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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월드컵 개최도시 기행] ① 렌과 브르타뉴, '자존심과 축구만은 우리가 최고!'
류청 | 승인 2019.06.03 07:49
목골 구조 가옥 앞에 선 르페르디 시장의 동상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을 완벽하게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 ‘풋볼리스트’는 여자월드컵 개최도시를 방문해 축구와 문화 그리고 음식을 모두 아우르는 기행기를 준비했다.

 

[풋볼리스트=렌(프랑스)] 류청 기자= “환영합니다. ‘2018/2019 프랑스컵(쿠프 드 프랑스)’ 챔피언 렌에 잘 오셨어요.”

 

렌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제라르 들로네 씨는 “우리는 프랑스 챔피언(Nous sommes les champions de France)”라며 활짝 웃었다.

 

조금 깊게 따지고 들면 프랑스 챔피언은 ‘2018/2019 프랑스 리그앙’을 우승한 파리생제르맹(PSG)이지만, 스타드렌도 챔피언이긴 하다. 렌은 프랑스 FA컵인 프랑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PSG를 꺾었다. 렌은 48년만에 프랑스컵을 가슴에 품었다.

 

렌 사람들은 48년만에 극적으로 우승컵을 차지한 것보다 PSG를 꺾었다는 데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제라르 씨는 “우리는 PSG를 꺾었다. PSG는 우리보다 엄청나게 돈을 많이 쓰는 팀이다. 게다가 수도 파리를 연고로 한 팀이다. 렌이 정말 대단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PSG에서 뛰지 못하는 ‘벌’을 받고 렌으로 이적한 뒤 PSG를 꺾은 아템 벤 아르파 사연도 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스타드렌이 홈 경기장으로 쓰는 로아종 파크에 가니 프랑스 챔피언에 관련된 상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 개최를 위해 팀의 상징은 모두 가렸지만, 구단 메가스토어만은 ‘자존심’을 계속해서 팔고 있었다. 제라르 씨는 서울에서 왔다고 하자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몇 석이냐고 물었다. 6만석이 넘는다고 했더니 “이곳은 3만석이지만 경기마다 꽉 찬다”라고 했다.

죽어도 자존심은 지킨다  

렌은 브르타뉴 지방의 주도다. 브르타뉴는 프랑스 서부에 바다 쪽으로 돌출된 반도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켈트족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지금도 브르타뉴는 공식 간판에 프랑스어와 브르타뉴어를 병기한다. 스타드렌이 쓰는 경기장 로아종 파크(Roazhon Park)도 브르타뉴어다. 렌을 브르타뉴어로 로아종이라고 부른다. 유명 택시회사 이름은 브레이즈 캡(Breizh Cab) 인데 이것은 브르타뉴어로 쓴 브르타뉴다. 공항에서 브레이즈 캡을 타고 숙소인 르 매직 홀(Hotel le magic hall)에 들어가니 환영선물로 스타드렌 열쇠고리를 준다.

 

역사적으로도 브르타뉴는 특별했다. 939년부터 1547년까지 브르타뉴 공국이었다. 이 시기에는 프랑스와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공국은 프랑수아 2세가 죽고 딸인 안느가 공국을 이어 받으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프랑스왕 샤를 8세가 거의 강제로 안느와 결혼하면서 브르타뉴 공작 작위를 얻은 것이다. 브르타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프랑스의 힘에 굴복했으나 자존심은 끝까지 지켰다.

그 상징적인 장소가 아직도 렌에 남아 있다. 렌 시청사 앞에는 당연히 기념물이 들어서야 하는 공간이 비어 있다. 몇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원래 안느와 샤를 8세가 결혼하는 것을 기념하는 조각상이 있었다고 했다. 렌 사람들은 이 석상이 안느가 살짝 무릎을 꿇고 샤를 8세에 순종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며 없애버렸다. 프랑스에 합병된 후에도 브르타뉴 의회(Parlement de Bretagne)는 파리에 있는 프랑스 중앙 정부가 내린 판결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렌 시내를 걷다 보면 특이한 모습을 한 동상을 볼 수 있다. 샹 자크 광장에 한 남자가 종이를 찢는 형상을 한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은 19세기 렌 시장을 지냈던 장 르페르디가 주인공이다. 르페르디는 시장으로 재임할 때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자코뱅당이 공포정치를 펼치던 시기를 겪었다. 그는 낭트의 도살자로 불린 장-밥티스트 카리에가 렌 시민 23명을 처형하라며 보낸 문서를 찢어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도 명예를 지킨 것이다.

목골 구조 가옥에서 영업하는 펍

목골 구조 가옥, 나이는 600살

렌은 특이한 목골 구조 가옥(프랑스어로 매종 아 콜롱바주(maison à colombages))로도 유명하다. 시내 중심부에는 아직도 나무로 뼈대를 만들어 세운 집(혹은 상점)이 많다. 브르타뉴에서 목골 구조 가옥이 가장 많은 곳이 렌이다. 400년에서 600년 전까지 지어진 건물들이라 나무 뼈대는 곡선에 가까운 곡선이지만 나름대로 멋이 있다. ‘프랑스 오래된 가옥들(VMF)’이라는 단체 엠블럼이 붙은 집들도 있었다.

 

이 목골 구조 가옥은 1720년 대화재로 850채가 불탄 이후에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목골 구조 가옥은 렌의 명물이 됐다. 목골 구조 가옥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이 가옥 1층에 가게를 연 곳도 많다. 성 안느 광장에 가면 목골 구조 가옥 1층에 있는 커피숍과 술집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현대적인 건물과 목골 구조 가옥이 얽혀 있는 것을 보면 모자이크가 떠오른다. 렌은 모자이크로도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시청사 앞에는 '굴욕적'이라 없어진 동상 자리가 비어 있다

토요일에는 시내 중심부에 있는 리스 시장에 장이 선다. 생 말로로 떠나기 전에 직접 시장을 둘러봤는데 파는 물건과 건물 모습만 조금 다를 뿐 우리네 전통 시장과 다를 바 없었다. 브르타뉴 전 지역에서 올라온 식료품과 여러 물건들이 탁 트인 공간에서 새 주인을 찾고 있었다. 예전에는 마상 창 시합과 결투가 벌어졌던 곳에서 이제는 사람들이 만나 물건을 사고 판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갈레트와 사과주 조합은 ‘진리’

브르타뉴는 메밀로 만드는 갈레트로도 유명하다. 메밀을 갈아 반죽으로 만든 뒤 동그란 불판에 올려 구운 뒤 여러 가지를 넣어 만드는 음식이다. 밀가루로 만드는 크레프보다는 맛이 더 구수하다. 전통 방식으로 메밀을 갈아 낸다는 크레페리 뒤 퐁 레비(Crêperie du Pont Levis)를 찾아가니 사과주(Cidre, 시드르)를 권한다. 렌 반경 20km 이내에서 나는 재료로만 만든 시드르라고 소개했는데 갈레트와 조합이 괜찮았다.

토요장이 선 리스 시장. 예전에는 마상 결투가 벌어지던 곳이었다

주인은 여자월드컵을 취재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큰 관심을 보였다. 렌에서 몇 경기를 하느냐고 물은 후 필요하면 자신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메밀을 갈아 갈레트를 만드는 영상까지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침에 프랑스 신문을 사기 위해 들렀던 가게에 이어 두 번째로 여자월드컵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그 주인은 “이번 여자월드컵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조용했던 거리가 시끌벅적 해졌다. 렌은 인구가 21만 6천명 정도(2016년 기준)인데 학생이 약 6만명이라고 했다. 600살이 넘는 목골 구조 가옥 사이로 젊은이들이 무리 지어 지나간다. 이 묘한 도시는 ‘2019 여자월드컵’ 총 7경기를 개최한다. 8일 중국과 독일의 예선전을 시작으로 예선전 총 5경기, 16강과 8강 각각 1경기씩을 품는다.

 

브르타뉴를 상징하는 동물 북방족제비(ermine)을 형상화한 기호를 전 경기장에 두른 로아종 파크도 준비를 마쳤다. 6월 렌은 축구를 즐기기에 적당한 도시다.

*더 둘러볼 도시: 해적 전설을 품은 성곽 도시 생 말로(St-Malo)

렌에서 기차(TER)을 타고 1시간 달리면 해변에 선 성곽도시로 유명한 생말로를 만날 수 있다. 생말로는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성곽과 해변으로 프랑스와 유럽에서는 매우 유명한 관광지다. 생말로를 찾은 날, 수많은 사람들이 주말을 즐기기 위해 같은 열차에 몸을 실었다. 

 

생말로는 브르타뉴의 자존심과 생말로의 자존심을 모두 지닌 특별한 곳이다. 생말로 사람들은 "우리는 프랑스인도 아니고 브르타뉴 사람도 아닌 생말로 사람이다(ni français ni breton malouin suis)"라는 말로 자신들을 정의한다. 생말로는 실제로 1590년부터 4년 동안은 독립국가를 꾸리기도 했었다. 

 

생말로는 조석간만의 차가 한국 서해안 만큼이나 큰 곳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프랑수아-르네 샤토브리앙이 영감을 받았다는 그랑베는 물이 들어오면 섬으로 변한다. 그랑베는 생말로 상징으로 그 이름을 딴 그랑베호텔(Hotel Le Grand-Be)가 있을 정도다. 

 

렌에서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을 보거나 스타드렌 경기를 본 이들은 생말로를 찾을만하다. 주중에는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에 한적하게 멋진 바다와 성곽을 즐길 수 있다.

 

사진=풋볼리스트

취재협조= 프랑스 관광청(kr.france.fr), 에어프랑스 (airfrance.co.kr) 

류청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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