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분데스리가는 아시아 선수들과 가장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는 빅 리그다. 냉정한 카메라워크와 뜨거운 서포팅, 수준 높은 경기력이 축구팬들을 유혹한다. 'Football1st'가 2018/2019시즌에도 독일에서 첫 번째로 흥미로운 축구적 순간을 찾아 나섰다. <편집자주>

율리안 브란트는 한때 윙어 포지션에서 손흥민의 경쟁자였다. 지금은 중앙 미드필더 위치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가 됐다. 미드필더로 변신한지 단 3경기가 지났을 뿐이지만 경기력이 놀랍다.

레버쿠젠은 9일(한국시간) 독일의 마인츠에 위치한 오펠 아레나에서 마인츠05에 5-1 대승을 거뒀다. 최근 3연승을 달린 레버쿠젠은 21라운드 현재 6위로 올라섰고,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진출권이 주어지는 4위(RB라이프치히)와 승점차를 5점으로 좁혔다.

그 중심에 브란트의 포지션 이동이 있다. 윙어로 뛰어 온 브란트가 4-3-3 포메이션의 중앙 미드필더로 이동한 뒤 치른 첫 경기에서 레버쿠젠은 보루시아묀헨글라드바흐에 0-1로 패배했다. 그러나 패배에도 불구하고 경기력 측면에서 압도하며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후 3연승 기세가 폭발적이다. 앞선 2일 경기에서 바이에른뮌헨을 3-1로 격파하는 등 세 경기에서 11득점 2실점을 올렸다. 앞선 18경기에서 경기당 1.44득점에 그쳤던 마인츠는 이 3경기에서 경기당 3.67점으로 엄청난 득점력 상승을 경험했다.

 

한 경기 2골 2도움 올린 ‘미드필더’ 브란트

마인츠전의 주인공 브란트는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골 장면을 보면 브란트의 미드필더 기용이 어떻게 팀 공격력을 끌어올리는지 알 수 있다. 전반 19분 전방 압박으로 따낸 공을 브란트가 직접 몰고 간 뒤 문전으로 짧은 크로스를 올려 카이 하베르츠의 골을 이끌어냈다. 전반 30분에는 중앙선에서 빌드업을 시작해 동료들과 연속 2 대 1 패스를 주고받으며 순식간에 문전까지 진입, 직접 마무리했다. 전반 43분 속공을 시작할 때 중앙선에서 공을 전달받은 뒤 몸으로 덤비는 마인츠 수비를 넘어뜨려가며 전진, 카림 벨라라비에게 밀어 준 패스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위 세 장면을 보면 브란트의 폭발적인 드리블 전진 능력, 동료와 2 대 1 패스를 주고받으며 팀 전체의 공격 전개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능력, 186cm 키와 탄탄한 체격에서 나오는 몸싸움 능력을 모두 볼 수 있다.

후반 19분, 빌드업에 자신이 직접 관여하지 않는 상황이 되자 이번엔 절묘한 움직임 능력도 보여줬다. 상대 최종 수비진과 미드필드 라인 사이로 절묘하게 들어가며 율리안 바움가틀링거의 전진 패스를 이끌어 내고, 훌륭한 퍼스트 터치에 이어 깔끔한 2 대 1 패스를 공격수 케빈 포어란트와 주고받은 뒤 간단하게 마무리했다. 윙어 시절부터 보여준 마지막 패스와 슈팅의 판단력 역시 여전했다.

브란트는 레버쿠젠의 최근 3연승 기간 모두 공격 포인트를 올렸고 그 사이에 패배한 DFB포칼(컵대회) 경기에서도 골을 넣으며 최근 4경기 3골 3도움을 기록했다. 약 보름 동안의 모습만 보면 분데스리가의 모든 미드필더 중 브란트의 활약상이 가장 좋았다.

 

측면을 떠나 중앙으로 이동한 것이 ‘신의 한수’

윙어로서 독일 대표팀에 발탁돼 ‘2018 러시아월드컵’까지 참가한 선수를 미드필더로 이동시킨 건 파격적이다. 브란트는 원래 레버쿠젠에서 포어란트, 벨라라비, 레온 베일리 등과 함께 특유의 속공 축구를 이끌어 온 선수였다. 손흥민이 레버쿠젠에 소속돼 있던 2014/2015시즌 주전 경쟁을 벌이던 사이다. 기세 좋은 질주, 강력한 슛과 준수한 마무리 패스 등 여러 장점을 갖고 있지만 플레이가 다소 뻣뻣했다. 일류 윙어가 지공 상태에서 상대 수비를 깨려면 중앙으로 공을 몰고다니는 능력이 필요한데, 브란트는 종드리블 능력이 약한 편이다. 엘리트 선수로 발돋움한 이후에도 시즌 30경기를 소화한 적이 없고, 교체 투입되는 비중이 많았다. 윙어로서 정체된 브란트에게는 변화가 필요했다.

브란트는 요아힘 뢰브 독일 감독에 의해 윙백으로 테스트를 받은 바 있다. 뢰브 감독 역시 브란트가 지공 상황에서 위력이 떨어지는 대신 활동량과 스피드에 장점이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이때부터 공격에만 치중하는 윙어가 아니라 더 전방위적으로 팀에 공헌할 수 있는 선수라는 걸 보여줬다. 그러나 지능적이라기보다 폭발력이 더 돋보이는 브란트는 주로 측면 자원이나 ‘역습 전문’ 공격형 미드필더로 분류됐을 뿐, 중앙 미드필더는 아니었다.

브란트는 레버쿠젠 스타일에 날개를 달아주는 미드필더다. 공을 잡았을 때 눈앞에 공간이 보인다면, 그 즉시 윙어 시절의 플레이 스타일을 되살려 전방으로 치고 나갈 수 있다. 레버쿠젠의 포메이션은 4-3-3이지만 브란트의 가세 덕분에 발빠른 공격자원이 4명으로 늘어나는듯한 효과를 보게 된다.

레버쿠젠은 최근 특급 유망주를 여러 번 발굴해낸, 젊은 팀이다. 이번 시즌 유일하게 리그 전 경기 출장 중인 미드필더 하베르츠는 20세에 불과하다. 주전 멤버 중 윙어 레온 베일리가 22세, 브란트와 센터백 조나탄 타가 23세다. 또한 23세 이하는 아니지만 센터백 스벤 벤더, 라이트백 미첼 바이저와 레프트백 웬델, 공격수 포어란트 등 스피드와 커버 범위에서 장점을 보이는 선수가 대거 포진해 있다.

 

도르트문트에서 실패했던 보츠 감독의 작품

지난해 12월 말 합류한 페테르 보츠 감독이 브란트의 새로운 능력을 끄집어냈다. 페테르 보츠 감독은 젊은 선수들의 압박 능력에 중점을 둔 ‘달리는 축구’를 고집해 왔다. 아약스 시절인 2016/2017시즌 유망주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해 UEFA 유로파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감독으로서 주목 받았다. 2017/2018시즌 보루시아도르트문트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이미 활동량과 젊음으로 승부하기엔 선수들이 원숙해 버린 상태에서 불협화음을 내다 중도 경질됐다.

공격에 치중하면서도 네덜란드식 4-3-3 포메이션과 압박을 중시하는 보츠 감독의 축구에서, 브란트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독일 축구는 미드필더들의 역할을 세부적으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공격형(‘체너’) 미드필더와 수비형(‘젝서’) 미드필더,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미드필더(‘아흐터’)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분데스리가 공식 홈페이지는 브란트와 하베르츠 두 명이 아흐터인 동시에 체너 역할까지 한다고 설명했다.

브란트는 마인츠전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은 뒤 “이런 능력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브란트는 탁월한 테크니션이 아니지만 좁은 공간에서도 공을 받을 위치와 보낼 방향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공간 지각 능력의 소유자였다. 공간이 부족한 중원에서도 어느 정도 몸으로 버틸 수 있을 만한 장사 체형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브란트의 공격 전개 능력은 타고난 미드필더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수비적인 기여도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브란트는 세 경기에서 공을 빼앗으려고 10번 달려들었으나 단 1회 성공에 그쳤다. 가로채기 기록은 세 경기 통틀어 2회에 불과했다. 수비 요령이 부족하다는 걸 보여주는 기록이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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