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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트랙] 기성용-구자철, 대표팀 가장 험난한 시기를 버틴 ‘기둥’
류청 | 승인 2019.01.31 12:17

[풋볼리스트] 류청 기자=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한 시대가 끝났다.

 

기성용과 구자철이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구자철은 ‘2019 UAE 아시안컵’ 8강 카타르 경기에서 패한 뒤 은퇴의사를 확실히 했었고, 기성용은 30일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기성용은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라는 큰 영광과 막중한 책임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라며 대표팀에 작별을 고했다.

 

두 선수는 ‘2011 카타르 아시안컵’ 이후 박지성과 이영표가 은퇴한 뒤부터 대표팀 주축으로 활약했었다. 당시에 나이는 어렸지만 경험만큼은 선배들 못지 않았다. 1989년생인 기성용이 A매치에 110경기에 출전한 게 이를 증명한다. 구자철도 많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A매치 76경기에 출전해 19골을 넣었다.

 

기성용과 구자철이 주축으로 활약했던 시기는 대표팀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한국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 뒤 치른 두 차례 월드컵에서 모두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참패한 이후에는 국민 여론도 크게 악화됐었다. 두 차례 월드컵 모두 귀국장에서 몇몇 팬이 엿과 달걀을 던지기도 했었다.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두 선수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싸웠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 치른 ‘2015 호주 아시안컵’은 특별했다. 대회 직전에 구자철 대신 기성용이 주장완장을 맡았고, 어려운 가운데 대회를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 기성용은 인터뷰를 할 때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라고 말했었다. 대표팀은 집단 식중독 속에서도 탈진할 때까지 뛰었다.

 

기성용과 구자철은 대표팀이 흔들릴 때 쓴소리도 했다. 기성용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시리아 경기에서 비긴 뒤 "그동안 감독들만 책임져 왔는데, 이렇게 경기한다는 건 선수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거다. 다음 소집할 때까지 각자들 더 신경 써야 한다"라고 선수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구자철도 위기 때마다 외부가 아닌 내부의 책임을 언급했었다.

두 선수는 팀이 어려울 때마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구자철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팀이 어려울 때마다 골을 넣었다. 그가 넣은 2골모두 결승골이었다. 경기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제몫을 했다. 중국과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2승을 거두지 못했었다면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기성용과 구자철이 버티는 사이 대표팀을 둘러싼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여전히 경기력에 대한 비난은 있지만, 대표팀을 좋아하는 또 다른 팬층도 확실히 생겼다. 두 선수는 대표팀이 ‘2002 한일 월드컵’ 특수에서 벗어난 시점부터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 중심에 있었다. 두 기둥 뒤에서 많은 선수들이 조금 더 편안할 수 있었다.

 

대표팀은 또 다른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이들이 나눠졌던 책임을 어떻게 분배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축구협회 제공

류청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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