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아약스는 유럽대항전 전통의 강호였다. 지금 멤버들이 조금만 더 힘을 낸다면 구단 역사상 네 번째로 중흥기를 열어갈 수 있다.

첫 번째 전성기는 리누스 미헬스 감독과 요한 크루이프 선수가 함께 만들었다. 1968/196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 예고편이었다. 이후 1970/1971시즌, 1971/1972시즌, 1972/1973시즌 3회 연속으로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했다. 지금보다 축구의 국제적 교류가 뜸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약스와 맞붙어 본 나라들 중심으로 서서히 ‘토털풋볼’이 퍼져나갔다. 또한 아약스 멤버들이 주축을 이룬 네덜란드는 ‘1974 서독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전세계에 토털풋볼의 탄생을 선언했다.

두 번째 전성기는 감독으로 돌아온 크루이프가 이끌었다. 당시 최고 스타는 공격수 마르코 판바스턴, 수비수 프랑크 라이카르트였다. 당시에는 각국 컵대회 우승팀들의 국제 대회인 컵위너스컵(현 유로파리그로 통합)이 있었다. 아약스는 1986/1987 컵위너스컵 우승을 차지했고, 1987/1988시즌에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1987년 결승전은 판바스턴의 선제결승골로 로코모티프라이프치히를 1-0으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아직 아약스의 전력이 무르익지 않은 시절이었다. 판바스턴과 라이카르트는 AC밀란으로 이적해 뤼트 굴리트와 함께 ‘오렌지 삼총사’를 이뤘다. 이들은 아리고 사키 감독이 만들어낸 4-4-2 압박 축구의 핵심 역할을 했다. 사키 감독의 축구는 조직적이고 전방 압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토털풋볼과 일맥상통했다. 네덜란드 선수들의 존재가 이 축구의 완성에 큰 도움을 줬다.

세 번째 중흥기는 루이스 판할 감독과 공격수 야리 리트마넨의 시대다. 1994/1995시즌 아약스를 맡은 판할 감독은 노장이 되어 돌아온 라이카르트 주위에 패기 넘치는 천재 유망주들을 대거 배치했다. 골키퍼로 에드빈 판데르사르, 수비수로 다니 블린트와 프랑크 더부어, 미드필더로 클라렌스 시도르프와 에드하르 다비즈, 공격수로 마르크 오베르마스와 파트리크 클루이베르트 등 네덜란드 대표팀의 주전이 될 스타 선수들이 즐비했다. 그들 사이에서 핀란드의 축구 영웅 리트마넨이 공격형 미드필더와 공격수 역할을 오가며 중심을 잡았다. 이 팀은 1994/1995 UCL 우승, 1996 UCL 준우승 업적을 세운 뒤 유럽 각국의 명문 구단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최근 아약스는 2016/2017 유로파리그 준우승, 이번 시즌 UCL 4강 진출을 달성하며 약 20년 만에 유럽 정상급 경쟁력을 되찾았다. 이번 멤버는 ‘3차 전성기’의 아들들이 있어 더 흥미롭다. 다니 블린트의 아들 달레이 블린트, 파트리크 클루이베르트의 아들 유스틴 클루이베르트(현 AS로마)가 그들이다.

또한 유망주 유출이 아약스 선수들의 데뷔 연령을 점차 낮췄기 때문에, 이번 멤버들은 역대 어느 전성기보다 어린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센터백 마티스 더리흐트는 20세, 미드필더 프렝키 더용과 도니 판더비크는 22세다.

이미 바르셀로나 이적이 확정된 더용을 비롯해 주전급 선수들 중 상당수가 이번 여름 팀을 옮길 것으로 보인다. 아약스가 이번 시즌을 제4의 전성기로 만들려면 토트넘을 넘어 UCL 결승에 오를 필요가 있다. 4강 1차전은 5월 1일(한국시간) 토트넘의 홈 경기로 열리며, 2차전은 9일 아약스의 홈 경기로 진행된다. 토트넘은 경고가 누적된 손흥민, 부상이 다 낫지 않은 해리 케인 없이 1차전을 치를 전망이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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