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유지선 기자= 파울루 벤투 감독의 선택을 받은 이정협(29, 부산아이파크)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대표팀 소집을 기다리고 있다.

27일 서울 신문로에 위치한 축구회관에서 6월 A매치 2연전 소집명단이 발표되던 날, 이정협의 휴대폰 알림은 쉴 새가 없이 울렸다. ‘풋볼리스트’와 전화인터뷰를 한 이정협은 “당일 저녁에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아침식사 후 자고 있었는데 연락이 굉장히 많이 오더라”고 회상하면서 “휴대폰 소리에 깨서 보니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잔뜩 와있었다. 잠이 확 깨더라.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다. 1년 6개월만의 A대표팀 발탁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활약했던 이정협은 지난 2017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 이후 1년 6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게 됐다. 오랜 기다림 끝에 벤투 감독의 선택을 받게 된 것이다.

소속팀에서의 최근 활약이 벤투 감독의 이목을 끌었고, 많이 뛰고 연계플레이에 능한 플레이스타일은 벤투 감독에게 확신을 줬다. “이정협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밝힌 벤투 감독은 “우리 팀의 플레이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선수라고 판단해 소집을 결정했다”며 대표팀 경험과 최근 활약을 두루 고려해 발탁을 결정했다고 했다.

이정협은 올 시즌 리그 10경기에서 7골을 터뜨리며 '하나원큐 K리그2 2019' 득점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일 부천FC전에서는 멀티골을 터뜨리며 골 감각을 이어갔다. 지난 시즌 쇼난벨마레(일본)에서 만족스러운 임대 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스포트라이트 밖으로 밀려났지만, 최근 들어 팬들 사이에서도 이정협의 이름이 종종 거론됐다. 그러나 이정협은 대표팀 발탁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골도 넣긴 했지만 K리그1에 좋은 선수들이 워낙 많지 않은가. 그래서 감독님이 나보다는 K리그1 선수들을 지켜보시고 있겠다는 생각만 했다.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동안 부상도 많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았었다. 대표팀은 준비가 잘 되고 소속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선수들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내가 다시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동안은 나 스스로도 준비가 돼있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정협은 황의조, 지동원으로 굳어지는 듯했던 대표팀 최전방에 새로운 경쟁의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최전방에서 폭넓은 활동량을 보여주며, 골 결정력도 물이 올랐다. 주변에 있는 동료들에게 좋은 찬스를 만들어주는 것도 이정협의 장점 중 하나다. 이정협은 27일 전남드래곤즈전에서도 문전에서 공을 재치 있게 뒤로 흘려줘 김진규의 결승골을 도왔다.

이에 대해 이정협은 “사실 공이 왔을 때 내가 직접 차야겠다는 마음이 90%였다. 상대팀의 수비 상황과 공이 오는 위치를 다 파악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었다”고 털어놓으면서 “그런데 누가 뒤에서 그냥 놔두라고 소리를 지르더라. 목소리가 조금 컸으면 그냥 찼을 텐데, 너무 간절해 보이더라. ‘아 이건 믿고 놔둬도 되겠구나’ 싶어서 흘렸다. 김진규 선수가 다행히 잘 마무리해줬다”고 웃어보였다. 충분히 욕심이 날 법한 상황이었다. 개인의 기록보다 팀을 생각하는 이정협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있는 대목이다.

지난 2015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눈에 띄어 첫 태극마크를 단 이정협은 중요한 순간마다 한방을 터뜨리면서 슈틸리케호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직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별명이 그동안 못내 부담스러웠던 눈치다. “기사 등 어디를 가든 항상 그 별명이 붙는다”고 부담스러워하던 이정협은 벤투호에서는 어떤 별명을 갖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한참 뜸들이더니 “별명은 이제 (없어도)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그때와는 사뭇 달라진 대표팀의 스타일에 녹아드는 것이 우선이다. 이정협은 “내가 잘하려고 하는 것보다 자신 있는 플레이, 그리고 동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플레이를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면서 “욕심내지 않고 주변 동료들에게 잘 맞추다보면 대표팀에 빨리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곁에는 든든한 조력자도 있다. 바로 소속팀 동료 김문환이다. 김문환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활약에 힘입어 벤투호에 첫 발탁됐고, 이후에도 꾸준히 호출을 받고 있다. 이정협은 “지금은 (김)문환이가 선배”라면서 “전남전을 마치고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벤투 감독님 스타일이나 훈련 분위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본인도 아직 어려워서 형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고 하던데, 그래도 성심성의껏 잘 대답해주더라”며 대표팀 합류를 앞두고 김문환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했다.

호주, 이란과 맞대결을 앞둔 벤투호는 6월 3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소집된다. 7일 열리는 호주전은 이정협의 소속팀이자 고향인 부산에서 열리기도 한다. 이정협은 4년 전 대표팀에 처음 소집되던 날을 떠올리며 파주NFC를 향할 생각이다.

“오랜만에 소집돼서 긴장도 된다. 처음이라는 생각으로 간절하게, 그리고 팀에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다. 대표팀의 플레이스타일에 잘 적응해서 부산 팬들, 그리고 축구 팬들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는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다. 남은 기간 동안 잘 준비하겠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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