌려가던 후반 추가시간 이지솔이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고, 3-2로 앞서던 연장 후반 추가시간에는 통한의 실점을 내줘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한국은 1,2번째 키커가 실축하면서 8강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이광연의 선방과 VAR 효과를 톡톡히 봤고, 결국 8강 진출을 이뤄냈다. 극적인 요소는 다 갖춘 경기였다.

- 세네갈전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야말로 명승부였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했는데 당시 순번은 어떻게 정했나? 5명 이후에 본인은 몇 번째 순번이었는지?

코칭스태프가 승부차기 키커로 원하는 5명을 종이에 적어서 주셨다. 나중에 코칭스태프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니까 저에게 6,7번째를 맡기려고 했다고 하시던데 사실 이후 순번은 정해져있지 않았었다. 잘 차는 것을 떠나서 자신 있는 사람이 먼저 차라고 했다. ‘도저히 자신 없어서 못 차겠으면 그땐 형이 찰 테니까 말하라’고 하고 뒤에서 기다렸다.

- 제일 자신 있는 선수들이 먼저 찼는데, 첫 번째 키커(김정민), 두 번째 키커(조영욱)가 모두 성공시키지 못했다. 그때 당시 심정은 어땠는가?

너무 자신이 있었나보다.(웃음) 비록 두 선수가 실축하긴 했지만, 골키퍼 (이)광연이가 그런 상황에서도 웃고 있더라. 광연이를 보면서 ‘와, 저놈이 자신이 있나보다’ 싶었다. 그래서 그냥 광연이를 믿었다. 폴란드에 머물면서 할 것이 없어서 다른 팀들의 경기 중계를 항상 틀어뒀었다. 뉴질랜드와 콜롬비아의 16강 경기를 보게 됐는데, 콜롬비아가 승부차기에서 1,2번째 키커가 실축했는데도 8강에 올라갔다. 정민이가 못 넣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콜롬비아 선수들도 두 번을 먼저 놓치고도 올라갔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광연이 웃고 있는 거 보이지 않냐’고 말해줬었다.

- 조영욱, 오세훈, 엄원상 등 동료 선수들이 ‘막내 형’이란 별명을 얻은 이강인이 형들에게 선을 넘었던 에피소드를 하나씩 말하지 않았는가. 황태현 선수는 ‘문화적 차이’라고 정리하며 넘어갔지만 사실 황태현 선수도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다.

딱 한번 있었다. 폴란드로 떠나기 직전 슈팅 게임을 했다. 장난으로 진 팀이 골대 안에 들어가서 공을 맞는 벌칙을 걸고 게임을 했었다. 솔직히 들어가서 공을 맞으면 좀 그럴 것 같아서 처음에는 아니오를 외쳤는데 분위기상 하게 됐다. 결국 우리 팀이 졌다. (엄)원상이, (최)준이랑 같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강인이가 찬 공에 준이가 세게 맞았다. 그때는 화가 좀 났었다.

화를 가라앉힌 뒤 강인에게 ‘너 정말로 맞출 생각이었냐’고 물었더니, 절대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고, 원상이와 준이 사이로 차려던 공이 그렇게 된 거라면서 너무 죄송하다고 하더라. 우리가 살짝 화났던 것을 느꼈었나보다(웃음). 이후에도 따로 불러서 ‘형들 입장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하면 강인이가 또 잘 알아듣는다. 강인이가 형들을 진짜 많이 좋아한다. 강인이 스페인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보기로 했다.

- 이강인 선수는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는 황태현 선수에게 ‘애국가를 크게 불러 달라’는 말을 대신 해달라고 깜짝 부탁을 하기도 했다. 처음 보는 상황이었는데, 황태현 선수도 꽤 당황했을 것 같다.

깜짝 놀랐다. 강인이가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놀랍더라. 정말 좋은 취지 아닌가. 칭찬을 해주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당시 정말 깜짝 놀랐었다.

- 엄원상 선수가 인스타에 6명이 모여서 뒤풀이를 하는 사진을 올렸는데 어떤 상황이었는가? 미성년자인 이강인 선수 앞에만 콜라가 있어 팬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다.

6명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그날 서울에서 단체 회식이 있었다. 광연이 빼고 다 모였었고, 코칭스태프 선생님들도 6명 정도 오셨었다. 정정용 감독님은 지방에 계셔서 참석하지 못하셨다. 그날 좀 빨리 온 사람끼리 사진을 찍은 것이다. 강인이 앞에 콜라가 있었는데, 강인이는 정말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궁금해 하지도 않더라.(웃음)

- 오세훈 선수가 1999년생 선수들에게 형이라고 부르는데, 황태현 선수와는 사실 1999년 1월생으로 나이가 같지 않은가. 엄원상, 오세훈, 황태현, 조영욱 선수 사이에 '족보'가 꼬인 것을 걱정하는 팬들도 있던데?

생일은 우리 중에 원상이가 가장 빠르다. 원상이, 세훈이, 나, 영욱이 순서인데, 우리끼리는 족보 정리를 마쳤다. 세훈이가 계속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괜찮겠냐고 따로 물어보기도 했는데 괜찮다고 했다. 세훈이는 U17 팀에서부터 알던 친구다. 그때부터 세훈이가 형이라고 불렀는데 갑자기 말 놓고 ‘야’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하더라.(웃음)

사진= 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엄원상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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